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oudie Mar 24. 2019

청첩장을 받으러 가는 일

주말을 사수하기 위한 나와의 싸움

이번 주말은 말하자면 주말답지 않은 주말, 조금 귀찮은 주말 또는 피하고 싶은 주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쉬어야만 하는 이 시대의 귀차니즘의 산 증인 같은 나에게는, 나의 휴식을 위해서라면 예쁜 머리도,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도, 아파서 병원에 방문하는 일도 다 뒷전이 되어버리는 나에게는 토요일, 일요일 둘 다 약속이 있는 주말이 생겨버리면 차라리 그 주말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번 주 토요일은 오래전부터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 친구와는 무려 우리 집에서 한 시간 하고도 30분이 더 걸리는 종로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그 약속을 외면하고 싶어 진다. (이후 갑작스 장염이 걸린 친구로 인해 약속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그날 오전에는 운동이 예약되어 있었다. 과거의 부지런했던 내가 잡아놓은 예약이지만 지금 와서 보니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참으로 미련스러운 결정이었다. 주말 아침 늦잠도 패스하고 해야 하는 운동이라니..

운동과 약속 사이에는 급작스러운 할아버지 병원 방문 일정이 생겼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몇 시에 잠든지도 모르겠지만..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잠이 든 사이 집은 한차례 전기가 나갔다고 하고, 그 여파로 꺼져버린 내 돌침대에서 나는 밤새 추위에 덜덜 떨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계속 으슬으슬 춥고 목이 아픈 것이 몸살이 맞는 것 같다. 넣어 두었던 히트텍에 기모 후드티에 패딩까지 꺼내 들다가 그래도 지금이 3월 말인데 조금 오버스러운 것 같아 맨투맨과 코트로 타협했다.

토요일도 쉬질 못했는데 오늘은 무려 회사 당직이다. 토요일 당직이면 내일 쉬어야지 라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는데 일요일 당직은 내일 출근이라는 생각에 우울하다. 나와 교대하는 지난밤 숙직을 한 직원분의 표정은 밝다. 밤새 고생했을 노고를 알아주기에는 그분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 질투가 난다.


당직을 하는 날이면 바라는 것 딱하나. 제발 아무 일 없이 하루가 흘러가길..

전화벨이 한 번도 울리질 않길 바라지만 이상하게 내가 당직하는 날이면 이상스러운 전화가 한 번씩 걸려오는 것 같다.


전화 1 "OO본부 본부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크크크크 크큭"

첫 번째 전화는 아는 직원의 장난으로 드러났다. 순간 긴장하며 대답한 내 모습이 너무 수치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만나면 패줘야지.


전화 2 "현재 OO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 할 예정입니다."

이건 진짜다. 이례사항이 발생했을 시 간부들에게 문자를 발송해야 하는데 순간 또 긴장하며 부랴부랴 매뉴얼을 다시 숙지하고는 문자 사이트를 찾아들어갔다.

전화 2-1 "방금 전화드린 사람인데, 해결됐네요. 혹시 문자 돌리셨으면 다시 좀 보내주세요"

내가 좀 더 빨랐다면 일을 두 번 할 뻔했다. 휴. 그래 일은 항상 침착하게 해야 해^^


전화 3 "여기 ~~ 인데요, 혹시 이 쪽 수도가 단수됐나요?"

음.. 이건 뭐지? 할 말이 없는 전화다. 나는 수도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회사에 다니는데... 어디 전화하신 거냐고 물으니, 다시 한번 묻는다. 아니 수도가 단수됐냐고요. 그래서 잘못 거신 거 같은데요 라며 세 번째 전화를 물리쳤다.


이렇게 전화 미션들을 하나하나 해치우고 나니 이제 이번 주말의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대학 친구의 청첩장을 받으러 가야 하는 약속. 약속 장소는 무려 사당. 역시나 우리 집에서는 1시간이 넘는 거리이다. 친구의 결혼을 마음 다해 축하하지만 몸살기도 있고, 이번 주말 내내 혹사당한 나를 생각하니 그 정도 사이의 친구라면 내가 쉰다고 해도 이해해주지는 않을까 라는 논리가 묘하게 설득적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평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의 청첩장을 받는 자리인데 의리가 있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결혼식에 참석하는 게 중요하지, 밥 얻어먹는 자리가 중요한가?라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청첩장을 받는 자리는 보통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자리이다. 그러다 보면 나랑은 덜 친한 사람들이 끼는 경우도 많고 그러면 마치 나도 그 자리에서 일을 하는 것 마냥 피곤한 감정 소모를 하게 된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들 보면 좋지 뭐!


내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약속시간 1시간 전인 지금까지 치열하게 공방을 펼치고 있다.


결말은 뭐.. 결국은 가겠지. 막상 가면은 재밌겠지..^^



작가의 이전글 병원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