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잊지 않기 위한 나의 기록
4살까지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컸다. 지금의 식습관이 형성된 데에는 그들의 영향이 매우 크다.
밥을 먹을 때면 할아버지는 우선 물을 한잔 시원하게 마시게 했다. 어린 내가 꼭꼭 씹어 먹을 수 있게 자주 밥을 물에 말아 주었고 김치도 맵지 않게 물에 씻어서 잘라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그 위에 케첩까지 뿌려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매운 것을 잘 못 먹고 밥 먹기 전에 무조건 물을 마셔야 하고 창피하지만 김치를 작게 작게 잘라먹고 모든 음식을 케첩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할아버지는 말이 별로 없지만 한 번씩 던지는 말이 너무 재미있던 유머러스한 분이고 외출할 땐 꼭 모자와 조끼 등을 그때그때 옷에 맞게 갖춰 입는 걸 좋아하는 멋쟁이 었고 정리 정돈을 중시하여 옷장을 열면 항상 옷들이 각을 잡고 줄을 지어 있었다. 내가 옷을 사거나 가방을 사거나 매니큐어를 새로 칠하고 갈 때면 항상 할아버지는 이건 뭐냐며 알아봐 주시곤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빵을 드시는 모습. 빵, 특히 팥이 들어간 빵을 좋아하여 매주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우리는 빵을 샀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오늘은 뭘 사 왔나 구경하시면서 밥을 먹고 난 뒤에도 빵을 몇 개씩 드셨다. 그렇게 좋아하는 빵도 당이 심해지신 이후에는 사갈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아주아주 오랜만에 빵을 사 가지고 갔던 일은 아주아주 잘한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할아버지는 귀가 많이 안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이 힘들어졌고 자연스레 나는 할아버지에게 말을 잘 걸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작은 목소리에도 잘 대답해주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는 할아버지가 불리할 때만 안 들린다고 하는 건 아닌지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참전 유공자셨고 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셨다. 대부분의 유공자 할아버지들이 그렇듯 유공자 관련 배지와 모자를 매우 아끼고 즐겨 착용하셨다. 할아버지는 평소에는 별 말이 없으시다가도 한 번 화가 나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 시절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이기에 그의 이해 안 되는 행동들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기록하는 분이었다. 일기장의 제목은 비망록이었는데 그 제목이 나는 참 좋았다. 자신의 이력도 정리하여 우리에게 주셨고 이사할 무렵 필요한 것들을 모두 적어 정리하셨고 이사 이후에도 제일 먼저 챙기신 건 본인 책상이었다. 여전히 할아버지 책상 위에는 종종 쓰시던 일기장과 매달 내던 공과금 내역들이 적혀있다. 2019년 1월 25일 공과금 납부, 2월 25일 공과금 납부. 3월부터는 적혀있지 않다.
나 역시 할아버지를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쓰다 보니 후회되는 일은 많지만 내가 할아버지를 아주 아주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2019년 3월 29일 그가 떠났지만 여전히 빵을 들고 방문하면 반겨주실 것 같아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입관 당시 마지막 한마디를 하라고 하는데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그곳에서는 당 때문에 먹지 못한 좋아하는 빵도 많이 드시고 북에 두고 와 평생을 그리워했던 가족들도 만나고 숨이 차고 걸음이 느려져 가지 못했던 강화도에도 가시고 행복하게만 지내시다가 할머니가 가시는 날 반갑게 맞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