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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oudocloud Dec 03. 2018

강릉역에서 웨이브라운지로 가는 길

강릉거닐다 | 강원매거진 033 준비하며 - 강릉 바라보기 이제부터 시작

2018년은 매 계절 방문하게 되는 거 같다. 동계올림픽이 올해 초 마무리되고 다소 차분해진 늦가을, 강릉역에 홀로 내렸다. 늘 동행이 있다가 혼자 기차를 타고 가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사실, 그런 기분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업무 처리를 위해 이메일을 쓰고 모바일폰으로 메신저를 1시간 정도 사용했더니 이내 멀미가 온 것이다. 하나의 업무만 마무리하고 쉬어야했다. 그렇게 누렇게 물든 논밭과 깊고 어두운 터널, 부쩍 눈에 띄지 않는 단풍과 앙상한 가지가 많은 산과 들의 풍경을 지나 왔다. 



걸어보기로 했다. 



서울의 뿌옇게 뒤덮은 하늘과 다르게 청량한 공기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미팅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어 도착장소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강릉 원도심 지역의 분위기도 보고 싶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찬찬히 주변을 바라보고 싶었다. 


강릉역 일대의 면적을 보면 약 15개의 블럭을 넘게 차지한다. 출처 : 네이버지도 스크린샷
강릉역 일대의 2011년 위성지도 사진, 출처 : 다음지도 스크린샷


지도에서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오래된 역사가 작은 규모였던 데에 비해 돔경기장을 연상시키는 새로운 KTX역사가 2015년 신축되면서 논과 밭이었던 대지는 부속건물과 주차장이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지상에 설치된 철로로 인해 강릉역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없었으나, 철로가 지하화되면서 왕복 6차로의 큰 도로가 강릉의 육거리를 중심으로 남북을 연결하여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사실 강릉역에서 내려 거닐 때만 해도 본래 논밭인줄은 몰랐었다. 녹색 또는 흙색이었던 드넓은 벌판이 아스팔트의 짙은 색으로 덮힌 모습이 좋아 보이지만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하더니 차갑게 느껴졌다. 


도로가에는 주차된 차량으로 가득했다. 강릉역사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2018.11.27, cloudocloud


주변에 간판이 달린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단층이나 낮은 건물이 주를 이루었고, 5층을 넘는 건물 또는 드물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조차 보기 힘들었다.(오후 12시경 도착했는데, 공공기관으로 보이는 건물에서 줄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강원강릉경찰서 주변 도로에 닿았을 때에야 비로소 간판이 달린 건물들이 보였다. 


쌩쌩 달리는 차를 피해 길을 건너기 전,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강릉시의 도시아이덴티티이었다.


솔향강릉, PINE CITY Gangneung, 얼마 전 처음 듣고 알게 된 강릉의 도시아이덴티티이다. 
하지만 공감이 크게 안 되는 게 사실이었다. 강릉과 소나무를 매칭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2018.11.27, cloudolcoud


거닐며 발견하다



1. 옹기종기 낮은 아파트 

눈에 먼저 띄 건, 시야를 틔이게 한 낮은 건물들, 그 중에서도 집들이었다. 원도심에서의 신축은 필요이상의 것이리라. 울릉도에서도 세 집 건너 보았던 필로티 형태의 도시형 생활주택이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라고 하기엔 귀여운 집들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12층 아파트는 이 동네에서는 초고층 아파트! 2018.11.27, cloudocloud


2. 귀여운 레터링

앞서 말했듯이 원룸이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층이 플로티와 주차장으로 구성된 공간이 아니었다. 앞쪽 마당이 주차장이고, 1층부터 온전히 주거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무엇보다 실크스크린으로 만든 것과 같은 레트로(Retro) 감성의 폰트가 인상적이었다. 

널직한 마당이 있는 삼층 건물 현관 위 키스톤 자리에 뚜렷하게 써 있다. "수진원룸"이라고..
2018.11.27, cloudocloud

 

레트로스러운 폰트라기에 너무나 깨끗하기도ㅎㅎ 2018.11.27, cloudocloud


3. 자전거 중심의 도시 
한국에서의 자전거 도로는 어느 도시를 가나 실망스러운 편인데, 강릉에서도 기대에 부응해 주었다. 차라리 안 만드는게 좋을 정도로 보행자와 자전거 운전자 모두를 고려하지 않은 도시디자인이었다. 보행자가 다닐 수 없을 만큼의 면적을 배정했을 뿐만 아니라, 저 글자가 없다면 이 곳이 자전거전용도로인지 인지조차 불가능했다. 갈 길이 멀게 느껴졌다.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지만, 도로를 만들어 감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지점이다. 


'알아서 피해다니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자전거전용도로, 보행자도로와 혼동인건지 전혀 알 수 없다. 2018.11.27, cloudocloud


도보로 약 20분 간 짧은 거리를 거닐며 바라보게 된 강릉의 첫 인상이었다. 점(point)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이라 면밀한 분석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양해하기 바란다. 도시란 맥락(context)이 있는 것이고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도시와 그 안의 구조적 하드웨어와 사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유기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얇은 의견일 뿐이기도 하다. 


조용하고 또 차분한 동네를 지나 또다른 차분하고 조용한 동네에 한 학교를 만나게 되면, 

지금 가고자 한 종착지에 닿게 된다. 


강릉의 옛 지명 '하슬라'를 딴 이름의 학교와 소재동 '포남동' 이름을 딴 학교를 따라 가면 웨이브라운지를 찾을 수 있다. 2018.11.27, cloudocloud


로컬크리에이터들이 모이는 공간, 웨이브라운지(Wave Lounge)



오래된 주거지역에 덩그러니 새로 지은 건물 하나가 보였다. 단독주택 하나가 매우 튀게 자신의 모습을 뽑내고 있는 옆에 우뚝 솟아 있는 빌딩 1층에 웨이브라운지가 위치해 있다. 골목이지만 사거리가 넓게 펼쳐져 잘 보였다. 동네에서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주변에 살고 계시는 분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주변에서 유일한 신축 건물에 이질적으로 위치한 웨이브라운지(Wave Lounge),
2018.11.27, cloudocloud


공간을 한번 둘러보자. 사진 아래의 설명을 따라가 보시라. 


입구를 들어와 카운터를 향해 따라가다 보면 바깥을 바라보며 자신 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1인용 테이블이 있다. 2018.11.27, cloudocloud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의 비율이 주니어와 시니어 세대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시니어 분들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이용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시는 중년의 여성분들 모임도 있었다. 포남동 커뮤니티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듯 했다. 
2018.11.27, cloudocloud


운영팀에서 큐레이션한 책들도 가득한 서가(좌), 지역의 MD 또는 알리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분리되어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2018.11.27, cloudocloud


저녁시간이든, 낮시간이든, 아침시간이든 시간이 주는 개성을 드러내는 웨이브라운지,
2018.11.27, cloudocloud


다양한 로컬에서의 상상을 하는 웨이브라운지 



공간을 마련한 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웨이브라운지가 제대로 워킹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그들이 정의하기로는 '로컬 크리에이터'이다.) 또 그 말이냐고? 이게 시작이자 전부이다. 강릉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고, 이주민들도 있다. 지역을 생각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왜, 어떻게, 무엇을 하느냐가 그 지역의 전부이다. 


웨이브라운지를 기획, 운영하고 있는 더웨이브컴퍼니(이하. TWC)는 강릉을 기반으로 강원도 전역의 로컬 크리에이터에 관심이 많다. 2018년 12월 '제1회 로컬 크리에이터 포럼 : 로컬프리즘'을 비롯해, 춘천 제일약방, 태백 무브로드와 함께 강원 로컬크리에이터아카데미(LCA)를 진행하는 등 자체 사업 뿐만 아니라 지역의 사람들을 발견하는 일들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강원도 뿐만 아니라 전국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함께 하는 재미난 상상을 하는 더웨이브컴퍼니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웨이브라운지 밤의 풍경, 2018.11.27, cloudocloud


그동안 강릉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 곳 저 곳을 점(POINT)으로 인식해 왔다. 지금부터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이 점들의 맥락(CONTEXT)을 알아보고자 한다. 여전히 이방인의 시선일 수 밖에 없지만, 지역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시선이 만났을 때 강릉만의 이야기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강릉 #033매거진 #033life  


(커버 사진 : 강릉 포남동에 위치한 로컬크리에이터들이 만나는 웨이브라운지, @181128, cloudocloud)



-참고 : 

로컬 크리에이터 포럼 | 로컬 프리즘 

LCA(로컬 크리에이터 아카데미)

033매거진 웹 페이지 


cloudocloud ⓒ 2018

written by 최성우 | cloud.o.cloud
동네를 거닐며 공간과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역을 탐구하는 Urban Context Explorer
urban.context.explor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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