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시장을 보았다
비극의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주고 싶은 마음
“너의 행복을 빌어줄게.”
냉장고에 있던 반찬들을 꺼내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시장에 갔다. 대목의 시작이지만 시장 안엔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아 보일 만큼 조용하고 휑하다. 가장 먼저 들르는 상점에선 포, 대추, 밤, 곶감, 유과와 같은 마른 것들과 백화수복을 사는데 사장이 매번 다시마는 서비스로 넣어준다.
“고양 페이 되죠?”라고 물으니 사장이 이번 명절에는 고양 페이로 오만 원 사면 일인당 다섯 장까지 만 원짜리 쿠폰이 바로 지급된다고 알려주었다.
“어머나, 그래요? 저번엔 없었는데요.”
“시장 활성화하려고 하는 거죠. 이 라인에 있는 가게를 이용하면 합산도 돼요.”
단골 두부 집에 가서 두부 사장과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시장 올 때마다 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하고 커다란 두부 한 모를 사고 바로 정육점에 갔다.
“탕국 끓일 소고기 주세요.”
“한우요?” 앞치마를 맨 사장이 확인하더니 신이 나서 설명했다.
“이게 오늘 잡은 암소 특에이뿔이에요. 아주 맛있는 고기예요.”
사장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붉은 고깃덩어리를 가리켰다.
“그래요?”
“오늘 잡았으니 푹 끓여야 해요.”
“오늘 잡은 고기는 푹 끓여야 하는 거예요? 왜요?”
“숙성을 안 했잖아요. 푹 끓여 먹으면 고소하고 아주 맛있어요.”
집에 와서 곧장 소고기를 덩어리째 넣고 끓여 봤더니 한우 가게 사장 말이 맞았다. 십 분도 안 끓였는데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는 것을 보자 신이 났다. 시장 상인들은 잘 새겨들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우리네 먹거리 정보를 가지고 있다.
시장 골목을 따라 사과와 배를 사러 과일 가게로 가는 길에 등받이 없는 낮은 의자에 앉아 있던 전집 사장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오래된 전집의 전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반듯한 모양과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지는 않는다.
‘오늘은 녹두전 색깔이 왜 이리 허여멀건가.’ 싶고 ‘오늘은 적이 또 왜 이렇게 작고 모양도 삐뚤빼뚤한가.’ 싶지만 이 또한 시장의 맛이다.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인지를 드시고 계시던 사장이 일어나 맞아주었다.
“곧 바빠지시겠네요.”
“응. 28일부터 바빠져. 미리 만들어 놓고 냉동했다 꺼내 쓰면 편한데 나는 그게 싫어. 직접 해줘야 맘이 편해.”
머리가 허연 사장이 웃었다.
“다음 주가 명절이니까 오늘은 조금만 살게요. 다음 주에 또 올게요.”
“그래.”
나는 익숙하게 전을 담았다.
“녹두전도 주세요.”
4만 3천 원이 나왔다.
“고양 페이 되죠?”
“그럼.”
카드를 긁으려는 가 싶더니 말씀하신다.
“고양 페이로 오만 원 사용하면 만 원 쿠폰 준대. 그러니까 내가 오만 원 긁어줄게.”
전집 사장은 합산도 가능한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오만 원을 긁은 카드와 영수증을 돌려주시며 허리춤에 매여 있던 돈 가방에서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를 꺼내 세기 시작하셨다.
“하나, 둘, 셋, 넷······. 칠천 원 맞지?”
“맞아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나는 웃으며 맞받아쳤다.
전집 옆 만두가게 할머니에게서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를 한 봉지씩 샀다.
“만두며 식혜며 다 내가 직접 만든 거야.”
만두만 사려던 계획과 달리 할머니가 아침에 직접 만드셨다는 색이 진한 식혜도 한 병 샀다. 이제 가장 무거운 사과와 배만 사면 되는 거였다.
자부심 가득한 만두가게 할머니 집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 과일 가게로 가서 제사에 쓸 사과와 배를 고르고 있는데 주변이 부산스러워지더니 점퍼를 입은 젊은 남자 두 명이 가게로 들어왔다. 곧 시장님이 오시니 인도에 나열한 상자며 과일 같은 것들을 정리해 주었으면 하는 모양이었는데 과일 가게 사장이 버럭 성을 냈다.
“바빠 죽겠는데, 대목에 시장은 무슨!”
과일 가게 사장은 두 남자가 있거나 말거나 짜증 난다는 티를 감추지 않았다. 언젠가 사과 한 바구니와 배 한 바구니를 샀더니 시장 올 때마다 쓰라고 주차권을 쓰고도 남을 만큼 여유 있게 쥐어주며 넣어 뒀다 두고두고 쓰라던 푸근한 인심은 같은 남자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온데간데없다.
화가 잔뜩 나 있는 사장은 사실 수행원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짜증을 낸 것은 아니었고 시장에게 짜증을 낸 것도 아니었을 게다. 지금은 그냥 누구에게라도 짜증을 내고 싶은 고난한 시기인 것뿐인데 다만 사장은 주변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던 두 남자도, 어색하고 싸늘한 공기 틈에서 조그만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아 놓은 사과와 배를 고르고 있는 나도, 악플보다 무섭다는 냉랭한 무관심이 스모그처럼 정체된 싸한 분위의 시장 골목을 줄곧 의연한 척하며 걸어야 하는 시장도, 우리 모두 하늘 아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기는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잠시 잊은 모양이었다. 모두 먹고살기 팍팍해서 잠시 예민해져 있는 것이었다.
곧 노란 점퍼를 입은 남자와 검은 점퍼를 입은 무리를 비롯한 시장 일행이 골목에 보였으나 첨병의 귀띔이 있었는지 과일가게 앞에서 훽, 방향을 바꾸어 오른쪽 귀퉁이를 돌아 가끔 중학생 아들이 나와 일손을 거드는 빵 가게를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두 남자는 어느 틈에 가 버리고 없었다.
“정치한다는 양반이 싫은 소리도 좀 들어야지. 싫은 소리 하나 안 듣고 무슨 정치를 한다고.”
멀어지는 시장 일행의 뒷모습을 보며 누가 시장이지? 하고 보고 있는데 과일 가게 사장이 말했다.
“정책 하고는, 씨발.”
과일 가게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는데 한 명은 사장이고 한 명은 과장이건만, 나는 비슷한 분위기의 그들 중 누가 사장인지 헷갈려 두 사람 모두에게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다른 한 명의 사장에게 고양 페이 오만 원 사용하면 쿠폰 주냐고 물어보니 심드렁하게 가게 문에 붙은 쪽지를 가리켰다.
“합산도 되죠?”
“안 돼요. 한 매장에서 오만 원 사용해야 돼요.”
“합산된다고 하던데요.”
“한 매장에서 사용해야 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거니까요.”
사장이 이렇게 말하면서 턱 끝으로 문에 붙은 쪽지를 다시 가리켰다. 나는 아마도, 포집 아줌마 말이 맞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과일 가게 밖에는 귤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활짝 열려 있는 맨 위 상자는 귤이 수북이 담겨 있었고 상자에는 만 원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종이가 꽂혀있었다.
“어머나, 이게 만 원인가 봐. 시장이라 싸긴 싸네. 사장님 이거 만 원이에요?”
사장에게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럼 귤도 한 상자 주세요.”
요즘 과일 값도 금값인데 만 원에 귤을 이토록 수북하게 살 수 있다니, 이런 가성비가 대체 얼마 만이냐, 이 정도면 며칠간은 실컷 귤 까먹으면서 만 원의 행복을 누리겠구먼,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전시되어 있는 수북이 쌓인 귤 한 상자를 기대하고 있는데 사장이 안쪽에서 귤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저기 있는 거 아니에요? 저는 저건 줄 알고 달라고 한 건데요.”
“저건 귤 크기 보여 주려고 쌓아 놓은 거고요.”
‘아뿔싸, 낚였다,’ 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만 원도 나쁘지 않은 가격이지, 뭐, 하는 현실적응력으로 양이 확연히 줄어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는 귤 상자를 군말 없이 받아 들었다. 사람을 홀릴 만큼 수북이 쌓아 놓은 귤 상자를 만 원이라 적어 놓고 만 원에 팔지 않는 것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놓고 대목을 목전에 두고도 손님 귀한 시장에 수행원들을 잔뜩 거닐고 시장까지 염장을 지르듯 다녀가 울화통이 제대로 난 사장과 시비를 가리는 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나, 싶어 더는 군말 없이 굴면서도 손님 앞에서 씨발, 이라고 내뱉는 이 과일가게를, 꽤 오랫동안 제수용 과일을 사던 이 단골가게를 이제 그만 떠나야 하는 건가, 착잡한 심정으로 계산했다. 내지르는 비명 끝에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