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하는 자에게 작은 속삭임

비극의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주고 싶은 마음

by 비단구름

“너의 앞날을 축복해.”



지난 토요일 아침은 무척이나 부산스러웠다. 간밤에 영화 ‘비긴 어게인’을 보고 한 시가 넘어 잠이 든 바람에 아침엔 열 시가 다 되어 일어났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이 늦으니 허둥지둥 댈 수밖에.


눈 꼽을 떼 가며 집 앞 베이커리로 달려가 크로켓과 크림 바게트와 설탕 토스트와 소시지 빵을 사 온 뒤 곧바로 계란 프라이를 만들었다. 계란 프라이를 오버 하드로 익히는 동안 커피를 끓였다. 우유도 컵에 따라 후다닥 늦은 아침을 차려 내놓았다. 제법 푸짐하게 차려진 국적 불명의 아침에 흐뭇해하며 크림 바게트를 입에 넣는데 케이의 대학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재진이 녀석 결혼식 갈 거냐?”


아, 맞다! 오늘 결혼식 있다 그랬지.


“그런데 그놈은 결혼을 하면 한다고 전화라도 하든지 아니면 문자라도 보내던가 하지 말이야.”


홀짝홀짝 달달이 커피로 목을 축여가며 케이의 통화는 계속되었다.


“그래? 아무한테도 연락 안 하고 밴드에만 올려놨다고? 너도 밴드에서 본 거란 말이지? 하, 그놈 참. 일단 알았고……. 뭐, 그렇지. 가야지. 그런데 결혼식이 몇 시라고 했지?”


이런 내용의 통화였다. 그러니까 오늘이 케이의 대학 후배의 결혼식이라는 걸 케이는 동기들로부터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초대를 받았다고 할 수도, 받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 경조사라면 열일을 제치고 달려가는 사람이다 보니 결혼식 당일 아침까지도 결혼식을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적잖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적우적 거리며 토스트를 뜯어먹듯 오늘의 새신랑을 달콤 쌉싸름하게 뜯고 있는 케이의 서운함이 남일 같지만은 않았다. 빵과 커피를 마시며 나 역시 오늘 저녁의 행선지를 어찌할까, 구차스럽고 편협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고민의 시작은 열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오후 이십 년 지기 친구에게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얘가 어쩐 일이래, 하며 반가움에 화색이 돌아 클릭해 보니 딸아이의 돌잔치 초청장이었다.


토요일 저녁 여섯 시, ○○뷔페.


흠, 흠.


문자를 확인한 나의 입에선 기쁨과 반가움이 그저 흠, 흠, 하는 소리로 바뀌어 나왔다. 이놈의 계집애 몇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고작 문자 하나 턱 보내다니. 서른다섯에 얻은 귀한 딸내미 돌잔치인데 이참에 전화라도 한 통해서 불러주었다면 이모 된 도리로 돌쟁이 아기처럼 손뼉을 치며 신난다 했으련만 나에게 그 정도의 애정과 성의도 없단 말인가, 서운한 마음에 잔뜩 골아 있었는데 케이에게 불편한 속내를 비치지도 못하고 오늘 아침 티스푼으로 커피를 휘적휘적 저을 때까지도 혼자 흠, 하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서운함보다 더 쫀쫀하게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파티에 가도 환영이나 받을 수 있을 런지, 혹시 나는 굳이 얼굴을 비치지 않아도 되는 하객은 아닐 런지, 하는 두려움과 소심함의 감정은 옵션이었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백색 카드봉투가 우편함으로 배달되던 것이 모바일 초청장으로 대체되어 손바닥만 한 스마트 폰 클릭 한 번이면 손쉽고 빠르게 컬러풀한 초청장을 퍼 나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이런 초대 방식이 요즘 트렌드이고 이런 거로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들면 변화에 적응도 못하면서 피곤하기까지 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도 안다. 나를 잊지 않았기에 빼먹지 않고 불러주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초대에 감사하다. 그런데 아날로그 감성이 너무 충만해서일까, 어떤 경우에는 도무지 이놈의 디지털 감성에 가끔은 심통이 나고야 만다.


촌스럽고 구시대적인 나의 꼰대적 괴 논리에 따르면 파티의 모든 과정은 즐겁고 설레어한다. 나에게 생긴 기쁜 일을 소중하고 반가운 이들을 모아 놓고 함께 즐거워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이므로 파티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부터 온갖 정성과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지사이며 게스트를 불러 모을 때도 이왕이면 조금 더 적극적이면 좋지 않겠느냔 말이다.


이왕 판을 벌일 거라면 신나게, 멋들어지게, 요란하게, 거나하게 판을 벌이는 거다.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음성 통화도 이때는 마지막 1초까지 알뜰하게 써버리는 거다. 무료가 아니면 어떠한가, 비록 고효율을 추구하는 경제이론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달은 통신료 폭탄을 좀 맞더라도 스마트 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안부도 좀 물어가며 친한 척도 좀 하고 얼굴은 늙어가고 있지만 목소리는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며 서로의 바쁜 일상 탓에 근래 들어 소원하고 연락은 좀 뜸했지만 너는 내게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out of sight out of mind)는 아니라고, 너와 나는 여전히 친밀한 사이라는 위안을 좀 가져 보자는 말이다.


내가 호스트가 되어 파티를 벌이는 순간이 끊임없이 온다면야 거추장스러운 형식과 예의 따위는 무시되어도 좋을 테지만 일생을 통틀어 내가 호스트가 되는 파티가 몇 번이나 오겠는가. 결혼식, 아이 돌잔치 한두 번, 자녀 결혼식 한두 번, 부모님 칠순, 팔순, 그리고 내 칠순, 팔순 정도로 기껏해야 열 손가락 개수만큼일 뿐이다.


그나마 이것들도 초대장이 사라졌듯이 먼 훗날 언젠가는 사라져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이왕 파티를 열기로 마음먹었다면 이놈의 절차와 형식에 약간의 미련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 사는 거 별거 없는데.


고까짓 봄 햇살 같은 작은 정성이 뭐라고 꽁꽁 언 겨울 눈 녹이 듯, 서운한 닫힌 문 열 수 있는 열쇠 하나쯤 모두 쥐고 있는데.






편하게 속을 터놓을 할 피붙이가 아니고서야 서운한 기분을 토로할 마땅한 데도 없고, 친구도 잃고 싶지 않은 나는 이렇게 자가 치유를 시작한다.


내가 와주길 바라면서도 평소에 소식이 뜸했던 탓에 너무 염치를 차리느라 직접 말하지 못했던 거라고. 더구나 먼 거리에 사는 나에게 꼭 오라고 차마 부담 줄 수 없는 고운 성품의 소유자가 바로 그 계집애인지라 아마도 문자를 보냈던 거라고 착하고 싹싹했던 그 계집애와의 우정을 곱씹는다.


그리고 케이의 그 녀석은, 시간 되시는 분들만 참석해도 자신은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며 되려 깊은 배려 가득한 마음으로 밴드에 초청장을 올렸겠거니,라고 여기며 케이의 손에 부조 봉투를 쥐어준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여 준 지인들의 정성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여린 심성의 소유자일 거라고 믿으며 케이의 생면부지 후배와 아리따운 신부의 새로운 인생을 축복한다. 그리고…….


‘요즘은 모바일 초청장이 초대하는 자들의 대세이므로, 참 편한 세상이야,’라고 작고 작은 내 마음을 설탕 둘, 크림 하나 들어간 달달한 인스턴트커피로 달랜다.

keyword
이전 03화시장에서 시장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