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후의 뜻밖의 것

상처 입은 자가 상처받은 당신에게

by 비단구름

“네 모습 그대로 널 좋아해.”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내는 남다른 기백이 근사한 여든의 노인을 뵈었다.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여 박물관을 세우신 그분을 뵐 때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인다. 구월 어느 날 그분을 뵈었는데 요즘 돈이 없어 박물관 운영이 힘들다고 하셨다.


“IMF 때도 힘들었지만 요즘이 더 힘들어.”


말씀 말미에 내 손을 잡으시더니 신신당부하셨다.


“자네는 돈 떨어져도 어디 가서 돈 없는 티 절대 내면 안 돼. 사람들이 다 떠나. 그리고 무시당해.”


여름 끝자락이 가을 정수리로 옮겨가는 길에서 상처 입은 어른이 앞으로 상처받을 젊은이에게 주는 애정 어린 당부였다.


돈뿐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학교, 사무실, 소개팅 자리, 교회, 학부모 모임, 동창회 등 만남이 있는 모든 곳에서 매 순간 거르는 행위를 반복한다. 지하철이나 버스의 빈자리를 선택하는 짧은 순간에도 일면부지의 그들 중 누구 옆에 앉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일면식도 없는 그들을 걸러내고야 만다. 열심히 걸러내는 그들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걸러진다. 심지어 그들이 누군가를 걸러내고 있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사람을 걸러낸다는 건 유한한 인간관계를 새삼 확인시켜 주는 행위다. 친구를 가장하며 내 주변에 섞여 있는 검정새치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거짓 미소, 뒤돌아서자마자 내 험담을 할 것이 뻔한 친구, 곧 내 뒤통수를 칠 배신자,라는 세상 어떤 약으로도 못 고칠 의심이 거르는 행위를 부추긴다.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21세기 식 피라미드형 계층론은 사람을 걸러내는 행위를 현명한 처세라고 포장한다. 얍삽한 인맥주의를 지향하고 구름길로 향하는 기회주의를 타라고 광고한다.






선택의 여지란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선 먼저 걸러내야 하는 걸까.


어차피 인간관계라는 것이 거르고 걸러지는 과정의 반복이므로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인맥의 시작이고 생존의 법칙이라 여긴다면, 그런 연유로 사람 거르는 안목을 좀 갖추고자 한다면 ‘바닥으로 실컷 떨어져 보는’ 방법이 뜻밖의 운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바닥으로 떨어져 보는 것은 진정한 벗을 가려내고자 하는 이에게 지름길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불행은 진정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자를 가려준다,’


기원전 384년에 태어난 322년에 사망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이천 년 전에도 불행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불행으로 고통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확실히 불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진정한 친구를 가려주는 계기가 된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주변 사람들이 신속하게 당신에게 등을 보인다면 당신 또한 쉽고 빠르게 당신 편을 가장하며 거짓 미소로 곁에 머물렀던 사람을 구분해 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고꾸라지는 바닥이 깊을수록, 바닥에 오래 머물수록, 바닥에서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수록 정확하게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걸러 내겠다고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현 상황을 내던지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순 없다. 대신 주변 지인에게 호의를 의식하지 않은 호의를 기꺼이 베풀어 볼 것을 권한다.


호의를 베풀다 보면 호구가 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항상 이기려고만 하는 사람, 언제나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 손해는 한 번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깍쟁이, 나의 호의를 어느새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있는 사람, 심지어 호의를 베푸는 나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 기분이 땅으로 꺼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는 이 정도 해줬는데 상대방은 얼마나 주는지 가자미눈을 하고 감시할 필요는 없다. 내가 준만큼 상대에게 반드시 받아내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호의를 베풀고 어떻게 하나 보자,라며 사람을 시험에 빠뜨리는 얼굴이 과연 아름다울까.


테이크 앤 포겟((Take and Forget), 테이크 앤 기브(Take and Give),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기브 앤 포겟(Give and Forget) 중 ‘베풀고 잊어버리기’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때론 실망하고 때론 상처받고, 때론 시커멓게 썩은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배신감과 서운함에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날을 보낼 수도 있다. ‘좋은 사람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도록 나를 불행의 늪에서 괴롭히지만 생각지도 않은 이가 나의 소중한 사람으로 오랜 시간 묵묵히 곁에 머물러 있었음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지도 모르니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함에도 시도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여리고도 속상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불행은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자기 계발과 자기 성찰로 이끌어 나를 다음 단계로 나가게 해 준다. 나는 과연 어떤 지인인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주변의 지인들을 내 편과 내 편을 가장한 척하는 사람들로 가려낼 자격이 나에게 있기는 한 건지. 내가 지금 그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의 상황이 나보다 나아서는 아닌지. 그와 친분을 유지해야만 나도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은 착각과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목적으로 비굴한 속내를 감추고 그와의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가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안 좋아지더라도 그를 걸러내지 않고 여전히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지인이 당신이길 바란다. 인생의 기복을 타다 바닥으로 내려앉은 그를 업신여기거나 비웃지 않고 그가 무너졌을 때 그동안 스스로를 을이라 여기며 꾹꾹 눌러 담았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쏟아내며 단번에 등을 돌리는 서늘한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벗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갑과 을의 상황이 바뀌면 여태까지 잡았던 손을 매몰차게 놓아 서러움 주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애초에 그와 교제를 시작할 때 그의 눈빛과 미소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마음에 끌려서 첫눈에 반하듯 순수한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갔기에 그의 상황 따위 좋든 나쁘든 무슨 상관이냐며 그와 벗이 되었기에 그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여전히 그에게 따스한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고 여태 그래왔듯 편안하게 곁에 머물 수 있는 벗이 바로 당신이라면, 주변의 사람을 가려내려고 애쓰며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될지도.


내 편을 가장한 척하는 사람마저도 향기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기에 어느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향기로운 벗이 당신 곁에 분명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예쁜 사람 옆의 예쁜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시대 잠시 불행이 머물렀다 해도 비가 그치면 언제고 쌍무지개 길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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