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결국 모두에게 돌아간다.
요즘 부쩍 가슴에 구멍이 생기고 있다. 시커멓고 거대한 구멍이 가슴을 후빈다. 마음이 답답하고 아프다.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고 오던 고등학생의 비극을 기사로 접한 날도 그랬다.
중학생 아이들의 비극을 접했을 때도.
고독사한 이십 대 청년의 책상에서 수십 장의 자기소개서가 발견되었다는 비극을 접했을 때도.
‘죄송합니다.’ 고운 심성을 작은 메모지에 남기고 떠난 일가족의 비극을 접했을 때도.
그전에도.
또 그전에도.
죽음에 무게를 매길 수 없지만 피워볼 생각도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이들, 희망을 포기하고 떠난 사람들의 비극을 접할 때면 유독 심장이 조여 오고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혼자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롭다.
케이가 상갓집에 들렀다 온다고 전화가 왔다. 케이 지인의 고등학생 아이의 장례식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케이에게 이것저것 자세히 묻지 않았다. 아이의 죽음에 대해 꼬치꼬치 입밖에 내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케이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이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 정도만으로도 같은 부모로서 모든 슬픔을 공감했다.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뒤척였다.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고 있는 것 같다. 옆으로 누운 얼굴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자는 줄 알았던 케이도 속이 상한지 깊은 탄식 섞인 한숨을 밖으로 내쉬었다.
왜 자꾸 이런 비극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이제 겨우 십 대, 이십 대 아이들이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는 가혹한 사회.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내지 못하게 된 사회. 다른 꿈을 꾸지도 말라는 사회.
정말 우리의 관심은 돈과 성공과 사회적 지위에만 있는 것일까. 어딜 가도 온통 돈과 성공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법, 주식으로 돈 버는 법, 재테크로 돈 버는 법, 시간 관리 잘해서 성공하는 법, 인간관계 잘해서 성공하는 법, 공부 잘해서 성공하는 법.
성공하기 위해선 약간은 룰을 어겨도 괜찮고, 실수는 절대 인정하면 안 되고, 잘못은 책임지지 않으면 시간이 해결해 주고, 필요하다면 속임수와 사기쯤은 사용할 수 있고, 옆 사람에게 약간의 피해를 입히는 것쯤 대수롭지 않은 돈과 성공에 맹목적인 우리 모습을 보는 아이들이 병든다.
아이들의 좌절을 무시하면서 '그래도 돈이 많아야 돼,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해,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곳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비극의 서막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이 시대의 지식인들,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에 관심을 갖고 있을까. 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정치가 그리도 하고 싶은 걸까.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꽃도 펴보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쓰러지고 있는데 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이 하려는 원대한 일에 비하면 이런 일은 그저 개인의 문제인 걸까.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서,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선택을 보면서, 일가족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하는 현실을 보면서도 잘 먹고, 잘살고, 잘 나가는 그들로서는 당장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겨져 그들의 관심에 들지 못하는 걸까.
비극적인 사회에서 비극은 결국 모두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말이다. 시간차를 둘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