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소화기 카페

흐린 날에도 해가 떠 있는 것처럼 사랑해

by 비단구름

어느 카페에 나무와 소화기가 있었다.

심심해진 그가 시를 지어 보자고 하더니

나보고 먼저 하라고 떠밀었다.


“내 열불을 꺼주는 은혜로운 소화기”


아, 이건 시가 아니라 속마음


“이제 당신 차례야.”


쑥스러운 마음을 웃음으로 때우며 그도 시를 읊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공의 이익처럼

모두에게 나눠주는 따뜻한 온기처럼

나오자마자 공기 속으로 퍼져간 그의


순수한 영혼은 보이지 않듯

순수한 것들은 빠르게 숨어버리듯

그의 말갛고 뽀얀 시는 사라졌는데


시의 내용보다,

시의 문구보다,

착한 어린이가 쓴 동시 같은

보송보송한 느낌만은 남아 있는 그의 시


그의 영혼은 웃는 어린이구나,

그의 짧은 시가 말해주었다.


이렇게 맑고 고운 영혼을 더욱 잘 보살펴주어야겠다고

아프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고

카페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나무와 소화기를 보며 생각했다.

나무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살려주는 소화기

심지어 유효기간마저 있는 유한한 소화기

나무를 살릴 때마다 텅 빈 깡통이 되는 소화기






일방통행인 관계가 있다.


한쪽의 희생을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받아먹고

한쪽의 땀 한 방울까지도 빨아먹는 관계


한쪽은 속이 비어 가는데

한쪽은 배가 차오르는 관계


한쪽은 텅 빈 속에 골병마저 들어가는데

한쪽은 얼굴이 피는 관계


한쪽은 시들어가고

한쪽만 꽃이 피는 그런 관계도

부부의 연이라고 백년해로를 강요받았다.


요즘 아이들은 똑똑해서 동등하지 않은

이런 관계는 진즉에 끝낸다.

너무 달라도 함께 있을 때 든든한 나무와 소화기를

오래도록 관찰했다.


옆에 앉은 그의 얼굴 한 번 보고

나무와 소화기 한 번 보고.


어쩌면 나는 나무, 그는 소화기

어쩌면 그는 소화기, 나는 나무

우리는 서로를 살게 하는 사이여야 하는데

선택할 수 있으면 차라리 내가 소화기가 되어야 하는데


<나무와 소화기>


얼마나 든든할까, 저 나무

얼마나 좋을까, 저 소화기

저렇게 달라도 잘 어울리네.




상대를 바꾸려 하면 갈등이 생긴다.


그를 바꾸려 하는 나를 바꾸어야,


이해가 되지 않는 그에게 내가 손 내밀어야,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사랑을 한다.

어떻게 인내할 수 있는지,

어떻게 고난한 사랑할 수 있는지,

맛있는 거 함께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칠 때까지 사랑은 노력해야 한다.


곁에 있는 사람이 주는 사랑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매일 행복할 수 있다.


그가 있어 매일 더 용기가 생긴다.

그가 있어 매일 더 감사한다.

그가 있어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나의 그에게 고마움과 연민을 느낀다면

나의 부족함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신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나는 아직 멀었지만.


다온숲 풀빛정원, 파주, photo by 비단구름

카페 다온숲 풀빛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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