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에도 해가 떠 있는 것처럼 사랑해
퇴근하고 등목을 마친 아빠와
마당의 평상에 앉아
커다란 반달모양 수박을 먹다
그대로 선선한 여름 바람 솔솔 부는
낮 같은 저녁이 되면
평상 위에 펼친 양은 밥상에 모여 앉아
엄마가 게딱지에 비빈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어 주는 족족 받아먹으며
한 입 더 달라고 배를 채우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시월부터 시작하는 긴 겨울
집 앞 강이 얼면
아빠 손을 잡은 아이
스케이트 걸음마를 시작하고
강가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따뜻한 어묵 국물을 건네주던
꿈에도 그리는 순간
엄마아빠 품에서 근심 없던
그리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신이 내게 그 시절을 다시 준다 하면
정중하게 사양해야 할 것 같아.
나는 편하지만
엄마아빤 힘들었을 테니까.
나는 좋지만
엄마아빤 고단했을 테니까.
나는 밥만 잘 먹어도 칭찬받았지만
엄마아빤 무서웠을 테니까.
뼛속까지 추위나 실컷 먹는
시린 세상에서
나를 지켜내는 하루하루와
불안한 미래에
이리저리 잠을 뒤척이며
깨질듯한 핏빛 두통 안고 살았을 테니까.
머리를 얼음에 박다 말고
설원을 내달리는 찬바람의 북극여우처럼
이제 나는 그들을 찾는 어린아이 대신
아름답고 시린 설국에서 그들을 지켜내
그들이 그랬듯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찬사람이 불든
눈발을 가르며 달릴래.
행주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