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이 아니면 안 되는 시대의 자기 관리
● 동안이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언젠가 지인이 진지하게 귀띔해 준 적이 있다. 딱 내 나이부터 관리를 받으면 덜 늙는다고. 50대, 60대가 되었을 때 확실히 어려 보인다고.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인은 나를 위해 진심으로 조언해 준 것이지만, 그녀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 나는 그런 걸 하기엔 너무 겁이 많고 소심하다. 한편으론 다른 의미의 염려가 든다. 나이가 먹을수록 한 해 한 해 다르다는데 급속도로 노화가 와서 50대, 60대가 되었을 때 주름 자글자글한 할머니로 보이면 어떡하지? 동안이 아니면 안 되는 시대, 나만 불안한 걸까?" 지인의 조언대로 진짜 뭐라도 해야 하는 걸까? 노화는 몹시 두려운 미래다.
● 우리가 소비하는 ‘동안 콘텐츠’
동안 열풍이다. 아이돌은 대부분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중반이다. TV 뉴스에 40대, 50대 여자 앵커는 드물다. 사람들의 외모적 관심은 이목구비를 넘어서 이제는 동안인 듯하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이런 제목의 기사를 접한다.
아기 엄마 맞아? 아이 낳고도 44 입는 아가씨 같은 어쩌고저쩌고
30대에도 교복이 어울리는 어쩌고저쩌고
40대인데 20대처럼 어쩌고저쩌고
50대 맞아? 대학생 같은 어쩌고저쩌고
나이가 60인데 옷 사이즈 44 입는 어쩌고저쩌고
40대가 40대로 보이는 것이 관리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제목들 대신,
40대가 20대로 보여야 할 것 같은 제목들 대신,
결혼했어도 아가씩 같은 누구, 출산했어도 아줌마 같지 않은 누구, 나이가 몇인데도 20대 같은 누구, 40kg 유지하는 누구, 44사이즈 입는 누구라는 어필 대신 이렇게 어필하면 좋을 텐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 몰입감을 주는 연기의 대가 ○○
순식간에 감정을 이끌어내는 연기력의 소유자, 몰입을 이끄는 배우 ○○
특유의 매력적인 웃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유머의 천재, 코미디언 ○○
강렬한 무대 존재감과 함께 가창력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가수 ○○
리듬과 움직임의 완벽한 조화를 자랑하는, 무대 위의 마법사, 댄서 ○○
40대가 40대로 보이는 것이 잘못한 거 같은 분위기
50대가 50대로 보이면 세상 끝난 것 같은 분위기
30대에도 40대에도 50대에도 기를 쓰고 20대처럼 보여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출산을 해도 기를 쓰고 날씬한 아가씨처럼 보여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아기 엄마가 아기 엄마로 보이면 관리하지 않은 게으른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한 사납고 무서워 보이는 사람들이 동안 소리에 흡족하는 분위기
우리는 왜 나이대로 보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견디고 있을까. 40대가 40대처럼 보이는 건 정말 문제일까?
● 모두가 10년쯤 젊어 보이는 사회
어려 보인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이 된 것 같은 분위기 속에 다들 더 어려 보이려고 한다. 티브이를 틀면 20대처럼 보이는 50대, 60대로 보이지 않는 60대, 애 엄마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애 엄마들이 젊어지는 비법을 설파한다. 티브이 속뿐 아니라 거리를 나가 봐도 요즘 다들 10년쯤은 젊어 보인다. 30대는 20대로 보이고 40대는 30대로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으면서, 빨리 월 천만 원을 벌고 현금 자산 10억을 만들고 싶어 하면서, 빨리 건물주가 되고 싶어 하면서, 빨리 은퇴하고 싶어 조급함을 부리면서 외모만은 10년이나 마이너스, 심지어는 20년, 30년이나 전으로 붙잡아두려고 한다. 모두 돈 많은 젊은 부자만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 노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
동안 열풍은 저속 노화로 이어진다. 저속 노화는 노화를 거스르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으로 노화의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노화는 자연의 섭리이며 순리라서 노화를 역행해 십 년, 이십 년 어려지는 것은 비록 젊어 보이더라도 외모만 젊어 보이는 것뿐,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도 조금씩 노화가 진행 중이다.
마흔 살이 마흔 살로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나태한 것도 아니다. 자기 관리를 못한 것도 아니다. 나이보다 어려 보여야 한다고 부추기지만 나이보다 어려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나이보다 어려 보여야 자기 관리를 잘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강조하지만 외모는 일부를 설명하는 말일뿐 자기 관리란 꾸준하고 성실한 생활이다. 어려 보이는 외모는 따라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50킬로그램이 되어서, 마름이가 되어서 20대처럼 보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쫄쫄 굶고 하루에 1000kcal씩 태워서 날씬해지겠다. 다이어트 약이라도 먹겠다. 보톡스를 맞아서, 필러를 맞아서 20대로 보인다면 맞겠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40대는 40대, 50대는 50대, 60대는 60대다. 20대처럼 보인다는 둥, 30대로 보이다는 둥 해도, 40대는 40대로 보이고, 50대는 50대로 보이고, 60대는 60대로 보인다.
“십 년은 젊어 보이세요.”라고 하는 말은 진심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젊어 보여서, 누군가 나에게 젊어 보인다고 말하면 감사할 뿐 그러려니 한다. 나로서는 조금 젊어 보이는 40대, 조금 젊어 보이기는 하지만 50대, 아무리 봐도 60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요즘은 젊어 보이는 사람이 많으니까 보이는 것보다 몇 살쯤 보태면 제 나이다.
사람 눈은 다 비슷한 것인지 내가 자연 노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점점 내 나이로 보인다. 클레오파트라도 노화를 막지 못했고, 죽지 않겠다고 다른 나라까지 블로초를 찾아오라 사람을 보냈던 진시황도 늙어 노쇠하여 죽었다. 자기 관리라면 전문가인 셀럽들도 별의별 거 다 해봤을 텐데 때가 되면 결국 딱 제 나이로 보인다. 50대는 50대로, 60대는 60대로, 70대는 70대로.
눈썹 문신을 하고, 보톡스를 맞고, 필러를 만고, 얼굴 피부를 당기고, 레이저 시술을 받고, 피부를 벗겨내고, 쌍꺼풀을 하고, 코를 높이고, 턱을 깎고, 이마를 볼록하게 하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도,
40대는 40대로 보인다. 조금 어려 보인다 해도 말하는 거 보면 바로 티 난다. 예전에 어떤 동안 사람을 만났다. 누가 봐도 주름 없고 잡티 없고 반질반질하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동안이었는데 “아싸!” 이러는 거 보고 바로 어느 시대 사람인지 알았다.
● 진짜 자기 관리란 무엇일까?
지인 중에 낼모레 60인 지인이 있다. 그녀는 낼모레 60인 것을 알고 보아도 볼 때마다 화사하다. 방긋이 웃기 때문이다. 그녀 또래 사람들 중 그녀만큼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을 보는 일은 드물다. 60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미소 짓는 법을 잊은 것처럼, 웃는 법을 잊은 것 같이 잔뜩 성질이 난 것처럼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잔뜩 성질이 나서 씩씩대며 다니는 사람들이었지만 가질 건 다 갖고 있었다. 서울 또는 수도권의 자가 아파트, 고급 자동차, 명문대를 다니는 자식들, 유학을 다녀온 자식들, 으리으리하게 잘나가는 배우자, 괜찮은 직업...
외모를 관리하면서, 감정은 방치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한다. 동안 열풍 속 진짜 자기 관리는 젊음을 붙잡고 있느라 놓치고 있었던 것을 찾아 챙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중 하나는 만족. 만족에도 때가 있는 것 같다. 가질 건 다 가진 그녀들에 비하면 성질은 내가 내야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지금 만족하기로 한다. 지금 만족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루라도 꼭 웃겠다고 다짐한다. 하루 한 번이라도 웃는다. 혼자라도 웃는다. 이왕이면 내 앞의 사람을 웃는 얼굴로 대하자고 생각한다. 웃는 얼굴을 선물로 주기로 한다. ‘웃는 얼굴=착함=만만함’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웃는 얼굴이 귀해졌다. 웃는 얼굴이 몹시 그리운 시대다. 웃는 얼굴은 웃는 표정을 만들고, 욕심이 차지 않아 불만족으로 시간을 보내면 시간은 짓궂게도 얼굴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을 그려놓는다. 그것은 한편으론 웃는 얼굴의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시간의 고마운 선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