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경박함

지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

by 비단구름

“내가 너와 함께 있을게.”



오래전 나는 소공동 롯데호텔 프렌치 레스토랑인 쉔부른(Schoenbrunner)에서 일하고 있었다. 매일 봐도 질리지 않던 서울 한복판의 야경과 쉔부른을 드나들던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보던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꽤 있어 지루한 날이 없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의 식사를 주문하고 더불어 십만 원이 넘는 와인을 막걸리 찾듯 주문하던 으리으리한 사람들. 저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데 저렇게 비싼 식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 돈이 어느 정도로 많아야 돈 같은 거 의식하지 않고 저런 식사를 할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게 했던 사람들. 그곳은 우리나라 정재계 최상류 층들이 드나들던 별천지였다.


쉔부른에는 VIP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직원들이 있었다. 직원들은 별 다섯 개 특급 호텔에 걸맞은 매너와 태도를 갖추고 빈틈없이 움직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도 지배인부터 캡틴과 일 년 차 선배까지 모두 어른으로서의 매너와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들인 나에게 텃세를 부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호텔경영 비전공자로 모르는 것 투성이었던 나에게 누구 하나 갑질하는 이가 없었고 소리 지르거나 막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가르칠 때도 실수했을 때도 밝고 점잖게 알려주던 사람들이었다.


까다롭고 복잡한 프렌치 요리 코스별로 서빙 순서와 이동 동선과 자신의 역할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곳에서 서빙 순서에 혼동이 오는 듯하면 신속하게 다가와 서로를 커버해 주고 눈이 마주치면 말없이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양식 세팅하는 법, 알라카르트와 코스 요리의 차이, 고블렛과 와인잔의 차이, 시저 샐러드, 테이블보 펼치는 법, 인사하는 법, 리본으로 장미 접는 법, 유산균 버섯으로 유산균 배양해 먹는 법뿐만 아니라 정제된 언어와 행동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비로운 매력을 배웠다.


쉔부른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매일 근사한 파티가 열렸다. 출근하자마자 손님들에게 건넬 장미를 만들고, 바게트에 마늘 소스를 바르고, 테이블 보를 새로 교체하고, 고블렛을 세팅할 때도 직원들은 화기애애했다. 손님이 빠진 홀의 뒷정리를 할 때도 피곤함 대신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가 가득했던 곳, 나의 첫 사회생활은 여러모로 행운이었다.






국내 최고 호텔의 최고급 레스토랑에 버금가는 품격을 갖춘 직원들 중에는 백발의 그분이 계셨다. 서상록(1937년~2014년) 삼미그룹 前부회장. 1997년 삼미그룹이 부도가 난 후 그룹 부회장이었던 그분은 고민 끝에 웨이터가 되셨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기업 임원이 퇴직하고 경비도 하고, 택시 운전도 하고, 치킨집 사장도 하는 것이 요즘에는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룹 부회장을 그만두고 웨이터로 변한 행보는 당시에는 무척이나 파격적이어서 방송과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 되었다. ‘그렇지, 직업에 귀천이 없는 법이지,’라면서도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걸. 높으신 양반이 웨이터를 하다니 말이야.’라고 그분의 행보를 칭송했다.


그분의 삶을 담은 책 『내 인생 내가 살지』에서 전한 “지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메시지는 여러 매체에 소개되어 그룹 부회장이었을 때보다 더 유명세를 탔다.


‘부자가 왜 부자인 줄 아는가?’

‘부자는 돈을 버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지.’


소소한 소시민의 삶도 부자의 삶과 마찬가지로 아무에게나 쉽게 허락되는 것은 아니라고 직접 사인해 내 생일에 선물해 주신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지셨던 분이시지만 한 번도 무례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하지 않으셨다. 연세가 많으셨음에도 이십 대 초중반인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시고 부드럽게 말을 건네주던 근사한 노신사,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은 행보를 멋지게 해내신 그분을 존경했다.


어느 날인가 한 무리의 일행이 쉔부른을 찾았다. 캡틴이 주문을 받았다. 그들을 서빙하기 위해 그들 곁으로 갔을 때 그들은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허심탄회하고 편안하게 나누던 이야기, 본의 아니게 가까이서 들어버린 말. 그들은 나이스 하고 젠틀하게 그분을 조롱하고 있었다.


웨이터나 하고 있다고.


나는 그들이 우아한 몸짓으로 스테이크나 썰면서 그들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조롱하는 꼴을 보고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미소를 지으며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들이 왜 그분을 조롱했는지 모른다. 그분이 눈높이를 낮추었기 때문인지, 그분이 망했기 때문인 건지, 그들의 권위에 누를 끼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한 손에는 포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이프를 잡고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자르며 조롱과 비웃음을 이어나가는 것을 들으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기분을 느꼈다. 최고급 프렌치 요리에 돈으로도 못 사는 인생의 품격도 함께 나르고 있었는데 그들은 보지 못했다. 내가 발을 딛고 싶은 어른의 세계는 이렇게 쌉쌀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토록 되고 싶었던 어른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조롱은 섬뜩하고 날이 선 칼날이 되어 그들이 지불하는 일 인분의 식사비용이 큰맘 먹은 가족 외식 한 끼 비용과 맞먹는 작지만 소중한 내 세상까지 무자비하게 침범하여 내 껍데기마저 베이는 것 같았다.


일을 마친 새벽 밖으로 나와 보니 서울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 중 한 곳인 소공동의 밤거리는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리저리 회사를 옮기고 직업을 바꾸는 것은 끈기가 없다고 여겨지던 사회에서 IMF로 사업체와 직장을 잃은 사람들, 평생직장을 덕목으로 여기던 사회에서 대비 없이 노년을 맞닥뜨린 은퇴자들의 물결이 거리에 넘쳤다. 거칠게 떠밀려 흐르는 군중은 내 주위에서 갈라져 흩어졌다. 차가운 서울의 밤공기에 잠식된 나는 뽐내듯 서 있는 빡빡한 빌딩 속에 홀로 있었다.


감히 사 먹을 엄두도 못 내는 값비싼 음식을 기쁘게 서비스한 경험, 고급 요리를 먹으며 내뱉는 저열한 언사들, 조용히 미소 짓는 백발의 시니어 웨이터를 공간의 한편에 세워 두고 조롱하던 이상한 나라의 쉔부른 궁전을 떠났다.


나는 여전히 우아하게 스테이크 자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더 풍요로워졌고 더 조롱한다. 스테이크를 자르는 우아한 몸짓으로 그들과 마주 앉아 스테이크를 썰고 있지 않는 누군가를 잘근잘근 썰어 버린다. 나는 갈기갈기 조각난 스테이크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그들의 내장을 피해 도망쳤다. 그들과 마주 앉아 피 흘리는 스테이크를 써느니 굶었다. 굶주린 배를 잡고 간신히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금이라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게 빛나는 그들이, 보편적 삶을 썰어버리는 우아한 경박함이 조롱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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