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동네의 어떤 여자

어디서든 평안해졌기를

by 비단구름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걸음마를 곧잘 하는 돌 지난 아이와 집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들어오곤 했다. 무얼 하는지 몰라도 케이는 일찍 들어오는 날이 적었다. 회사 일은 혼자 다하는 것처럼 바빴던 케이가 일찍 퇴근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회사에서 가장 일을 잘해서 그런 건지, 가장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해서는 새벽에 들어오는 일도 잦았다. 케이는 일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 했는데 가끔 보면 정말 일 때문에 술을 마시는 건지, 일 핑계를 대고 술을 마시는 건지 의아했다. 내가 보기엔 퇴근 후 친구들과 만나 놀다 들어오는 날도 많았다.


다행히 나는 아기와 노는 것이 행복했다. 아기 보는 짬짬이 살림하며 부지런히 집안을 가꾸었다. 세탁기 돌리고 빨래 돌아가는 동안 청소기 돌리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어지러이 놓인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었다. 아기가 잠이 들면 아기 얼굴에 가까이에 대고 쌕쌕 거리며 자는 아기 숨소리를 듣고 아기 분 냄새를 맡았다. 자는 아기의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매일 새로운 감격이 차올랐다. 아기의 존재는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었다.


행복한 순간 문득문득 들이닥치는 공허함 같은 기분이 있었다. 때때로 ‘성인’ 사람과의 어른스러운 대화와 젊은 아가씨가 누릴 수 있는 향기로운 시간을 그리워했다. 가끔 집에 방문하는 친구를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다. 아이와 하루 종일 있는 생활을 독박 육아라고 하는 것을 요즘에야 알고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마음이 그랬던 거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더 다행인 것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단계별로 어려움이 완화된다는 점이다. 백일 지나고 좀 수월해지고, 돌 지나고 좀 수월해지고, 세 살, 다섯 살, 여섯 살이 지나고 또 한 번 수월해지고 학교에 입학하면 몸으로 하는 육체노동은 얼추 정리가 된다.


아이가 낮과 밤을 가리면서 한결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고, 아이가 말을 하니 좀 낫고, 아이가 혼자 수저를 사용해서 밥을 먹으니 이제야 밥을 제대로 먹는 기분이 들고, 아이가 혼자 똥을 누고 뒤처리를 하니 아이 똥이지만 그만 봐도 되어서 좋고, 마침내 아이가 혼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면 몇 십분 동안 허리를 수그릴 일이 사라지고 허리 아플 일도 끝난다.


아이가 열 살이 지나면 성인과 견주어도 될 정도로 정신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영글어 길고 긴 육아는 끝이 나고 오히려 좋은 친구를 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늘 그랬듯 사람 좋고 거절 안 하는 케이는 늦는다고 했다. 나는 아이와 저녁을 먹었다. 아이는 숟가락질도 서툴고 보조 젓가락조차 서툴지만 자기가 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개월 수였다. 그래도 밥은 주는 대로 넙죽넙죽 잘 받아먹어 아이에게 밥 먹이는 기쁨이 있었다. 아직은 흘리는 양이 많아 밥을 먹고 나면 아이가 앉은 주변을 깨끗이 닦는 것이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밥때마다 아이가 주는 대로 고루고루 잘 먹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갈까?”


밥 먹은 자리를 치우고 아이에게 물으면 말이 빨랐던 아이는 머리까지밖에 올라오지 않는 두 팔을 번쩍 들고 “신난다!”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매번 밖에 나가자고 할 때마다 “신난다!”를 외치는 아이를 보면 케이 없는 저녁이긴 해도 나 역시 덩달아 신났다.


아이에게 신발을 신기고 집 근처로 나갔다. 아직 근육이 약해 오래 걷지 못하고 지친 아이가 안아달라고 팔을 뻗었다. 아기띠를 매고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케이를 믿고 따라온 낯선 동네였다. 곧장 달려가고 싶은 부모님은 멀리 계시고 영혼의 짝꿍 같은 형제들도 매일 만날 수 없는 두려운 곳이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신혼집으로 걸어가며 버럭, 눈물을 쏟았던 징그러운 동네였다. 집을 나설 때마다 낯선 것들이 덮치는 미운 동네였다.


작은 아기를 가슴에 꼭 안고 연약하기만 한 아기의 따뜻한 품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조심스러운 동네를 목적 없이 그냥 걸었다. 아직도 내 집 같지 않은 어색한 동네에 저녁 바람이 불었다.


맞은편에서 어떤 여자가 걸어왔다. 한쪽으로 낮게 머리를 묶은 여자와 나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티셔츠와 편한 면바지 스타일의 바지를 입고 나온 거로 봐서 여자도 동네 사람인가 보다, 짐작했다.

여자와 거의 스쳐 지나갈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별안간 여자가 말을 건넸다.


“저기요.”


나에게 말을 건넸다기보다 나를 불러 세웠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기가 참 예뻐요. 몇 개월이에요? 산후조리는 어디서 했어요?”


여자는 내가 안고 있는 아이를 보더니 아이가 참 예쁘다고 말을 붙였다. 아이 있는 엄마들은 서로를 알아보면 으레 비슷한 인사를 건넨다.


“저희 아기는 두 돌 지났어요.”라고 말하던 여자가 갑자기 울먹이며 하소연을 했다.


“우리 시어머니가 이제 애도 다 컸고 하니 저더러 나가서 돈 벌어 오래요.”

“아이가 아직 어리다면서요? 애는 누가 보고요?”

“어린이집에 맡기면 된다고요. 애 다 컸는데 집에서 논다고 볼 때마다 그러세요.”


여자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여자의 울먹이는 얼굴을 보고서야 가까이서 봐도 몇 살인지 가늠되지 않았던 여자의 나이는 어림잡아 이십 대 후반, 많아 봐야 삼십 대 초반 정도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 품을 막 벗어난 어린 아기 같이 앳된 여자는 아마 혼자 있을 때는 울고 있을 것이었다.


남편은 어디다 두고 내 앞에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여자에게 나는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하는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어머니 말대로 일을 구하라고 해야 하는지, 어머니를 무시하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그런 집에서 나오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 미혼이었다면 아무 말이나, 아니 아무 말은 아니고, 냉정하게 조언했을 말들이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무것도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네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집에 있는 게 돈 버는 거다.”라는 말을 듣는 나에 비하면 우리 중 누가 더 나은 상황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십수 년이 흘렀다. 밖에 나가자고 하면 두 팔을 올리고 “신난다!”를 신나게 외쳤던 아이는 이제 “신난다!”를 내뱉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독박 육아인지도 모르고 지났던 시간들을 지나면서 나의 내면은 단단해졌는데, 그 여자는?


여자도 이제 평안해졌기를.


그간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이 여자를 놓아주었기를.


힘든 기억을 잊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하루 한 번쯤은 웃고 있기를. 지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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