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쌓이면 나아져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다.
음주? 화장? 연애?
모두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운전이다. 기동성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성인 인증이지,라고 생각했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멀리 가보고 싶어. 가능하면 멀리!”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일련의 과정은 필수다.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한다고 했더니 엄마는 듣자마자 반대하셨다.
“왜 운전을 하려고 하니?”
“엄마도 땄으면서!”
“엄마가 해봤더니 너무 위험해.”
엄마의 면허가 장롱 면허가 되는 것을 보았지만 운전에 대한 나의 강한 열망은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보다 컸다.
엄마가 반대를 한다는 것은 운전면허 학원비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할 수 없지, 뭐.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몇 달간 알바를 했다.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고 운전대를 처음 잡아봤다. 앞의 정지선이 잘 보인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1종 보통을 선택해 소형 트럭에 올라앉았다. 내 머릿속의 운전이란, 이론상으로는 운전대만 도로를 따라 굴리면 되는 아주 간단한 활동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클러치와 기어봉이 문제였다. 탈 줄만 알았지 클러치와 기어봉을 건드려본 적이 없었다.
“노면에 따라 기어를 1단, 2단 조작하면서 가는 거예요.”
“왜죠?”
“차가 힘을 받아야 하니까요.”
“차가 힘을 받는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도로 상태에 따라서 힘 조절을 해야 한단 뜻이에요.”
“왜죠?”
“그래야 잘 가니까요.”
“1단만 놓고 가면 안 되는 건가요? 그래도 가긴 가죠?”
“가긴 가죠. 그렇지만 잘 안 나가요. 엔진도 망가지고요.”
“왜죠?”
자동차와 기계의 메커니즘에 대해 손톱만큼의 이해도 없는 네 개의 바퀴만 동글하면 굴러가는 줄 알던 스무 살 때였다. 끊임없이 왜죠?를 되묻는데도 강사는 끈기 있게 기어봉 조작하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매우 친절하고 알아듣기 쉽게 잘 알려주는 유능한 강사였음에도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까지 나는 1단, 2단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차가 앞으로 설설 가는 가 싶더니 코너를 돌며 앞바퀴가 턱에 올라갔다. 설마 앞바퀴를 턱에 올리겠어,라고 생각했는가 보았는지 덤덤하게 조수석에 앉아 있던 강사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 기어를 후진으로 놓고요.”
“아아아아아악!!!!! 차가 뒤로 가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클러치에서 발 떼고 액셀 밝으면 돼요.”
“아아아악!!!! 또 뒤로 가요!!!!”
“괜찮아요. 차 뒤로 안 가요. 내가 브레이크 바로 밟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액셀 밟아요.”
스물 대 여섯 쯤 되어 보이는 강사가 매우 침착하고 이해심 많고 인내심까지 많아서 나로서는 행운이었다.
한 달 정도 코스 연습을 하고 실기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 평행주차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 차체에 대한 이미지와 차 크기에 대한 이해와 각에 대한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평행주차는 무리였다.
“어떡해요, 저? 평행주차 못하는데? 떨어지면 어떡해요?”
나의 단점을 파악한 강사가 요령을 알려주었다.
“괜찮아요. 평행주차 코스에서 바퀴만 살짝 넣었다 빼고 감점받아요. 그냥 통과하면 실격이니까 살짝 들어갔다는 나와야 해요. 대신 다른 코스 잘하면 돼요.”
나는 강사 말대로 평행주차를 과감하게 제쳤다. 대신 다른 코스를 집중 공략해 코스를 통과했다.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 평행주차? 앞뒤로 이십 센티 정도 되는 공간만 남으면 어떻게든 집어넣을 수 있다. 괜찮다고 말해주던 그 강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게 운전이란 진만 빠지는 골치 아픈 일로 남았을지 모른다.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운전은 아닌가 봐, 자책하며 위축될 뻔했다. 경험이 쌓이면 나아지는 것을!
“아아아아악!!! 너무 빨라요!!!”
“그래도 이건 너무 느린데 조금 속도를 내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20이에요.”
“그렇지만 이것도 너무 빠른데!!”
학원을 몇 바퀴 돌고 도로로 나왔다. 드디어 도로를 달릴 수 있다니 어른이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학원에서 돌 땐 주행? 이거 코스보다 쉬운데, 싶었는데 도로로 나오니 시속 20킬로인데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았다.
겨우 20으로 달리면서 30으로 속도 올리는 것도 비명을 지를 정도로 무서웠던 까닭은 내 속도 때문이 아니라 내 주위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 때문이었다. 차들이 빠르게 옆 차선을 지날 때마다 내가 타고 있던 차는 물론이고 내 심장도 마구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런 속도로 가다가는 뒤에서 달려오는 자동차가 내 뒤를 박을 것 같았다. 20으로 달리고 있었으니 아마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젊은 남자 강사는. 강사는 이번에도 매우 침착했다.
“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면 내가 브레이크 밟을게요. 속도 좀 올려봐요.”
강사의 응원과 이끔에 힘입어 20이었던 속도는 30, 40을 지나 안정적으로 높일 수 있었고 1학년 겨울 방학, 마침내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면허를 따고 나서 상상처럼 곧바로 도로 위를 쌩쌩 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땀나게 만들었던 클러치!
나를 시험에 들게 했던 주차!
신호 대기에 멈췄다 출발하려고 하면 클러치 조작을 못해서 시동을 꺼뜨리곤 했다. 특히 경사가 져 있거나 노면 상태가 안 좋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하면 클러치는 나를 더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재래시장에 끌고 갔다가 시동이 꺼져서 재래시장 한복판에 자동차와 함께 버려진 기분으로 안절부절못한 적도 있었다. 빼곡한 주차장에 차를 대지 못해 핸들을 1센티만 움직여도 옆 차와 닿을 것 같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옴짝달싹 못할 때도 있었다.
아, 이래서 엄마가 반대하셨는가 보았다. 엄마도 내가 겪은 모든 상황을 다 경험하셨는가 보았다.
그런데 엄마는 몰랐던 것 같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운전도 버티다 보면 는다는 것을. 곤경에 처할 때마다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침착하게 다시 시동을 걸 때까지 기다려 주는 여유로운 이웃이 있었다. 윽박지르는 대신 내 차키를 받아 대신 주차를 해주는 민첩한 이웃이 있었다.
엄마도 분명 알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이면 어디서건 선량한 이웃이 나타난다는 것을. 다만 엄마는 본인의 실수로 차가 망가질까 봐, 본인 때문에 자동차 수리에 거금을 쓰게 될까 봐, 아마도 또 그렇게 양보하시고 운전면허를 지갑에 꽂아만 두었을 것이다.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게 사고 안 치고 다니고 있는 것은 나의 탁월한 운전 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함께 달리고 있는 길 위의 운전자들의 침착한 안전운전과 시야 넓은 운전자들의 광범위적 방어운전과 이해심 넓은 운전자들의 양보 덕분이다. 이제 나도 길 위의 초보운전자에게 넓은 마음을 베풀려고 한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오는 차를 보면 ‘몰라서 그럴 거야.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로를 방해하는 차를 보면 ‘몰라서 그럴 거야.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주차 칸의 선을 밟고 서있는 차에게도 ‘몰라서 그럴 거야.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하고 기다릴 것이다. 자동차 문을 열 수 없도록 내 차 옆에 바짝 붙여 댄 차를 보고도 ‘몰라서 그런 걸 거야.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화내지 않을 것이다. 큰마음으로 양보하고 기다릴 것이다. 예측불허였던 과거의 초보는 오늘의 초보에게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여유로운 어른이 되어 함께 길 위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