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화내지 않기

첫 번째 기회 [치킨 타월이면 어때]

by 비단구름

하군의 ‘아는 사람’중 가장 싫은 사람은 토요일에 하군을 불러내는 사람이다. 갈릭 치킨과 고추 바사삭 치킨과 달콤 쌉싸름한 사이다 맥주를 마시며 토요일 저녁을 소소하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하군이 길게 내려오는 앞머리를 자꾸 손으로 쓸어 넘겼다. 곱슬곱슬한 앞머리가 이른 봄 버드나무 가지처럼 하군의 얼굴로 도로 내려오자 하군이 귀찮은지 양손으로 이마를 훤히 드러내며 머리카락을 정수리에 붙잡았다.


“머리띠 줄까? 머리띠 하고 있을래? 자꾸 그렇게 이마 쓸어 올리면 이마 더 넓어져.”

“괜찮아.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 머리 안 자르려니 성가시네.”

대답을 하면서도 하군은 두 손을 번갈아 사용하며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아빠 머리띠 안 해.”

사로가 대답했다.

“징크스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 자르거나 떨어뜨리는 건 다 안 해.”

하군이 비장하게 말하는 걸 들으며 사로가 말했다.

“그럼 나도 수능 볼 때까지 머리 자르지 말까?”

그러자 하군이 대답했다.

“수능까지 이 년이나 남았는데?”

“수능 잘 보려면 그 정도 각오는 해야지.”

“그럼 취직은? 그때까지도 안 자를 거야? 수능이 끝이 아닌데.”

사로가 대답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하군이 폰에 찍힌 이름을 확인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고 나왔다.

“누구야?”

“협력업체 아는 사람.”

“그런데?”

회사명과 아는 사람의 이름을 대라는 건데 하군이 엉뚱한 소리로 답한다.

“사촌 형이 여기 산대. 사촌 형 보러 오는 김에 얼굴 보자고. 20분쯤 뒤에 도착한다고 잠깐 보자고 하네.”

사촌 형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이 저녁에 하군을 불러내는 사람이 백지영 노래를 부른 여자인지 확실하고 자세하게 보충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군은 눈치 없이 짧게 말한다.


“지금? 토요일 저녁 7시 반에? 아, 진짜 싫어. 센스 없게 토요일 이 시간에 불러내?”

“평일에 한 번 보자 보자, 했는데 프로젝트로 바빠서 시간을 못 냈더니 여기 오는 김에 보자는 거지.”

하군은 벌써 주섬주섬 입고 있던 수면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난 이상해. 네가 평일에 시간이 안 난다는데 굳이 오늘, 토요일 저녁 시간에 굳이 보자고? 사촌 형이라는 사람과? 뭔가 넌 피하는 느낌이고 그는 쫓아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얼굴 한 번 보자는 거야.”

“안 가면 안 돼?”


가자미 눈으로 애원해 봤자 안 될 걸 알면서 나는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발, 우리와 함께 있어줘. 하군은 대답 대신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다.


“너의 세계에선 이런 경우 거절할 도리는 없는 거야? 나의 세계에선 애당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나는 결국 참았던 화를 냈다. 하군도 화가 났던 모양이었다.

“넌 집에서 하고 싶은 거 다하고 편하게 살면서.”

“뭐?”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화내고 따지는 것만 잘하지.”

“내가 집에서 노는지 자는지 따지는 건 둘째치고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친구나 아는 사람, 협력업체 사람,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 오늘은 심지어 생판 모르는 아는 사람의 사촌형을 방어할 때마다 매번 놀랍도록 비논리적으로 대꾸하는 하군의 유치함에 나는 언성을 높였다. 하군도 지지 않겠다는 듯 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언성을 높였다.


“집에서 하는 것도 없으면서!”


같은 의미의 말을 세 번이나 분명하게 반복하는 하군의 언사에 나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수면바지를 벗은 하군이 아웃렛에서 산 진회색 바지를 입었다.


“금방 돌아올게.”

결국 서둘러 옷을 입고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가는 하군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돈 빌려달라고 하거나 투자하라고 하는 거면 바로 일어나! 알았지?”

현관문이 쾅, 닫혔다. 하군이 마시다 남긴 노란 빛깔의 맥주가 버려진 연인 같은 옹색한 꼴로 식탁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나는 맥주를 후루룩, 마시고 빈 컵을 싱크대로 치워버렸다. 나는 하군이 집에 들어오면서 사 가지고 와 돌아오는 추석에 쓰겠다고 식기 건조대 옆에 고이 모셔두고 개시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제기 밥주발 두 개를 노려보았다.


“웬 밥그릇?”

“제기 밥그릇 하나가 짝이 안 맞아서.”

나는 삼 년마다 앞으로 삼 년만, 하며 삼 년 고개 넘는 스테인리스 밥주발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파티는 끝났다. 이제 각자 싱글이 되는 시간이다.

토종 한국인이 분명하지만 가끔 말뜻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모국어로 적절한 의사 전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하군의 속뜻은 그게 아니겠지만, “네가 집안일을 해주고 아이들을 돌봐주어 내가 걱정 없이 일한다.” 이런 뜻이겠지만. 아니, 그럴듯한 속뜻은 없는 것도 같다. 몇 년째 키친타월을 치킨 타월이라고 하는, 바보일 뿐.


하군이 보기에 내가 집에서 글을 쓰는 것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 뿐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길 법도 하다. 하군 말이 상당 부분 맞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의 글쓰기는 돈을 벌어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벌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취미’이다. 실제로 나조차도 누군가 “집에서 뭐 해?”라고 물어보면 “취미로 글을 써”라고 답하곤 하는데 경제활동으로 연결이 되지 않아 위축되었을 뿐 글 쓰는 일에 열정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라도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면 ‘업’이 된다. 나는 취미를 업으로 바꾸기 위해 낮 시간을 꼬박 의자에 앉아 부단히 애쓰고 있긴 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현재로선 아무런 수입을 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하군의 냉정한 경제학적 관점으로 볼 때 나는 취미 생활이나 하고 있는 팔자 좋고 여유로운 안채 마나님 내지는 한량이다.


비록 돈을 벌고 있진 않지만 한나절 내내 꼼짝없이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하군의 그런 태도가 다소 서운할 수밖에 없는데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서 마냥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나 지금으로서는 딱히 명쾌하게 반박할 만한 것도 없다. 속상함에 눈물을 찔끔 훔친 나는 하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대답을 듣지 않아도 전화기 너머로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여기? 여기가 어디더라?”

취한 것 같은 하군이 대충 둘러대려는 수작이다.


“어디냐고.”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재차 다그쳤다. 마음 같아선 당장 하군이 놀고 있는 현장을 덮치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 맛있는 거 먹고 있지. 복지리, 지리가 일본말이던가? 복국.”

“좋겠다, 맛있는 거 먹어서. 언제 들어올 거야?”

하군에게 물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하군의 ‘아는 사람’이 "안 들어간다 그래!"라고 소리치는 허세가 들리고 하군이 웃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여자들의 웃음소리.

“한 잔만 더 하고 일어날게.”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 깊은 한숨의 원인은 무얼까. 나도 나가 놀고 싶은 마음일까. 이 시간에 가족 대신 아는 사람과 술을 마시고 있는 하군이 싫은 마음일까. 이런 생활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일까. 이런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갈 곳이 없는 답답한 마음일까. 당장 일어나 놀고 싶지만 갈 곳도 이 시간에 불러낼 사람도 없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하군의 ‘아는 사람’의 여자 목소리. 심장에 찌릿, 하고 옅은 통증이 지나간다. 불 꺼진 방 침대에 누워 하얀 도배지를 바른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단단한 벽돌집이 무너지듯 우르르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 결정도 못하고 있다. 하나, 둘, 셋, 빨리 잠들어라. 하군을 기다리며 복잡한 생각을 하는 대신 빨리 잠드는 편이 낫다. 아침이 되면 들어와 있는 하군을 만나게 될 테니까.



다음 날 아침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보니 거실 소파에서 잔 하군이 태연하게 유튜브를 보고 있다. 침대에 누워 종일 티브이를 본다거나, 소파에 엎드려 유튜브 시청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은 하군이 심적으로 무탈하다는 긍정의 사인이니 더할 나위 없이 안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한편 우린 벌써 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망했다고 속단하는 것은 너무한가? 당장 망한 것은 아니더라도 희망이라곤 없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최근 나는 계획대로 한 것이 없다. 다시는 하군과 다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다투었고, 하군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 했는데 화를 냈다. 아이들 공부 안 하는 거로 스트레스 받지 않겠다 했는데 스트레스받았다. 아이들 두고 절대 집 나가지 않겠다 했는데 나갔다. 집을 나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몇 시간 만에 집으로 기어 들어갔다.(사람들은 이걸 산책이라고 부른다) 집으로 기어 들어가면서 이대로 영영 갈라서겠다고 했는데 식사 준비를 하고 빨래 바구니의 옷들을 세탁해서 베란다에 널고 청소를 하다 보니 그러지 못했다. 하군을 평생 증오할 거라고 했는데 측은함만 남았다. 하군에게 다시는 마음을 주지 않겠다, 했는데 하군을 보니 또 좋다. 어처구니없다.


“거실에서 잤어? 왜?”

“나 술 마시면 코 골잖아. 그래서 거실에서 잤지. 나이 먹을수록 수면의 질이 중요하잖아.”

“배우자와 함께 자는 것이 수면 건강에 도움 된다는 기사도 본 것 같은데?”

“코를 곤다면 얘기가 다르지. 너 새벽에 한두 번씩 깨잖아.”

“잘했어.”


나는 말없이 하군을 흘겨보곤 주방으로 갔다. 연휴가 길어지면 기분도 다운된다. 연휴 내내 나는 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밥! 밥! 그놈의 밥!


밥맛 떨어졌을 땐 밥 안 하겠다, 소리치고 내가 먹을 밥 차리는 김에 하군 것도 함께 차려주는 상상을 하다 하군이 일하기 싫은 날 출근 안 하고 네가 쓸 돈은 네가 벌어,라고 대차게 말하는 상상을 간다. 역시 역할이 있는 것이다. 잘 가꾼 빙구 호텔에 나는 객실부와 식음부, 하군은 기획재정 구매 마케팅 영업부에 고용되어 개 발에 땀나도록 몸과 마음을 갈아 넣고 있는 중이다.


찜기를 꺼내 면포를 올리고 그 위에 백설기와 고기만두 여섯 개를 올려놓고 찌기 시작했다. 허리춤에 손을 올려놓고 축 쳐진 멍텅구리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옆으로 꺾은 뒤 가스레인지 위의 찜솥을 게슴츠레하게 보며 내가 먹을 밥상은 이거면 되는데, 하고 생각한다. 밥, 김, 멸치볶음, 끝. 나는 이거면 충분한데 그놈의 밥 타령을 하는 하군은 “이게 다야? 계란 프라이라도 없어?”라고 이런 밥상에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그럴 거면, “너 밥은 네가 차리라고! 너한테 내 밥까지 차려달라고는 안 할게!”라고 소리치고 싶으나 그러면 먹는 거에 예민한 하군이랑 다툴 것이 분명하다.


“휴우.”


정신을 차린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홀로 한숨을 쉬고 하군이 좋아하는 계란 프라이를 여섯 개나 했다. 계란 프라이 개수만큼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하군을 보며 이런 단순한 사람이랑 사는 것도 꽤 복이지, 뭐,라고 생각한다.


“넌 계란 안 먹어?”

하군이 접시에 한 번에 쏟아부은 계란 프라이를 젓가락으로 쓱쓱 찢더니 한 조각을 건넨다.

“고마워.”

나는 하군이 건넨 계란 프라이의 고소하고 비린 맛을 음미하며 생각했다. 언제쯤 내 스타일대로 먹을 수 있을까. 밥이랑 김 하나만 꺼내 먹는 간단한 알약 같은 밥상. 대충 먹어도 죽지 않는 신비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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