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기회 [선물 같은 오늘]
쌍둥이는 아주 작은 것까지, 다른 사람들에겐 중요하지 않은 것조차도 매우 민감하다. 이를테면 작은 반상에 그림책을 놓고 나란히 앉았을 때 그림책이 누구 편으로 더 기울었는지, 엄마가 누구의 숟가락을 먼저 놓는지, 장바구니를 들고 남은 손으로 누구의 손을 잡는지 같은 것을 두고 다퉜다. 엄마는 매번 그림책을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내 편으로 살짝 더 옮겨 주었고 내 숟가락을 먼저 놓았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왼손, 오른손 번갈아 잡으면서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왜 그렇게 나에게만 잘해 주었어,라고 묻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희주는 착한 아이고 넌 약하니까.”
선이 있으라, 는 이름과 다르게 나는 약하기만 할 뿐 선하지 않았다. 게다가 야무진 희주와 달리 나는 손이 많이 갔다. 느리고 느긋했고 예민하기까지 했다. 동네에서 가장 좋은 사립유치원에 입학한 첫날부터 찰떡같이 적응한 희주와 달리 나는 반년이 지나도록 적응하지 못했다. 눈치껏 손을 들고 대답도 곧잘 하고 노래와 율동을 따라 하고 선생님 치맛자락을 붙잡고 사랑받으려 애쓰던 희주와 달리 나는 종일 입을 열지 않았고 선생님이 말을 걸까 봐 피해 다녔다. 수업 시간 내내 ‘아빠 다리’가 풀어지지 않게 집중하느라 머리가 아팠고 눈치를 보느라 집에 오면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다. 나아지지 않는 부적응으로 나는 점심만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아침마다 기운 없이 앉아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종종거리기 일쑤였다. 유치원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춰 고집스레 꿈쩍도 하지 않는 나에게 정신이 팔린 엄마가 희주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희주가 대문 앞에서 후진하는 검정 승합차에 치이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 단단하게 들러붙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했어.”
한 달 동안 제대로 먹지 않고 말 한마디 없던 엄마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섞어 간신히 내뱉었다. 엄마는 똑똑하고 착했던 희주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나는 나 때문에 희주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마음에 얹었다.
“우리 희주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 들었어.”
엄마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흐느꼈다. 희주가 죽은 6월이 되면 엄마의 울음소리는 장맛비처럼 지속되었다.
나는 매일 가장 먼저 눈을 뜬다. 일어나선 조용히 방을 나와 어둠과 밝음이 푸르스레하게 교차하는 고요한 거실을 지나 주방 불을 밝힌다. 창문을 연 뒤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계란을 꺼내 가장 작은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붓고 계란 프라이를 한다. 계란 프라이가 익기를 기다리는 일이 분 동안 나는 주방 창으로 가까이 다가가 밝아오는 세상을 본다. 기도를 하는 것도 같다. ‘우리나라를 지켜주세요. 이 사회를 지켜주세요. 세상을 지켜주세요.’ 푸르스름한 하늘을 보며 이렇게도 바란다. ‘우리 가정을 지켜주세요.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나의 은밀한 기도는 고요한 주방을 가득 메운다. 신은 나의 기도 중 적어도 한 가지는 들어주었다. '가엾은 엄마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나는 이제 나를 위한 기도는 하지 않는다. 내 힘이 미치지 않는 일,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기도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가 해내기로 다짐했다.
고요하던 평소와 달리 이른 아침 주방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주방에 가보니 하리와 사로가 하군의 곁에 서서 하군이 대접에 미역국 말아먹는 것을 보고 있다.
“엄마 전복 미역국 좋아하지?”
고소한 참기름 냄새 가득한 향이 주방에서부터 거실로 흘러나온다.
“전복이 있었어?”
하군이 어제 전복과 소고기를 사 왔다.
“아빠가 전복 손질하고 얘가 메인 세프, 나는 간 봤어.”
하리와 사로가 미역국 앞에 서서 고개를 치켜들고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추켜세운다. 저렇게 뿌듯해할 때 하리의 얼굴이며 말투며 몸짓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 마냥 무척 사랑스럽다.
“자기네는 생일날 뭐 해?”
연애할 때 하군에게 물었다.
“별거 없어. 그냥 식구들하고 밥 먹지.”
생일엔 대게 가족과 밥을 먹으니까 별로 특이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보통의 가족이구나, 생각했다.
“선물은?”
“선물? 우린 그런 거 없어.”
이런 집도 있구나,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밥마저도 외식이 아니라 평소 먹던 밥상에 미역국을 올리면 생일상이 되는 거였다. 하군에게 생일이란 일 년 중에 하루, 소고기 미역국을 먹는 날이었으므로 결혼 후 생일선물이란 걸 받지 못했다. 이건 내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 결혼 초기 하군은 선물을 사 오며 나름 애라는 걸 써보았는데, 이백만 원도 되지 않는 월급으로 생활을 하다 보니 무척이나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군이 사 온 선물이 쓸모없는 물건이거나 별로여 서라기보다는 기념일이라고 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살 필요가 있을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면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선물을 주고받는 일에 소홀해졌다. 자연스레 어느 해부터는 그런 저런 한 생일을 맞게 되었는데 내가 자초한 일임에도 내 생일 아침 미역국을 끓일 때면 괜스레 부화가 치밀었다. 그나마 저녁에 생일 기념 외식이란 걸 하는 거로 하군은 생일에 꽤 신경 써주었다고 여기는 눈치인데 그나마도 어떤 해엔 바쁘다고 늦게 들어왔다.
노 케이크, 노 촛불, 노 소원.
삼 년 연속 내 생일에 일찍 들어오지 않아 있는 밥으로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을 먹고 케이크도 없는 생일을 보낸 나에게 일하느라 어쩔 수 없다는 마법 같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꽤나 당당하다. 나, 지금 가스 라이팅 당하고 있는 건가? 제삿날은 반차까지 써가면서 일찍 들어오는 바보라고 밖에 못하겠다.
어쩔 수 없이 이반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처럼 생일을 앞두고부터는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되어 생일날만 되면 일 년 중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침을 질질 흘리는 대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러다가 틀림없이 이혼당하고 말 거라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는지 생일이라고 장을 봐 온 모양이지만 미역국도 끓여주지 않으면서 생일 선물하나 주지 않으면서 고작 저녁 외식 한 번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는 태도가 불쾌하다. 본인 정도면 꽤 괜찮은 남편이라고 우쭐하는 모습이 보기 싫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선 뼛속까지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적인 태도를 발견할 때마다 한 번씩 소름 끼치게 진저리가 난다.
“이 옷 어때?”
어제 약속이 있다며 나간 하군이 마트에서 전복과 소고기를 사면서 연한 그레이 캐주얼 재킷을 사 입고 들어왔다.
“예쁘네. 샀어?”
“샀지.”
새 옷을 입은 하군이 총각 때처럼 꽤 댄디한 멋이 난다.
“왜?”
“왜라니? 입으려고.”
“요즘 들어 부쩍 자기 거 사는데 돈을 안 아끼네. 죽을 때가 됐나.”
“이 사람이!”
하군이 엉덩이를 툭, 하고 가볍게 치더니 뭐가 그리 좋은지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스러운 하리와 사로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점이다. 미역국에 밥을 막아 먹으며 하리와 사로에게 오늘의 소원을 말했다.
아침 먹고 설거지,
점심 먹고 설거지,
저녁 먹고 설거지.
“그야 당연하지! 엄마 생일인데!”
엄마 글 쓸 동안 마실,
“엄마 글 쓰게? 하루 종일 놀아! 넷플릭스 보면서 누워 있어!”
아침 먹고 커피 한 잔,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그리고 알람 맞춰 놓았다가 3시쯤 홍차 타오고.
“당연하지. 엄만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 아니, 누워 있어.”
하리가 뒤로 다가와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어깨를 조물조물 주물러준다.
청소기 돌리고,
“청소는 하루쯤 쉬어도 돼.”
빨래도 하고,
“빨래 꼭 오늘 안 해도 돼.”
“내가 아침, 점심 설거지할게.”
사로가 잽싸게 일거리를 선점한다.
“아침, 점심 설거지가 적어서 그렇지?”
하리가 사로의 속을 간파한다.
“하지만 저녁에 외식하면 어떡해? 그럴 확률이 높아.”
“그럼,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사로는 냉혹하고 자비로운 승부사 인지도.
“선유야, 생일 축하해. 백화점 가서 비싼 크림 사서 바르고 저녁에 가족들하고 맛있는 거 사 먹어.”
은숙이 생일 선물이라고 이십만 원을 주었다. 먼 남편보다 가까운 친구가 때로는 내 마음을 위로해 준다.
“아직도 엄마 생일 챙겨주는 사람도 있네.”
하리가 신기해했다.
“엄마가 핵인싸였을 땐 말이야.”
“엄마, 핵인싸라는 말도 알아? 오!”
내 입에서 나온 핵인싸라는 말을 듣고 하리가 몹시 놀라는 폼이다. 한때 핵인싸였던 내가 생일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노는 꼴을 보면 놀라 자빠질게 뻔하다.
집 앞 쇼핑몰에 있는 파스타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하리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생일 축하 노래를 틀어주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누구 노래야?”
운전을 하며 하군이 물었다.
“엔젤 합창단.”
하리가 대답했다.
“엔젤 합창단이 뭐야?”
하군이 물었다.
“엄마.”
“응?”
“엄마가 엔젤이라고.”
뒷자리에 앉아있던 사로가 대답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당신은...”
퍼벅, 버걱, 퍼더덕.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당신은...”
음악이 버벅 거리더니 처음부터 다시 재생되었다.
“판이 튀나?”
하군이 말했다.
“파니티네가 뭐야?”
하리가 물었다.
“레코드 판에 미세한 홈이 있는데 바늘이 그 홈을 돌아가면서 음악이 나오고,”
하군이 파니티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신기하다. 어떻게 바늘에서 소리가 나지? 이렇게 멜론으로 노래 선곡해서 차에서 듣는 거보다 신기한데?”
하리가 관심을 보였다.
“그지? 바늘이 움직일 때 전기신호가 발생하거든. 그 전기신호가 엠프를 거쳐 스피커로 나오는 거야.”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하리와 사로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샀다.
“엄마, 소원 빌어.”
케이크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촛불을 보며 하리가 말했다.
‘우리 하리, 사로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반짝이는 촛불을 보며 소원을 빌고 힘껏 불어 촛불을 껐다.
“소원 빌었어?”
“그럼.”
‘이런, 하군을 까먹었네.’
“무슨 소원 빌었어?”
“비밀!”
달콤한 밤처럼 까만 초콜릿 케이크를 한 조각씩 먹고 나니 창밖으로 밤이 저물어 간다. 선물 같은 오늘은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