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5시 30분]
기상
창문 열기
아침 준비
[6시 30분]
시-마지막 퇴고
동주 문학상에 응모할 시 56편을 모아둔 파일을 열었다. 제목과 작가명을 적고 약력, 약력을 적어 내는 것은 수상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약력 정도는 수상 후에 확인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쓰라니까 간단하게 적고 목차도 적고 그 아래 시 56편을 연이어 적었다. 동주 문학상에 작품 응모를 할 때 적용해야 하는 간단한 응모 요령이다.
제출 전 다시 한번 읽어본다. 시는 짧지만 56편의 시를 읽는 데는 두어 시간이 걸린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으면 하루 반나절도 읽을 수 있다.
[8시 40분]
강아지 산책
[9시 20분]
강아지 발 씻기고,
시-탈고
어제 사놓은 초콜릿 케이크와 포트넘 메이슨의 얼그레이 홍차를 우려 아침을 먹고 아침부터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며 내리는 빗소리와 약간 열린 틈으로 들어오는 시원 서늘한 바람을 느끼며 시를 읽고 나서 시간을 보니 열한 시가 훌쩍 넘었다.
더 읽는 것은 이번에는 무의미한 것 같아 메일함을 열고 시를 보냈다. 혹시 누락한 것이 있나 싶어 모집 요강을 다시 꼼꼼하게 살폈다. 이달 말까지 모집인데 다음 달 중에 수상자 발표를 한다니 대단히 신속한 움직임이다. 응모작품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때그때 심사를 하는 것인가, 수상자가 신속하게 결정되는 부지런한 시스템에 호기심이 생기는 한편 놀라운 마음이 든다.
[12시 40분]
점심
설거지
산책
[14시 00]
오후 글쓰기
나는 2019년부터 동주 문학상에 응모하고 있다. 동주 문학상은 시 50편 이상을 시집 형식으로 엮어 응모한다. 동주 문학상으로 바뀌고 첫해 이 문학상에 응모했더니 공모전이 시작될 무렵이면 공모전에 참가하라는 메일이 온다. 올해도 주체 측으로부터 동주 문학상에 응모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이번에도 응모할 작정이었기에 동주 문학상 마감까지는 다른 글을 쓰는 일은 잠시 미루고 동주 문학상에 응모할 시에 전념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과 끼워 맞추듯 억지로 연을 만들어 보자면 나에게도 윤동주 시인과의 연이 조금 있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 나는 글짓기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곧잘 상을 받았는데 요즘은 모르겠으나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하면 학용품과 같은 문구류를 상품으로 주었었다.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하여 받은 상품 중 여지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투명 보랏빛 하트 모양 케이스에 담겨있던 문구세트였다.(오래되어서 케이스 색에 대한 기억에 오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트 모양 케이스 안에는 손가락 길이의 연필과 엄지발가락 크기의 지우개 같은 학용품이 들어 있었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아기자기한 학용품 세트를 그때 처음 보아 매일 들여다보면서도 정작 그 안의 학용품들은 아까워 써보지도 않고 모셔두기만 하다 어느 날 사라졌다. 아끼다 똥 된 것인데 어느 시점부터는 시를 비롯하여 글쓰기에 손을 놓았으니 어찌 보면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잃은 것은 문구세트만은 아니었다.
대게는 부상으로 공책이나 연필 같은 문구류를 받았는데 어느 대회에서는 특이하게 윤동주 시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시집을 부상으로 받았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많은 것을 버리고 정리하는 와중에도 이 시집만큼은 살아남아(이 시집뿐만 아니라 몇 권의 애정 어린 책들도 함께 살아남긴 했지만) 어디에 머무르든 쭉 나와 함께 다녔고 결혼하고 나서는 신혼집까지 따라오더니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내 책장에 꽂혀 있다. 내가 까먹고 놓고 가면 책꽂이 요정이 들고 와 살며시 꽂아놓고 가기라도 한 것처럼.
[15시 30분]
작은아이 집에 옴.
청소
휴식
작은 아이가 물었다.
“강아지 똥 몇 번 쌌어?”
집에 오자마자 가장 궁금한 사안은 강아지 똥인가 보았다.
“한 번. 아까 나가자마자 비가 와서 똥 한 번, 오줌 한 번 누고 바로 들어왔어.”
“그렇구나.”
강아지 데리고 나갈 생각인가 보다.
“엄마, 눈이 빨간데? 오늘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청소하면서 쉬고 있지.”
“응.”
“엄마 예쁘지?”
“아니.”
작은 아이가 소파 쿠션을 종아리 아래에 받쳐준다.
“에이, 예쁘구나?”
“아닌데. 에휴.”
작은 아이가 한숨을 쉬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작은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내는 재주가 있다.
[16시 00]
작은 아이 기타
청소 및 정리
동주 문학상에 대한 공모전 소식을 접하고 나는 서재에 들어가 책장에 꽂혀 있는 시집을 꺼냈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단단한 하드커버를 펼치면 가장 첫 장에 월계수 이파리를 두른 것 같은, '賞' 푸른 스탬프가 찍혀있다.
해묵은 누런 속지에서 풍기는 시큼한 내음이 나를 1988년의 시 쓰던 오후로 데려간다. 햇빛이 풍성하고 바람이 산들산들하던 어느 좋은 날, 담임 선생님은 시 써오는 것을 숙제로 내주셨다. 나는 어이없게도 스무 편을 써 제출했는데 담임 선생님은 그중 하나를 신문사에 보내어 장원을 받았다.
시를 스무 편이나 제출한 까닭은 시가 뭔지도 모르는데 ‘시’를 써오라는 선생님에 대한 반항은 아니었고, ‘시’가 뭔지 몰라서, 내가 쓴 것 중 어떤 게 ‘시’인지 당최 알 수가 없어서였다.
아마 거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향해 하염없이 멍 때리다 썼을까. 아니면 길가에 일렬로 핀 코스모스를 따라 한 시간씩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썼을까. 집 앞 냇가의 둑에 앉아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던 강물을 보며 썼을까.
까마득하게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마음에 시가 떠올랐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으나 늘 책장 한 구석에 은근하고 질기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만큼 길고 긴 연이고 다시 만난 걸 보면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연이다. 사람과의 인연은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는데 이 것과의 연은 오래도록 계속될 거라는 걸 확인하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나를 짝사랑해준 시, 이제 내가 사랑할 작정이다.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내가 항상 챙길 거니까. 꼭 챙길 거니까. 잊지 않을 거니까.
[17시 30분]
저녁 준비
설거지
[19시 30분]
퇴근 직전
별 수 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떨어지겠지?
그럴지도.
그렇지만 내년에 또 응모할 생각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라지만 시는 어쨌거나 계속 쓰게 될 테니까.
누구나 마음에 시 한 편쯤은 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