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친절하기

첫 번째 기회 [친절한 빼빼로]

by 비단구름

“다녀왔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사로가 인사를 하고 제방으로 사라지는 가 싶더니 다시 나타났다.

“나 팔에 근육 생긴 것 같아. 만져볼래?”

교복을 갈아입고 나온 사로가 문틈 풀업 바에 매달려 씩, 미소를 짓는다. 이두박근이 꽤 만족스러운가 보았다.

“턱걸이가 효과가 있나 봐.”

“어째서지?”

“운동은 대게 낮은 단계부터 시작하는데 턱걸이는 바로 내 몸무게를 들어 올리지.” 사로가 풀업 바에서 폴짝 내려오더니 두 팔을 쭉 앞으로 모으고 내 앞에서 토스 시늉을 한다. 요즘 학교에서 배구를 하는가 보았다. 뭘 해도 꼭 내 앞에서 저러는 덕분에 학교 갔다 와서 하는 짓만 봐도 요즘 학교에서 뭐 하는지 안다.

공도 없는데 공을 띄운 것처럼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에 누가 있는 것처럼 허공에 눈을 맞추며 토스를 하는 사로 목덜미에 나뭇가지에 긁힌 것 마냥 잔잔한 스크래치들이 잔뜩이다.

“목 왜 그래? 또 주짓수 하다 그런 거야?”

“어제 스파링 했어.”

“이번에도 저번에 그 아저씨랑 했어?”

도장에 중학생 사로를 봐주지 않고 스파링 하는 강 씨 아저씨가 있다!

“아니. 이번엔 다른 사람. 그리고 엄마,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사로가 스파링에 진심인 그 양반 편을 들더니 허공에 대고 하던 토스를 멈추고 별안간 관장님 자랑을 한다.

“전국에 블루 벨트는 몇 안 되지. 그중 한 명이 우리 관장님이야. 어제 블루 벨트 아저씨랑 스파링 하는 것을 봤는데 블루 벨트 아저씨가 우리 봐주는 것처럼-우리는 사로와 사로 친구 마용이다- 관장님이 살살하는데도 상대가 안 돼.”

“관장님한테 반한 것이 분명하군.”

“멋있긴 하지.”

“안 아프니?”

모가지 스크래치는 안 아프냐고 물으니 쿨하게 안 아프다고 한다.

“쏠릴 때는 좀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재밌어.”

잠시 휴대폰을 확인한 사로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어제 1부 수업 참가자가 직장에서 확진자와 접촉했대.”

사로는 자기네 도장에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곳이라고 매우 강조했다.

“오늘 수업은 휴관이라는데.”

“어차피 오늘은 안 가는 날이잖아.”

“그렇지. 방역하고 내일 오전 수업까지 휴관한대.”

“어차피 너는 오후 수업이잖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나?”

사로가 물었다. 처음 코로나 검사를 받을 때 면봉이 콧구멍으로 쑥, 눈 깜짝할 사이에 들어갔다 나오는 순간 까만 눈동자에 그렁그렁한 반짝이는 눈물을 훔치며 사로가 말했다.

“면봉이 뇌에 닿는 기분이었지.”


나도 코로나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육 개월 전 반찬거리가 담긴 봉지를 차의 뒷좌석에 싣고 있던 나를 보지 못하고 하군이 내 발등을 차로 밟았다.

“내가 안 탔는데 출발하면 어떡해?”

“나는 네가 탄 줄 알았어.”

“무슨 소리야? 옆에 사람이 안 앉았는데 탄 줄 알았다고? 우리 차에 나 말고 또 누구 있어?”

“그냥 나는 네가 탄 줄 알았어.”

“차 뒷문이 열려 있었는데도?”

“나는 네가 탄 줄 알았다니까.”

“우리는 종종 믿는 것에 발등 찍힌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곤 하지.”


내가 옆에 탄 줄 알았다는 말을 무한 반복할 뿐 하군이 당시 정신 상태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탓에 사건의 경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대화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내 발등 위로 차가 올라가고, 나는 빨리 차 빼라고 소리 지르고, 당황한 하군이 차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내 발등은 금세 시뻘겋게 부어올랐는데 토요일 오후 여섯 시에 문 연 병원이 있을 리가 없어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고 의료진이 설명하는 사이 응급실 자동문 바로 앞에선 중년 여자가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남편은 언제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으신 분은 들어가실 수가 없어요.”

“남편은 들어가면 안 돼요?”

여자는 직원의 말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코로나 검사를 먼저 받으셔야 돼요.”

“남편 먼저 들여보내 주면 안 돼요?”

코로나 검사를 하셔야 하고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와야 들어갈 수 있다, 고 하는 의료진과 남편은 언제 들어가냐, 왜 안 들어가냐, 는 말을 반복 중인 중년 여자를 보며 이쪽도 정상적인 대화는 물 건너갔다, 고 생각했다.

의료진과 중년 여자가 팽팽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실랑이 랠리의 끝을 보고 싶었는데 마침 면봉으로 콧구멍을 후비는 코로나 검사를 할 차례가 되었다. 입구 한 편에 임시로 마련한 작은 검사실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물건은 시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 사용한 다기엔 의외로 검소해 보이는 낡은 갈색 책상과 세면대였다.


이동 침대와 폐 엑스레이 기계가 없었다면 공사 기간에 맞춰 구색을 맞추어 놓은 조립식 사무실 같기만 할 뿐 전혀 병원 내부 같지 않은 이 방에 의료진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유전자 검출 검사(PCR) 결과는 다음날 나오기 때문에 폐 엑스레이를 찍고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으며 따라서 폐검사를 함께 진행할 건데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니 침대에 편하게 누워 잠시 기다리라고 알려주고 나갔다.

차의 뒷문을 열고 짐을 정리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차를 출발시킬 수 있는가, 에 대해 흥분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어 발등만 부었을 뿐, 평소보다 총명하고 씩씩한 상태인 나는 침대에 누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분노로 차오른 내 얼굴과 검보라색으로 부어오르기 시작한 내 발등을 보고 안절부절못하던 하군이 누우라고 부축해 주었다.


잠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의료진이 들어왔다. 면봉이 콧 속 깊이 쑥, 들어와 비인두 도말을 터치하는 순간, 나는 사로의 말을 떠올렸다.

‘사로는 생경한 묘사에 소질이 있는지도 모르겠군.’

나는 면봉이 빠져나간 콧구멍을 흠흠, 거리며 면봉이 뇌를 터치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폐 엑스레이를 찍고 밖으로 나왔을 때 놀랍게도 밖에서는 아직도 의료진과 중년 여자가 대치중이었다. 중년 여자는 이번에는 파란 의료복을 입은 마르고 가녀린 여자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파란 의료복을 입은 여자가 중년 여자를 맡고 있는 덕에 다른 의료진들은 차분하게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아휴, 우리 남편 빨리 들어와야 하는데! 그냥 잠깐만 보고 가면 안 되나?”

중년 여자가 파란 의료복을 입은 여자에게 먹히지도 않을 푸념을 하자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방침 상 병원엔 코로나 음성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어요. 검사 결과 나오면 곧 들어가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파란 의료복을 입은 여자가 대답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수도 없이 상대해 봤지만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모르긴 몰라도 만 번쯤 응대했을 것이 분명한 흐트러짐 없는 친절함이었다.

“그러니까 어디선가 확진자와 접촉한 수강생이 어제 오전 수업을 들었다는 거잖아.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마도 모르겠는데. 언제 접촉했대? 잠복기가 있고 무증상 감염자도 있어서 시점이 중요한 거 같은데.”

코로나가 처음인 나는 코로나가 발생한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코로나의 전파력과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그러므로 얼마큼 두려워해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다.


“근데 엄마, 그 수강생이 확진자랑 접촉할 때 둘 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대.”

“마스크를 너무 믿지 않는 것이 좋아. 당분간 면밀하고 민감하게 지켜보도록 하자.”

소파에 앉아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사로가 웨하스와 빼빼로를 들고 와 옆에 앉았다. 학교 갔더니 친구들이 빼빼로, 마이쭈, 바나나 우유, 문화 상품권을 생일 선물로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바나나 우유, 문화 상품권을 준 아이 이름은 말했는데 빼빼로 준 아이의 이름은 말하지 않고 그냥 누가 빼빼로를 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티가 난다, 사로는.

“빼빼로는 누가 줬어?”

“반 친구가 줬지.”

집요하게 물었으나 안 가르쳐준다. 냄새가 난다.

여자다.


여학생이 분명하다!

근데 왜 안 가르쳐줌?

“엄만 어차피 말해줘도 기억 못 해.”라고 꼬시자 유가희라고 술술 이름을 얘기해 준다. 사로에게 한 말은 빼빼로를 준 아이 이름을 알아내기 위한 꼼수가 아니다. 벌써 여학생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나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녀석의 소중한 빼빼로를 많이 먹느냐이다. 사로가 이런 나의 속셈을 눈치챘는지 빼빼로를 하나씩 내 입에 넣어준다.




-부장님 빼빼로 감사해요^^

빼빼로 데이에 하군은 회사에서 받았다며 빼빼로 몇 상자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테이블 위의 빼빼로를 하나씩 집었다. 맨 아래 빼빼로에는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나는 포스트잇을 떼었다.


“빼빼로에 이게 붙어 있어.”

씻고 나온 하군에게 포스트잇을 보여주었다.


“네가 빼빼로 줬어?”

“회사 직원들이 다들 돌리는 분위기라 나도 돌렸어.”

“그렇구나. 포스트잇을 쓴 직원은 여자야?”

“응. 총무팀 직원이야.”


“이름이 뭔데?”

“몰라.”

“빼빼로를 주고받는 사이인데 이름을 몰라?”

“직원들이 돌려서 같이 돌린 것뿐이라니까.”


“몇 살이야?”

“서른여덟쯤 됐나?”


“그렇구나. 그런데 그 직원한테 왜 빼빼로를 준 거야?”

“말했잖아. 빼빼로 데이라 빼빼로를 주고받는 분위기였다고.”


“그렇구나. 그런데 그 여직원은 왜 포스트잇을 붙여 논 거야?”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두고 간 모양이지.”


“그렇구나.”

나는 포스트잇을 주머니에 넣었다.



네 시가 되자 사로가 일어나서 기타를 치러 방으로 들어갔다. 빼빼로도 다 먹고 속옷도 다 갠 나는 일어나서 청소기를 잡았다. 청소를 마치고 슬슬 저녁을 준비한다. 저녁은 앞다리살을 구워 먹을 예정이다. 쌀이 익는 동안 앞다리살을 굽기만 하면 되니 간단하지만 냉장고에서 씻어놓은 상추를 꺼내고 청양고추와 통마늘을 꺼내 씻어 잘랐다. 파채에 소스를 뿌리고 실파를 잘라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하리가 좋아하는 오이를 꺼내 잘라 고추장과 함께 놓고 하군이 좋아하는 열무김치도 꺼냈다.


“많이 늦어?”

하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이야.”

대답하기 싫어하는 하군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저녁은?”

“직원들하고 먹을 거야.”

하군의 짧은 한숨이 들린다.

“언제쯤 출발?”이라고 물을 때는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일 끝나야 가지.”

하군이 귀찮은 직원을 상대하듯 건조하게 대답했다.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일곱 시 반이 넘었다. 저녁 하늘이 낮과 밤의 손을 잡고 내일로 가는 이런 좋은 날 하군의 손을 잡고 함께 저녁 산책을 한다면 우리의 낮과 밤도 저녁 하늘색으로 물들 거다. 오늘은 씻고 나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체념 증후군에 빠져 늘어진 아이처럼 진한 커피를 마셔도 졸음이 쏟아진다. 여덟 시 반쯤 안방으로 들어가 티브이를 켰다. 이제 나도 좀 쉬어도 될까.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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