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둠 밀어내기

첫 번째 기회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

by 비단구름

고즈넉한 시골 얇은 티셔츠 한 장을 입은 남자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농막을 짓는데 몰두하고 있다. 남자는 농막을 지으며 틈틈이 주변 밭을 일구었다. 잡초가 길게 올라 엉클어져 있어 게으른 농부의 별 볼일 없는 밭뙈기처럼 보이는 잡초 사이로 먹을 만한 것들을 이것저것 부지런히 심어 놓았다. 햇볕에 그을린 남자의 검은 얼굴과 건강한 팔에 방울처럼 흐르는 땀이 땡볕 아래에서 빛났다. 고된 노동일 법도 하건만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주말이 되자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내가 농막을 짓는 남편을 방문했다.


“저 사람들은 뭐 하고 사는데 저렇게 여유롭게 농막을 지을 수 있을까? 궁금하네.”

“여자가 일하나 보지.”

하군이 티브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심하게 툭 던졌다.

“그런가? 남편도 한참 젊어 보이는데.”

나는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한 하군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여자가 일하나 보지.”

하군이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생계 걱정은 별로 없나 봐, 그렇지?”

“여자가 일하나 보지.”


하군은 “여자가 일하나 보지.” 이 말을 세 번 연속했다. 의미를 담았는지 알 수 없는 하군의 말은 귓가에 맴돌았다. 하군은 내가 일하기를 바라는 걸까? 그런 지도. 이제 나도 일이란 걸 좀 했으면 하는지도.


“인구밀도 높은 도시를 벗어나 저렇게 한적한 시골에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아도 좋겠지? 텃밭에서 일하는 동안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될 테고 말이야.”

“그렇겠지.”

하군이 대답과 함께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나 중간고사 끝나고 주짓수 매일반으로 바꿀래.”

주짓수를 마치고 온 사로가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대뜸 선전 포고했다. 자세히 보니 앵두 같이 빨간 사로의 입술이 터져 검붉은 피딱지가 앉았다.

“피나잖아.”

“이게 뭐지?”

참깨만 한 핏방울 여섯 방울이 도복에 튀었는지도 몰랐던 모양인지 도복에 묻은 제 피를 보고 되려 묻는다.

“재밌어?”

“당연하지.”

피가 터져도 재밌단다. 하군을 꼭 닮았다.


“올림픽 나가려고?”

“주짓수는 올림픽 종목이 아니야. 있으면 나가지.”

대꾸가 없자 사로가 말을 이어간다.

“내가 생각할 때 나 주짓수에 소질 있는 거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좀 잘하는 거 같아. 후훗.”

사로가 몹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건들거린다.

“네가 생각할 때 주짓수 매력은 뭐니?”

“멋있잖아!”

사로가 씩 웃는다. 그리곤 보여준다. 배를 앞으로 툭 뺐다 넣더니 암바 초크! 오른쪽 다리를 왼다리 뒤로 접었다 펴며 트라이앵글! 손으로 목을 잡았다 놓더니 “유에프다쓰도 꽤 멋있지!”


“아들, 주짓수 기술 한 번 보여줘.”

사로가 앞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을 보니 같이 몸이 근질근질한가 싶은지 누워있던 하군이 일어났다.

“안돼. 아빠 다쳐.”

사로가 단칼에 잘랐다.

“안 다치게 해야지.”

포기를 모르는 남자 하군이 결혼하자고 설득할 때와 같이 조른다.

“다칠 텐데.”

사로가 고개를 갸웃하지만 아빠를 대상으로 주짓수를 해볼 기회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암바 말고.”

사로가 백초크를 하려고 하군 뒤에 섰다. 하군만큼 어깨가 넓어진 사로가 하군 뒤에 바짝 서 공격 자세를 잡는 폼을 보고 있자니 슬슬 걱정이 들었다.

“아빠, 참지 말고 얼른 탭 쳐야 돼. 알았지?”

사로도 걱정이 되는지 진지하게 주의를 주었다.

“걱정하지 마. 이래 봬도 아빠도 옛날(이십 년 전)에 운동했어.”


“으악!”


사로가 기술을 걸자마자 영점 일초 만에 하군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며 탭을 쳤다.


“와! 이거 대단한데? 여기를 누르는구나!”

얼굴이 벌게진 하군이 감탄을 내뱉었다.

“유도는 숨통을 누르고 주짓수는 경동맥을 눌러.”

“와, 이거 기절하겠는데?”

“심지어 기절해도 모른데. 트라이앵글 초크는 이렇게, 암바 초크는 이렇게, 다리로 하면 효과가 더 좋지.”

사로가 바닥에 앉은 하군에게 트라이앵글 초크와 암바 초크 기술을 보여주었다.


“트라이앵글이고 캐스터 넷츠고 간에 매일반 다니면 도복은 어쩔 거야? 주짓수 다음날 반드시 세탁해야 한다며. 매일 빨아야 되나?”

“한 벌 더 사면되지. 마침 우리 도장 밴드에 중고 도복이 올라왔어. 그거 내가 사도 되지?”

“얼만데? 중고니까 한 삼만 원 하려나?”

“십만 원.”

“중고 도복이 그렇게 비싸?”

“한 번 밖에 안 입었고 도장 로고가 있는 도복이야. 사도 돼지?”

“네가 그러고 싶다면야.”

사로가 입고 싶다는 도복을 사주고 싶은데 살림이 빠듯하다. 하군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역시 내가 일을 알아봐야 하는 지도. 거실로 나간 사로와 하군이 주짓수 기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사사로운 고민에 묻혀 페이드 아웃되었다.



아침 먹으면서 ‘점심은 뭐야?’라고 묻고 점심 먹으면서 ‘저녁은 뭐예요?’라고 묻는, 한참 행복한 만큼 식욕이 흘러넘치는 사로가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단백질 공급을 위해 닭 한 마리를 먹고 싶다고 했다. 시장에 들러 닭 한 마리와 밀떡과 칼국수 면과 그 외 이것저것 사기 위해 햇살이 환하고 따스한 오후 집을 나섰다.

하군의 2013년식 산타페도 차주를 닮아 옆구리가 터지고 턱밑이 까졌다. 어디서 그랬느냐고 물으면 잘 기억을 못 한다.


“그런 거지 뭐. 가만히 있다가도 옆구리가 까이고 터지기도 하는 게 인생이지.”


조수석에 앉았는데 뒤통수가 헤드레스트에 닿지 않는다. 뒤통수뿐만 아니라 등짝을 받쳐 주어야 하는 시트도 멀찌감치 등짝을 피해 누웠다.

“여기 누구 앉았었어?”

“아니. 왜?”

“시트가 왜 이렇게 뒤로 젖혀져 있지?”

나는 시트 좌우를 뒤적거리며 시트 당기는 버튼을 찾았다.

“뭔 소리야. 시트가 왜 뒤로 가 있어.”

“이거 봐. 시트가 뒤로 젖혀져 있는데? 누가 탔었어?”

“타긴 누가 타.”


누가 탔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는 하군의 표정이 살짝 불안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표정인지, 누가 탔던 걸 들킨 표정인지 아리송하다. 뒷좌석에 놓인 까만 비닐봉지 안에 귤 껍데기가 있다. 옆에는 사무실에서 입는 짙은 남색 경량 패딩이 구겨져 있다.


“귤 먹었어?”

“다닐 때 출출해서.”

“그렇구나.”

나는 잠시 할 말을 생각했다.


“너 바람피우니?”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명무실해진 선전포고보다는 암묵적 동의를 동반한 기습 공격이 대체로 먹힌다. 하군에게도 기습 질문은 언제나 먹인다. 하군은 나의 기습 질문에 매번 동공을 흔들며 순순히 답하거나 어설프게 거짓말한다.


“뭔 소리야?”

하군이 화들짝 놀란다. 이것만 봐서는 아직 아리송하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센터 콘솔에는 하군이 먹다 남긴 테이크아웃 커피 컵이 꽂혀 있을 뿐 깨끗하다. 패스. 조수석 앞 글로브 박스를 열어 뒤적뒤적했다. 나무젓가락, 쓰레기 수거를 위한 비닐 본지들, 차량 등록증이 있었다. 아무리 빙구라 해도 이런 데다 뭘 놔두지는 않겠지. 센터패시아 수납공간, 오버헤드 콘솔, 암 레스트, 맵 포켓도 가자미눈을 하곤 스캔한다. 그런데 나 지금 뭘 찾고 있는 거지? 드라마 같은데 보면 이런 데서 뭐가 잘도 나오던데. 그래, 이왕 보는 김에 트렁크 아래 스페어타이어 공간도 한 번 봐야 하나?


“어휴, 뭐 해!”

진중하게 찌부러져 미동도 않는 내 미간을 보며 하군이 질색했다.


“뭐 하긴. 찾고 있잖아. 걸리기만 해.”

가자미눈을 하고 있는 나는 지금 진지하다.


“어휴, 걸리긴 뭘 걸려. 걸리면 어쩔 건데?”

“도망 못 가게 우선 정강이부터 분질러 버리고, 그다음 모가지를 확!”

“어휴, 너는 왜 사람을 죽이는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

“처자식 있는 남자랑 연애하려면 뒤질 각오는 해야지.”

“무슨 소리야! 여기 누가 탔다고 그래.”


“이라고 할 줄 알았지? 보내 줄 거야. 곱게. 에이포 한 장 빼곡하게 인수인계서도 작성할 거야. 너는 나물 반찬을 거들떠도 안 보고, 매끼 고기를 먹어야 하며, 집이 지저분하면 몹시 스트레스를 받으며, 수입이 얼만지 절대 안 가르쳐주고 생활비로는 한 달에 백만 원을 주는데 이걸로 휴대폰, 보험, 아이들 교재비, 식비를 해결해야 하며, 방귀를 수시로 뀌어대고, 한 달에 십구일 정도는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는 유튜브만 끌어안고 있고, 똥 싸고 변기 물을 안 내려서 온 집안에 똥 분자로 영역 표시를 하고, 이 부분에서 고 여자는 아마 더러워서 까무러칠걸? 오토바이 굉음 같은 코골이를 고칠 의지가 없어서 통통하게 살이 올랐던 양볼은 하루가 다르게 움푹 파이고 몰골이 수척해질 수 있으니 유의하라고 확실하게 인수인계해 줄 거야. 끝에는 이렇게 써야지, ‘고맙다.’고.”


“어휴.”

하군이 입술을 아래로 삐쭉 내리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쓸데없이 의심을 했나 보다. 나는 왜 이렇게 하군을 괴롭히는 걸까.


하군이 연결해 놓은 블루투스에서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흘러나왔다.

“백지영 노래 참 절절해. 그렇지?”

‘총 맞은 것처럼’을 흥얼거리며 내가 말했다.

“백지영 노래가 따라 부르기 쉬운가?”

“쉽게 생각했다가 큰코다쳐. 백지영 노래가 들을 때는 편하고 좋은데 직접 불러보면 절대 쉬운 노래 아니야. 멋모르고 시작했다가 고음에서 얼굴 벌게지고 음 이탈하고 난리라고.”


“여자들이 노래방에서 많이 부르지 않아?”

“그런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들이 노래방에서 많이 부르잖아.”

“가사가 공감되는 게 많아서 그런가?”

나는 말없이 차창 밖의 가로수들이 뒤로 멀어지는 풍경을 보았다.

“나는 늙어 가고 있잖아. 만약에 말이야, 자꾸 보고 싶고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미소 짓게 하는 여자가 있다면 들키지 마. 들킬 때까지 의심하지 않을 테니.”

하군이 말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그런 것도 예의라고 생각해.”

고결함과 한참 어긋나는 유치한 언행은 언제쯤 제자리를 찾을까, 나는 알 수 없는 슬픔을 꾹꾹 누르며 어둠을 밀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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