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괜찮다고 말하기

두 번째 기회 [네가 있어 다행]

by 비단구름

내가 꾸린 가정이 몹시 걱정되는 엄마는 길한 꿈을 꾸면 로또를 사라고 했다. 하군은 오십이면 틀림없이 회사에서 잘릴 거라고 짐작되고, 나는 변변한 직업이 없고, 한 참 돈 들어갈 나이의 손주들.


잘렸는지 때려치웠는지 모르겠지만 하군은 엄마의 예상 보다 일찍 실직자가 되었고 결혼 후 그럴싸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의 걱정과 달리 내 상황이 그다지 염려스럽지 않다. 심지어 부러운 사람마저 없다. 이유는,


남편도 있고, (빙구지만)

자식도 있고, (무려 둘이나!)

집도 있고, (대출도 있지만)

앞으로 삼십 년 동안 빚을 갚아 나갈 작정이고,

빚 갚을 라고 종종 알바도 뛰고 있고.


엄마야 말로 일평생 물욕이라곤 없는 사람이지만, 나의 집구석은 몹시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는 일흔의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로또 되면 너 다 줄 거야.”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엄마는 사실 로또를 사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로또는 언제 살 건데?”

“꿈 좋은 날 사야지.”

여태 한 번도 로또를 사 본 적 없는 엄마,

되기만 하면 다 준다는 엄마, 가 있어 든든하다.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고 게으르면 소가 된다고 봉건시대 충실한 소작농처럼 늘 주장하는 하군이 지덕체를 강조하며 꼭두새벽부터 사로를 깨웠다.

“사나이라면 모름지기 육체를 단련시키고 정신 교육을 해야 해.”

아침 구보를 하겠다며 사로와 밖으로 나갔다. 한 시간쯤 뒤 사로와 조깅을 하고 온 하군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많이 힘들었어? 얼굴이!”

하군의 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새 얼굴이 푹 꺼지고, 얼굴이 꺼메졌어!”

반면 사로 얼굴은 같이 뛴 거 맞나 싶게 뽀송뽀송하고 뽀얗다. 이마 가장자리에 뽀얀 땀 한 방울 뿐, 하군 얼굴에 죽죽 흐르는 시커먼 땀은 보이지 않는다.

“걷다 뛰다 그랬지.”

“근데 왜 너만 얼굴이?”

사로가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가는 길에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리며 씩, 미소를 짓고 지나간다.

“역시, 젊은 피! 다르다, 달라!”

물을 한 컵 들이켠 사로가 지나가며 또 씩, 웃는다.

“에구, 에구, 나는 지는 해야.”

아침부터 무리한 하군이 몹시 초췌한 몰골로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른 씻어.(못 봐주겠어.)”


강남, 아홉 시 반.


하군은 오늘 서류 통과된 네 군데 중 가장 가고 싶어 했던 회사의 임원 면접이 있다. ‘서류 – 1차 면접 – 실무진 면접 – 임원 면접’의 순서로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되었는데 면접 때마다 하군은 가장자리가 닳기 시작한 부적과도 같은 빨간 넥타이를 매고, 무려 두 시간 반이나 이른 일곱 시에 두 팔을 씩씩하게 흔들면서 위풍당당하며 애잔한 꼴로 걸어 나갔다.



하군이 면접 본 회사 중 하나는 서울에서 네 시간 떨어진 곳의 지사였다.

“대구까지 어떻게 다니려고?”

“거기 직원 한 명이 회사 근처에 숙소를 얻어 놓고 살고 있어. 그 직원이랑 같이 생활할 거 같은데.”

“숙소는 회사에서 해주는 거야?”

“아니, 그 직원이랑 내가 반반 월세 부담하며 사는 거지. 한 달에 이십오만 원씩 부담하면 되나 봐.”

“생활비는?”

“생활비도 나눠야지. 그래도 거기가 연봉이 지금보다 좋아.”

하군이 연봉이며 처우를 최우선 결정 요인으로 고려하여 혼자 지방에 가서 사는 것을 고민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지근했다.


“우리 보고 너 뜯어먹고 살라고? 네가 사마귀야? 처자식한테 살점 다 뜯어 먹히면서도 니 피붙이를 세상에 남겼다고 자족하며 죽어가는 사마귀냐고. 거기밖에 안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혼자라도 가겠다는 거야?”

하군 혼자 방을 얻어 사는 쭈글한 모습을 상상만 해도 고개가 절로 흔들어지는 한편 거기밖에 안되면 어쩌지,라는 염려가 동시에 들었다.


“안 돼. 무조건 안 돼. 연봉을 더 주거나 말거나 안 돼. 그냥 여기서 다 같이 대충 살자. 너 혼자 떨어져서 돈 벌어 보내고 우리는 여기서 편하게 네가 벌어다 주는 돈 받아쓰라고? 그게 정상적인 삶이야? 너는 무얼 위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안 돼. 그냥 여기서 다 같이 굶어.”

급기야 눈물이 흘렀다. 이런 젠장할 삶 같으니라고.


“가족은 매일 저녁엔 얼굴을 봐야 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너 혼자 외딴 데 보내 놓고 네가 벌어서 보내주는 돈 쓰면서 살기 싫어. 여기서 더 찾아보자. 연봉이 줄면 덜 쓰면 돼.”

혹시, 하군이 우리와 떨어져 혼자 있고 싶은 건가? 나는 말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는 하군의 알 수 없는 표정을 살피며 그러거나 말거나 쐐기를 박아주었다.


“내가 싫어하는 농담이 두 가지가 있는데 말이야, 하나는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 그럴 거면 결혼 왜 했대? 강제로 수절시킬 거면 왜 결혼했냐는 말이야. 또 하나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 부부를 한다’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그게 말이야 방귀야? 그럴 거면 결혼은 왜 하는 거야?”

나는 하군이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쏟아부었다.

“정말이지 둘 다, 하나도 안 웃겨. 저질이야.”

하군의 얼굴이 이유 없이 혼나는 중학생 아이처럼 울상이었다. 나는 그런 하군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렇게 말했다.

“혼자 지방 가서 사는 거 꿈도 꾸지 마.”

젠장, 눈물이 난다.



하군을 도와야 하는데, 가정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보 천치다. 나는 잘하는 법을 까먹은 생각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애초에 나란 사람은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비 오는 날 빨래하기

-시험날 미역국 끓이기

-생일 까먹고 미역국 안 끓이기

-차 끌고 나갔다 까먹고 걸어오기

-머리 감고 밥 먹다 머리카락을 카레에 담그기

-충전하러 갔는데 카드 안 갖고 가기

“카드 없이는 내 계좌에 돈 못 넣는 거예요?” 따져 묻는 당당함은 덤.

-계란 프라이를 하려다 단단한 계란 껍데기를 숟가락으로 탁! 야무지게 때린 뒤, 계란은 바로 옆 쓰레기통에, 껍데기는 잘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투하하기

-아침 아이를 데려다주는 차 안, 라디오 디제이가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했다. “무슨 정신인지 치약으로 세수했어요.” 디제이가 다정한 위로를 건넸다. “폼 클렌징으로 양치하는 것보단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만.”

“으하하하! 웬일이야! 이런 사람이 있다고?”

그날 저녁, 칫솔에 폼 클렌징을 짜고 있는 정신없는 나.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사람들과 있는 자리에서는 말은 아끼고 행동은 자제하고 최대한 가만히 있기로. 나를 알 턱없는 이들로부터 점잖다, 신중하다,라는 오해가 더러 있는데 나는 그저 어리바리함과 덜떨어짐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하필, 하군의 중요한 면접 날 나는 들기름에 북어를 넣고 달달 볶다 푹 우려낸 북어 미역국을 한 솥 끓였다.

“어떡하지? 미역국이네. 다른 거 해줄까?”

역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있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아니, 괜찮아.”

하군이 이런 시시콜콜한 거에 신경 안 쓰고 예민하게 굴지 않아 다행이다. 현관에서부터 빌딩 입구까지 정확하게 한 시간 이십육 분이 걸리건만 하군은 일곱 시에 나갔다.

“그렇게 일찍 나가?”

“그럼. 가서 똥도 좀 누고.”

하군의 가장 큰 내부의 적은 불쑥불쑥,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급성 민감 급똥이다.

“그래, 그래. 똥 마려우면 똥도 누고 커피숖에 들어가서 커피도 한 잔 마셔.”

“그래야지. 근데 문 연 커피숍이 있나 모르겠네. 저번에 보니까 던킨은 안 열었더라고.”

“회사 근처라 있을 거야.”


“이 넥타이 괜찮아?”

나가기 전 하군은 십 년도 더 되어 가장자리가 살살 닳고 있는, 언제 샀는지, 내가 사줬는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건지 정확하게 기억조차 안 나지만 중요한 날이면 부적처럼 매는 사선이 그어진 빨간 넥타이를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잘 어울려. 예쁘네.”

지는 해 주변 하늘엔 오색찬란한 노을빛이 난다. 빨간색, 노란색, 오렌지색의 노을빛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하게 하고, 넋을 잃고 바라보게 하며 입을 벌리고 숨을 쉬게 하고, 카메라를 꺼내 찍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누군가 저물어 가는 태양, 하군의 빛나는 오색찬란 매력을 발견하기를 바라본다.

여느 날처럼 커피를 타고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선 벌써 음악이 흐르고 있다. 모두들 부지런히 삶을 가꾼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Starry Starry Night’을 들으며 책상을 닦는다. 닦을 상이 많지는 않다. 사인용 식탁 한 개, 하리 책상 한 개, 사로 책상 한 개, 거실 테이블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먼지를 닦아낸다.

‘음,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라디오가 위로의 노래를 건넨다.

좋은 꿈을 꾸지 못해 로또를 사지 못한다는 엄마와 달리 나는 길한 꿈을 여러 번 꾸고도 정작 로또는 사지 않았다. 로또 일등에 당첨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길한 꿈을 꾸었다고 증언했으니 길한 꿈을 꾼 날이면 로또 몇만 원어치쯤은 사보아도 좋을 테지만, 확실하지 않은 일에 무려 몇만 원이나 써버리자니 손이 떨려 못 사겠는 것이다. 살림이 빠듯해서 확실히 좋은 것은 불필요한 일, 쓸데없는 일에 허투루 돈을 써버리는 일에 꽤 자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길몽을 꾸었으니 그럼 단돈 만원 어치라도 로또를 사보면 어떤가, 하는 마음도 있지만 좋은 꿈을 꾸었으니 이왕 투자하려면 확실히 만원보다는 몇 만 원쯤은 구매해 당첨 확률을 높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또 고작 ‘꿈’ 때문에 몇만 원이라는 거금을, 우리 가족의 일주일치 식재료비나 되는 돈을, 주말엔 소박한 비스트로 식당에 가서 즐기는 한 끼 행복이나 되는 비용을 이 딴 데 써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살림이 빠듯하면 결국, 먹고사는 일이 최우선 가치가 된다.


실체가 난해하고도 난해한 꿈과 무의식과 정신분석의 세계에 흥미를 느낌과 동시에 어려움을 느껴 꾸역꾸역 읽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꿈은 무의식의 발현일뿐, 내가 길몽을 꾼 까닭은 ‘길몽, 길몽, 길몽을 꾸면 엄마 말대로 로또를 사야 하나?’라고 곱씹어서이지, 예지몽적인 영험함은 아닌 거라고 ‘정신분석 입문’은 단돈 몇만 원이라도 허투루 써버리지 않도록 영향을 주었다.


일각에선 ‘꿈’을 꾸는 사람은 ‘영’이 고결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세상 때가 덕지덕지 묻은 내 ‘영’이 아직까지도 고결할 리가 없다. 내가 기억하기에 내 고결한 영은 대략 중학교 즈음까지 그런대로 유지하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그런대로 남아 있다가, 아주 낮은 바닥상태로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쯤 소멸되었다, 고 자각하고 있다.

현재의 나에게는 어떠한 고결한 ‘영’도 남아 있지 않아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서는 오늘 오후에 비가 올지도 예측할 수 없고, 미래에 대한 추측도 가능하지 않으며, 땅속에서 기어 나와 도로에서 꿈틀대는 지렁이 무리와 개미 동굴을 높이 쌓고 있는 일개미를 보고도 무심하게 지나치는 수준이다.


있는 대로 다 보여주는 자연을 보고도 이러는 지경이니,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더욱 알 길이 없어, 눈앞에 사기꾼이 앉아 있어도 간 쓸개를 쟁반에 담아 차와 함께 대접할 것이 분명하니 이럴 바엔 차라리 폐쇄적이 되자,라고 우둔한 내 탓을 하기보다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며 홀로 고립되는 편이 낫다,라고 자발적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대신 나는 좋은 꿈을 꾸며 공모전 결과 발표가 날 때까지 되는 꿈을 꾼다. 이왕 내 멋대로 꿈꾸는 거, 안 되는 꿈은 꾸지 않는다.


로또 일등 당첨자들에 의하면, 로또 당첨이라는 행운을 누리기 위해 매일 열 시간씩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운동을 하고, 피를 쏟는 소리를 내는 등 뼈를 깎는 노력과 수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마치 조상님의 계시와 같이 느껴지는 똥꿈, 돼지꿈, 대통령 꿈, 불 꿈, 물 꿈, 호랑이 꿈, 돌아가신 조상꿈을 꾸고 ‘로또 1등 126회 당첨’이라는 로또 명당을 찾아가 로또를 구입하기만 하면 끝이다. 찰나의 고민 정도는 하겠지. 자동으로 찍을까, 수동으로 찍을까, 섞을까.


공모전에 응모하고 나면 기분만은 로또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과 흡사하다. 홀린 듯 취한 듯 길게는 한 달 여의 행복이고 설렘이다. 최소한 발표날까지 설레는 기분 좋은 일이긴 하나 나의 노력은 진심일까. 나의 글들에 진심을 다하고 있을까.


편하게 쓰고 여유롭게 검토한 글들을 공모전에 보내는 일들은 길을 걷다 로또나 한 번 사볼까, 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다. 그러고도 당선을 기대하다니,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이 정도의 알량한 노력으로 하늘로부터의 얄팍한 행운을 기대하다니. 공모전 입상 외에는 방법이 없는 절박한 작가들, 수십 번, 수백 번 두드린 끝에 마침내 공모전에서 입상한 많은 작가들, 생업으로서의 글쓰기에 진심인 작가들에 비해 나는 과연 그들만큼의 수고를 하였는가, 그러고도 가당치 않게 운을 기대하는가, 자기반성을 한다.


기대하는 메일과 전화는 오지 않고 대신 ‘네이버 서치 어드바이저 소유 확인 만료일을 점검하라’는 메일이 왔다. 소유 확인을 까먹든 말든 내버려 두지 않고 만료일을 챙기라고 소유자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다니, 네이버가 열 일하고 있다.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알고 있었어도 새까맣게 까먹을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메일을 보내주다니, 이건 마치 내 블로그의 인공지능 비서 같다.


하라고 하니, 네이버로 들어가 서치 어드바이저 소유 확인을 완료했다. ‘관리자’로 들어가 ‘스킨 편집’을 클릭하고 ‘html 편집’을 클릭하여 메타태그를 복사해 ‘head’ 아래, 기존에 붙여 넣었던 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아래에 붙여 넣었다. 1분 정도 걸리는 간단한 작업이다.


뜻밖에 내 블로그에 구독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블로그가 멋져서라기보다는 본인 블로그의 이웃을 추가하는 것이 목적임을 알지만 이게 블로그의 생태라면, 뭐.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키우려는 누군가의 적극성을 보며 요즘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정말 치열하게 강구하는구나, 생각했다. 그에 반해 나는? 이런 걸 알면서도 맞구독을 하러 돌아다니지도 않는 무사안일 천하태평이란.



하리와 사로는 등교하기 전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여 매일 자가진단을 한다. 학교와 학원에서도 매일 체온 체크를 하는데 집에서 괜찮았던 하리가 37.9도의 열이 있다고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가방 챙겨주시고 계셔. 서류 작성하고 나올게.”

하리를 데리고 곧장 선별 진료소에 가려고 전화했더니 점심시간 하고 물렸다. 하리를 집으로 데려와 점심을 먹고 한 시 넘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선별 진료소에 갔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줄이 보건소 마당을 지나 대로변의 인도까지 백 미터쯤 길게 이어져 있다.


“어땠어? 어떤 느낌이었어?”

한 시간을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선 끝에 코로나 검사를 받은 하리가 어떤 기발한 표현을 할까, 궁금해 물었다.

“면봉이 콧등에 닿는 느낌? 뇌를 터치하는 기분은 아니던데.”

이성적인 하리가 담백하게 말했다. 이렇게 이성적인 아이가 어째서 삼수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코로나 결과 음성 나와도 증상 있으면 무리해서 등원하지 않아도 된대. 수업 자료는 메일로 보내주신다고 걱정 안 해도 된대.”

“그지. 혹시 모르니까.”


“코로나 아니겠지?”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한 적이 없고 가족 중 누구도 코로나 확진을 받지 않았으며 가족 중 누구도 코로나 증상이 없고 학교에서도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으니 현재로선 네가 코로나라기보다는 환절기 감기일 거야.”

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엄마, 코로나를 얼마큼 무서워해야 하는 걸까?”

하리가 물었다. 다들 모르는 것 같다. 모르는 대신 코로나 확진을 숨긴 사람의 관계와 종교와 지역이 뉴스에 나왔다. 사람들은 지키는 방식으로 혐오를 택하는 듯 보였다.

“엄마도 코로나가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 사실 엄마는 늘 몰랐어.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도 무얼 얼마큼 해야 하는지 몰랐어.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엄만 잘하고 있어.”

하리가 말했다.


“나는 결심했어.”

삼수생 하리가 오늘의 결심을 발표한다.

“알바를 구하기로 결심했어."

"대학은 가지 않기로 한 거야? 아빠가 실직했기 때문이야?"

하리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들었어. 처음 경험하는 코로나를 너무 무서워하는 것처럼 대학을 가지 않은 삶을 너무 무서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많이 힘들 텐데."

“그럴지도.”

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지 않는 공부를 붙잡고 있는 것도 힘들어."

하리가 말했다.

"그럴지도."

나는 하리의 손을 잡았다.

"엄마 때문에 삼수까지 한 거 같아 미안해."

나는 진심으로 하리에게 사과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언급했을지 모르는 날들을, 대학을 꼭 가야 하는 것처럼 불안해했을지 모르는 날들을, 하리가 다른 길을 찾을 시간을 허비하게 한 것을.

"아니야.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 선택이었어."

하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점심을 먹고는 바로 설거지를 했다. 점심 먹고 바로 설거지하는 이유는 소화를 시키기 위해서일 뿐 깔끔해서라거나 남들보다 부지런해서는 아니다. 라디오에선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오늘따라 가사가 귀에 꽂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글을 쓴다. 전문 가사도우미와 같은 솜씨가 없어 티가 나지는 않지만 집안일도 짬짬이 하고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나도 살아있지만 어디에서도 존재감이라곤 없는 나에게 힘을 내라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운다. 나와 같은 심정을 느끼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저 노래를 쓴 사람도 같은 기분을 느낀 거구나. 그래, 힘을 내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글을 쓰자. 글은 쓰기만 해도 힐링이 되니까. 노래가 이렇게 힘을 준다.



최종 임원 면접을 마친 하군에게 전화가 왔다. 면접이 끝나자마자 가슴 졸이고 있을 나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잘 됐어. 다음 달 1일부터 출근하라고 하네.”

“오, 능력 있네. 멋져 우리 남편!”

“그동안 마음 많이 졸였지?”

“아니야. 나는 너 믿고 있었어. 어디야? 지하철?”

“응. 여기 소개해준 친구랑 점심 먹고 오후에 약속 있어서 볼일 보고 들어갈게. 들어가서 자세한 얘기 해줄게.”

“그래. 맛있는 거 먹어.”


코끝이 찡하다. 누군가는 저녁노을 하늘의 낙조가 아름다운 것을 알고 있다. 흔히 노을 하면, 해질 무렵의 저녁노을이 떠오르는데 사실 노을은 해 뜰 무렵에도 빛난다. 서서히 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다음 날이면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고도 남을 신비로운 환한 빛을 뿜어내며 어김없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 하군처럼.

여덟 시에서 아홉 시쯤 들어온다던 하군이 열 시가 다 돼 가도록 들어오지 않아 전화했더니 다 왔다고 했다. 최종 합격하고 바로 근로계약서에 사인하고 출근 날짜까지 받아온 하군의 얼굴이 아침보다 더 안돼 보이고 근심인지 수심인지 가득하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피곤해서일 거라고, 예전처럼 체력이 남아돌지 않아 조금만 움직여도 기력이 떨어져 눕고 싶어 그러는 걸 거라고 애써 짐작하며 숨 죽은 콩나물처럼 시들어가고 있는 하군에게 익살을 부려본다.


“축하 파티해야지!”

만이천 원짜리 호주산 소고기 등심 한 덩어리를 손가락 마디 크기로 잘라 잘 달궈진 팬에 넣고 구웠다. 양송이버섯과 듬성듬성하게 자른 양파와 매콤한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소금과 후추와 스테이크 소스를 뿌리고 볶아 알뜰살뜰한 찹스테이크를 만들어 접시에 푸짐하게 담았다. 호가든 맥주를 컵에 나눠 따른 뒤 맥주잔을 높이 들고 부딪혔다. 챙, 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얘들아, 아빠 취직했어.”

하리와 사로가 박수를 쳤다. 얼굴이 울긋불긋한 하군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연봉이 전보다 깎였어.”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켠 하군이 소고기 한 덩어리를 입에 넣었다.

“괜찮아. 덜 쓰면 돼. 그래도 서울에 있잖아.”

“그렇긴 하지.”

“그거면 됐어.”

나도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아빠 대단한데! 그 나이에 취직도 하고.”

하리가 맞장구를 쳤다. 사로는 묵묵히 잠자코 있다. 하리의 말에 하군의 웃음이 터졌다.

“내가 케이크도 사 올까? 생일 때 동아리 선배한테 받은 케이크 쿠폰 있는데.”

하리가 제안했다.

“하지만 컵케익만큼 매우 작아.”

컵케익만큼 작은 케이크를 넷이 나눠먹는 모습이 떠올랐는지 하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럼 아빠가 카드 줄게.”


하리와 사로가 알바 베이커리에 가서 케이크를 사 왔다.

“알바가 아빠 취업 축하한다고 그냥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어.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차려야 하잖아. 사로가 아빠 취업 축하 케이크 자기가 산다고 돈을 가지고 나왔지. 그렇지만 아빠 카드로 샀어.”

“그랬어? 네가 아빠 케이크 사주려고 그랬어?”

사로가 의자에 손을 올리고 몸을 비비 꼬며 뱅뱅 거린다. 멋쩍을 때 하는 짓이다.

“돈도 없는 사로가 케이크 사겠다고 돈을 가지고 나와서 이만 원이 안 넘으면 사로가 사고 이만 원이 넘으면 아빠 카드로 사라고 했지. 그런데 진열장에 있던 케이크 중 가장 작은 케이크가 이만 오천 원이어서 아빠 카드로 샀어.”라고 하리가 사로 대신 귀엽고 야무진 입모양으로 말해주었다.


불 꺼진 밤, 하군이 어둠 속에서 조용하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화장실에 가습기를 들고 들어가 물을 채우더니 가지고 나오는 것이 어둠 속에서 느껴진다. 부스럭부스럭, 타락, 탁, 탁. 물 채우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궁금하지만 눈을 꼭 감고 기다려본다. 타닥, 톡, 톡.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눈을 떴더니 하군이 가습기와 코드를 들고 침대 옆 협탁과 티브이 장을 왔다 갔다 하며 가습기 놓을 자리를 가늠하고 있다.


“가습기 옮기려고?”

“가습기가 너무 멀리 있어서 너한테 안 가지?”

“괜찮은데.”

괜찮다는 말을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로 믿고 있는 하군이 가습기를 내 자리에서 가까운 쪽에 세팅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거기다 놓으면 티브이에 습기 먹어서 티브이 고장 나지 않을까? 가전제품의 최대 천적은 습기인데.”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래도 이제 새벽에 목이 덜 아플 거야. 코도 덜 막힐 거고.”


곧 하군이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다. 하군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누운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것은 하군이 회사와 회사를 건너뛸 때, 한두 달씩 시간이 있었을 때 온전히 쉬게 해 줄 걸.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어서 힘들지?”라고 하군이 씩 웃으며 멋쩍은 농담을 건네지 않도록 더 정성스럽게 밥을 차릴 걸, 회사 다닐 동안에는 꿈도 못 꿀, 앞으로도 은퇴할 때까지는 꿈도 못 꿀 유럽 여행이라도 해볼 걸, 하는 것이다. 이제야 깨달아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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