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회 [똥맛 카레 카레맛 똥]
운명, 혹은 지독한 굴레다. 아버지를 닮은 남자와 결혼하고 마는 것은.
20세기를 지나 밀레니엄 시대가 되자 함들이 문화는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엄마는 함들이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그런 구시대적인 전통을 따르고 싶지 않은데.”
나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평생 한 번하는 결혼인데 하던 건 해야지 않겠니?”
나는 엄마가 백만 원을 주고 맞춘 값비싼 한복을 입고 댕기 머리를 하고 조신하게 앉아 하군과 얼굴에 마른오징어를 쓴 함진아비가 오기를 기다렸다. 대문 백 미터 밖에서부터 “함 사세요!”를 외치며 함진아비와 하군이 엄마가 준비한 돈봉투를 주우며 다가왔다.
“함에 좋은 걸 잔뜩 넣었는지 무거워서 다리가 아파 더는 못 가겠어요.”
함진아비가 앓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만하고 얼른 들어오셔요. 안에 맛있는 거 많이 준비해 놨답니다.”
엄마가 애원하듯 말했다.
“아이고, 다리야.”
함진아비가 주먹으로 다리를 두드리며 죽는시늉을 하자 엄마보다 작고 야리야리한 막내 이모가 성큼성큼 걸어 나와 함진아비를 번쩍 안아 대문 앞까지 들고 왔다. 이모의 괴력에 놀란 함진아비가 힘차게 박을 깨고 순순히 안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와 하군이 절을 할 때 이모들이 외쳤다.
“이 집 사위는 장인이랑 똑같네!”
함진아비를 들어 올렸던 막내 이모가 하군을 빤히 보고 있다 한 마디 했다.
“장서방이랑 너희 아버지랑 똑 닮았다!”
희주가 죽은 후 엄마는 나에게 넘치는 걱정을 쏟아부으며 오랜 기간 나를 단련시켰다. 또 한 번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자식을 잃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니.”라는 말을 구호처럼 사용하며 하드 트레이닝을 시켰다. 하드 트레이닝은 엄마가 없을 때 위험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더 나아가 위험에서 멀리 벗어나게 하려는 엄마의 강박적 특성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는 자식을 허망하게 잃지 않겠다는 엄마의 주문 같은 다짐이었다. 덕분에 머리만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고도의 첩보요원급 훈련의 결과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어떤 맛인지 안다고 착각하는 미확인 예지력과 미리 지레짐작하여 시도해보지도 않으려 하는 부작용을 덤으로 획득했다.
결혼생활의 팔 할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엄마는 어찌 된 일인지 결혼에 관하여서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 던 가르침에서 완전히 상반되는 견해를 보였다.
“똥이든 된장이든 결혼해야지. 된장, 이라고 하더라도 먹어야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는 편이 낫지.”
“매우 무책임한 발언 같아 보이는데?”
“좌우지간 그냥 결혼은 해야지. 너무 늦게 결혼하면 안 돼.”
“너무 늦게,라는 게 언젠데?”
“늦어도 서른 전에는 가야지.”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니?’라는 가르침에는 그럴듯한 논거가 없어도 꽤 수긍이 되었으나 이틀에 한 번 꼴로 아빠 욕을 하던 엄마의 강력하고도 단호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납득될 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똥이든 된장이든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결혼에 대한 엄마의 이중적인 우격다짐에 대한 반발심보다는 ‘불평으로 가득한 결혼생활’을 하고 ‘사는 내내 못마땅한 남편’을 둔 엄마의 ‘지 아비를 똑 닮은 자식’인 내가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염려였다.
“결혼하고 불행하면 어쩌지. 행복하지 않을 거 같아. 사랑이 식으면 남편은 다른 여자를 찾을 거야. 아빠도 그랬잖아.”
“열 여자 마다할 남자 없다지만 다 그런 건 아니야. 네 아빠가 별스러운 거고. 평생 해로하는 부부가 더 많아. 넌 틀림없이 잘 살아야 해.”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문처럼 말했다.
“딸은 아빠 닮은 사람이랑 결혼한다더라.”
사람들은 이런 불길한 소리를 곳곳에서 해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엄마와는 다른 인생을 살 거야.”
나는 아빠 그림자도 밟지 않기 위해 아빠와 같은 사인이 있으면 단호하게 피하고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신중하고 까다롭게 골랐다. 엄마처럼 살면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불행은 대물림 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아빠의 고향 출신, 아빠와 같은 혈액형, 아빠와 같은 의사, 아빠와 같은 가족 구성원, 아빠와 같은 갈매기 눈썹, 아빠와 같은 고집 센 콧대를 모두 피하려고 애썼다. 그러자 사람들은 불길한 소리를 또 아무렇지 않게 해댔다.
“너무 고르지 마라. 고르다 고르다 딱 너 같은 사람 만난단다.”
양손으로 모래를 거침없이 긁어내 던져버리는 모래성 게임을 마치고 얼마 남지 않은 모래성 위에 아슬아슬하게 꽂혀 있던 단 하나의 깃발, 하군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 제자리를 돌던 결혼에 대해 몹시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던 시절, 눈앞에 하군이 떡하니 나타나더니 그물망에 걸려 들어왔다. 삼 남매 아니고, 막내 아니고, B형 아닌 하군은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아빠와는 확실히 달랐다. 연애하는 내내 어둠의 주술 외우듯 ‘결혼하면 행복이 사라질 거야.’라고 내가 중얼거리면 그때마다 하군은 ‘우린 틀림없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확신을 주었다.
“넌 좋은 남자를 만날 줄 알았어!”
선량한 인상의 하군을 만난 엄마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지 않고 구분해 내는 특급 가르침’의 보람을 찾은 듯 무척 기뻐하며 안도했다. 사실 하군을 선택한 것은 엄마의 특급 훈련의 집약체이긴 하였다.
나는 똑똑하고 논리적인 남자들보다 행복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망설임도 없는 하군과 있을 때 실컷 웃었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것 같은 하군의 순진무구한 무모함은 이상하리만치 먹구름 같은 내면의 불안감을 걷어내고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돈키호테 같은 하군의 옷자락을 잡고 곁에 있기로, 이런 바보 같은 하군과 함께라면 하늘 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웃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솟아날 구멍이 없는 것이 너무 기막혀 웃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충분히 기대를 낮추고 실망할 각오를 했음에도 결혼생활은 예상보다 실망스러운 시나리오로 가기도 한다. 낌새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하군이 일을 그만둘 것 같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얼굴만 봐도 속을 들여다보는 사이로 다듬어 놓았다.
회사는 프로젝트라면 어디든 상관없이 물어왔다. 하군은 청주며 진주 같은 지방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곤 했다. 그렇게 숨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이 회사 때문은 아니겠지만 항상 소년 같던 하군에게서 싱글벙글함이 사라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늘 현관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집에 들어오던 하군의 얼굴에서 화사함이 보이지 않았다.
단가가 맞지 않는 계약을 전 이사가 밀어붙였다.
“그렇게 하다간 몇 억 손해 납니다.”
몇 억 손해 보는 계약을 손해 나지 않는 지경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 하군이 책임자로 투입되었다. 처음부터 상식에 맞지 않는 계약을 주도했던 거래처 팀장은 벌써 뒤로 빠지고 젊은 대리가 하군을 상대했다.
“저들도 지들이 잘못한 거 알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지.”
하군은 정기적으로 화요일마다 청주에 갔다. 어떤 날은 청주 가는 날이 아닌데도 호출이 오면 갑자기 미팅이 잡혀서 다녀오기도 했다. 거기만 다녀오면 스트레스가 심한지 밤에 잠을 못 잤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새벽에 깬 하군은 아침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쪽에서 애초 합의되었던 것보다 더 요구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걸 들어주어야 할 것 같은데 방법이 없어서 저렇게 고민하는 건가, 하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도 하군 곁에 누워 덩달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급기야 단물 쓴 물 다 마셔본 하군이 청주만 다녀오면 집에서 몸을 떨고 며칠 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똑바로 누워 봐도 잠이 오지 않는지 다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동안 다섯 시 알람이 울렸고 하군은 일어나서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하군은 밖에서 무슨 일이 있던 집에 와서는 일 얘기도 안 하거니와 티도 내지 않지만 하군을 알고 지낸 지 이십 년이니 이제 하군이 더워서 잠을 못 자는지, 술을 너무 마셔 잠을 못 자는지, 속이 썩어 잠을 못 자는지 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네 숨소리만 들어도 네 얼굴만 봐도 알아. 넌 투명하거든.”
“몹시 신통방통하군.”
하군이 새벽 내내 뒤척이는 모습을 보고 나는 틀림없이 하군에게 고민이 있다고 생각할 뿐 하군이 잠도 못 자고 뒤척일 만큼 누군가 하군을 힘들게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빌런이 현실에 진짜 존재할 거라고 생각 못했던 것이다.
하군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출근한 것이 마음에 걸려 전화를 했다. 대놓고 못 물어보고(하 군이 일 얘기 물어보는 거 안 좋아한다.) 요렇게 저렇게 주저리주저리 변두리 토크를 좀 하다가 이때다, 하는 타이밍을 잡았을 때 하군에게 물었다.
“새벽엔 왜 그렇게 못 잤어?”
“그냥, 뭐. 어제 거래처 대리하고 업무 얘기하는데 한 삼사십 분을 해대더라고. 새벽에 그게 생각나서.”
“저번에 그 사람? 갑질한다던?”
“어.”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는 상대, 조금이라도 더 단가를 낮추려는 상대와의 업무 조율이 쉽지 않은 것은 알고 있다.
“아니, 그 아저씨 왜 그런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든대?”
“아저씨도 아니야.”
“어려? 얼마나 어린데? 삼십 대?”
“이십 대야.”
이십 대 직원한테 삼사십 분씩 깨지고 있는 거야? 그러고도 집에 와서 오늘 하루 아무 일 없이 즐겁게 일하고 온 것처럼 맛있다며 저녁을 먹고 아이들하고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고 힘든 거 없냐고 물은 거야? 사람한테 삼사십 분을 퍼대는 걘(내 남편에게 함부로 대했으므로 나도 존대하지 않겠다.) 또 어떤 부류의 사람인 거야? 사이코야? 하군은 한참 어린 사람이랑 싸우는 대신 피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그들의 속사포 모욕적 폭언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새벽에 잠을 깬 하군이 몸을 뒤척이며 침대에 다리를 한 번씩 철퍼덕하다 다리를 구부렸다 쭉 뻗었다, 하는 행동을 보며 하군이 걔를 만나고 올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해 이불 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군이 그러고 있으니 나도 저절로 잠이 깼거니와 도저히 다시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잠이 깬 김에 하리와 사로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들 방문을 열고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오니 거실에 하군이 대자로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거기만 갔다 오면 잠도 못 자고 한숨 쉬고! 여태 이런 적 없었잖아.”
“아무것도 아니야. 더워서 그래.”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나 때문에 잠 못 자는 거 같아서 거실에 누워 있으려고.”
하군은 떫은 입맛으로 식빵 한 조각을 먹고 출근했다. 잠을 못 자고 밤새 뒤척이고 출근한 하군이 신경 쓰여 카톡을 보냈다.
- 괜찮아? 거기 어디야? 걔 소속하고 이름 뭐야? 내가 당장 가서 나오라고 할 거야. 누구야, 걔.
걔 소속하고 이름을 안다고 내가 딱히 무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것도 아니지만. 마음 같아선 당장 쫓아가 따지고 싶었다.
- 괜찮아.
하군에게 짧은 답장이 왔다. 백번을 물어도 괜찮다고 하겠지. 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것을 내가 알아버렸다. 나는 문자를 보내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
“그쪽에서 자꾸 갑질하고 무리한 요구 하면 이번 프로젝트 빠그러뜨리고 회사도 때려치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알지만 하군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때려치워도 된다는 거.
“걔가 자꾸 못되게 굴고 무리한 거 요구하면 담당자 바꿔달라고 해. 자기네 회사든, 걔네 조직이든.”
“우린 부모잖아.”
하군의 음성 너머로 지하철 안내 멘트가 들렸다. 둘 만 있으면 당장 그만두어도 그만이지만, 당장 다 때려치우고 전기도 수도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처럼 살아도 아쉬울 것 없는 삶이지만, 부모로서는 힘들다고, 괴롭다고, 스트레스받는다고 무책임한 결정을 성급하게 할 수는 없다. 하군과 나는 이러한 현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
“더한 경우도 많아.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하군도 나이를 먹고 있다. 젊을 때 같으면 그래, 좀 견뎌 보자, 좋은 날 오겠지, 하며 맥주 한잔 하며 버티고 했겠지만 요즘은 하군이 고생하는 것이 싫다. 특히 마음고생하고 속 썩는 것은 더 싫다.
“힘들면 그만 일해도 괜찮아. 힘들면 그냥 그만둬. 너 힘든 거 보단 네가 건강하고 마음 편한 게 더 좋아.” 하군에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회사 홈페이지의 조직도에서 우대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 씨 성의 남자 이름은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우대리의 직통 번호를 눌렀다.
“기획전략부 우찬종입니다.”
청주가 바로 옆 동인 것처럼 전화 속 우대리의 목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우찬종 씨, 그 정도 싹수없었으면 됐어요. 하나라도 더 받아내야 일 잘하는 줄 아는 그따위 마인드 버리길 바라요. 서울에서 청주까지 바로 오라면 바로 갈 수 있는 거리인가요?”
“네?”
우대리가 반격할 틈을 주지 않고 나는 속사포를 집중적으로 쏘아댔다.
“어제 미팅했는데 다음날 갑자기 또 오라고 하는 이유가 뭐죠. 미팅했으면 우대리가 알아서 처리할 수는 없는 거예요? 노련하지 않아서 자꾸 서울에 있는 사람 불러내는 거예요? 네가 알아서는 처리할 수 없는 건가요? 자꾸 더 해달라고 하고 더 해달라고 하고 그러면서 갑질하면 확 빠그러뜨리고 이판사판입니다.”
“누구시죠? 지금 무슨 말씀을.”
우대리가 휴, 한숨을 쉬었다.
“당신 앞에서 굽실거리는 볼품없어 보이고, 그 나이 먹도록 이룬 것 없어 보이고, 비루해 보이는 싸구려 재킷 입은 오십 먹은 남자가 어떻게 보일지 알아요. 스물아홉에 공기업 다니는 당신 눈에는 우습고 하찮겠죠. 하지만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예요. 이십 년을 헌신한 덕에 두 아이는 곧 성인이 되지요. 그에게는 남편의 건강과 스트레스를 돈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는 아내도 있어요.”
싹수없는 민원 전화에 우대리가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정을 훌륭하게 건사할 만큼 헌신적인 사람이지만 대접은 안 바라는데 최소한의 애티튜드는 좀 갖춰 주었으면 좋겠어요. 남편 입에서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갑질’ 소리 나왔어요. 적당히 좀 해요. 그리고 앞으론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든 말이에요.”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었다.
“저기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우대리도 화가 나는지 언성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예언을 좀 할게. 너의 그 됨됨이로 봐서 너는 내 남편만큼 훌륭하게 가정을 건사하지 못할 거야. 설사 가정을 꾸린다고 해도 너의 부인도 아이들도 모두 너를 싫어할 거야. 너의 행동에서 네 미래를 봤어. 잘 되지 않겠지만 행운을 빌어.”
나는 우대리가 반박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뭐라고요? 이 아줌마가!”
우대리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 나 아줌마다! 딱 봐서 사람이 좋아 보이고 유순해 보이면 거기에 맞게 잘 대해주는 것이 품격 있는 인간의 도리이거늘, 그런 것도 모르는 거야? 이 싹수없는 자식아! 너 자꾸 갑질하면 네 직속상관부터 사장까지, 필요하면 언론사에도 제보할 거야! 내 남편 건드리지 말라고!”
이성을 잃은 채 악다구니를 쓰며 실컷 퍼부어대고 전화를 끊어버려야 했다. 손이 덜덜 떨려서 더는 전화를 잡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덜덜 떨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익명의 힘을 빌려 속이 시원해졌다. 동시에 추한 꼴을 보였구나, 자괴감이 밀려왔다. 우대리와 대면하고선 한 마디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처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하군은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만두는 편이 낫겠군, 싶을 만큼 최근 몹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다 하군이 스트레스로 죽을 것 같아 안 그래도 때려치우라고 말해둔 참이었는데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 격이 되었는지 정말 확, 그만둔다고 회사에 통보했다.(이건 하군의 말) 아니면 대차게 잘렸거나.(이건 내 짐작)
“잘린 거야?”
내가 물었다. 하군이 아무렇지 않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내가 그만둔 거야. 그 회사 별로였어.”
“똥 같았어?”
“응. 몹시 똥 같았지.”
하군 혼자 스트레스를 감당하다 죽어버리는 것보다는 하군이 백수가 되는 편이 나았다. 가족으로서 하군의 스트레스를 얼마든지 나눠가질 수 있다. 이런 일이 닥칠 거라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두렵다. 완벽하기는커녕 불완전하고 아리송한 결혼 생활이 도처에 널린 걸 보았으면서,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지 않아도 확실히 별로였음에도, 결국에는 덜컥 결혼을 선택했으니 별 수 없다. 선택엔 책임이 따르는 법.
나는 하리와 함께 마추를 데리고 저녁 산책을 나갔다. 이 시간에는 동네 강아지들이 많이 나온다. 하리가 곁에서 종알종알 말을 거는데 머릿속엔 ‘똥’ 생각으로 가득이다. 이를테면, ‘똥 밟지 말아야지.’ 같은.
동네엔 곳곳에 ‘반려견 목줄 착용, 반려견의 배설물을 수거해 주세요.’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덕분인지 대체로 거리는 깨끗한 편이지만 가끔 강아지 배설물이 보인다.(고양이 배설물일 수도 있지만) 종종 사색에 잠기고 허공을 응시하며 멍 때리는 모습에 익숙한 하리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며 나를 깨운다.
“으악! 엄마, 나 벌레한테 공격당했어!”
“으으응?”
“벌레가 뭐를 했어. 내 머리에!”
하리의 다급한 외침에 현실로 돌아왔다.
“벌레한테 맞은 기분이야!”
하리 머리를 보니 머리에 흰색 비슷한 뭔가 문대져 있다. 새똥이다. 하리는 벌레를 무척 싫어하니 새똥이라 차라리 다행이다.
“새똥 같은데.”
“새똥? 으윽.”
하리가 인상을 찡그렸다.
“외국에선 새똥 맞으면 재수가 좋대.”
나는 하리를 위로하기 위해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나라도 똥 밟으면 운수가 좋다고 하잖아. 아침에 초록색 똥차 보면 재수 좋다고 하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도 하고.”
“그건 다 미신이야.”
“미국에는 대변 은행이 있는데 대변 한 개당 40달러를 제공하며 질 좋은 대변을 모집하고 있어.”
“진짜? 똥을 사서 어디다 쓰려고?”
하리가 놀란 눈을 하며 묻는다.
“대변 미생물 이식술이라고 건강한 사람들의 대변에서 유익한 미생물을 추출해 환자의 장 속에 이식하는 거지. 실제로 효과가 있대. 의학계에선 장 내 유익 미생물을 이식하는 획기적인 똥 치료를 암, 당뇨와 같은 질병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어. 엔테로 코커스가 풍부한 젊은 미생물 군집인 마이크로바이옴을 역노화 연구의 열쇠로 보고 치매, 노화 등의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 중이야.”
“그래서 마추가 길가에 널브러진 똥을 맛보고 싶어 하는 건가?”
하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옛날엔 강아지들이 똥을 먹는다고 똥개라고도 했었지. 카레맛 똥 같은 맛있는 똥은 아니더라도 유익한 똥이었던 걸까. 똥은 역시 좋은 것인지도.”
“엄마, 이것 좀 떼 줘.”
똥이 유익해도 맨손으로 만지기는 어렵다.
“그냥 샤워해.”
하리가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 사로가 물었다.
“똥맛 카레 하고 카레맛 똥 하고 있으면 뭐 먹을 거야?”
배속 난자 상태였을 때부터 ‘똥’ 얘기를 유심히 들은 것이 분명한 사로도 ‘똥’에 끌림이 있는지 한동안 나만 보면 이 질문을 던졌는데 다 안다고 착각하는 나는 똥맛 카레와 카레맛 똥을 먹어보지 않아도 어떤 맛인지 알 것 같았기에 둘 다 싫다고 방어했었으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꼭 둘 중에 하나 골라 보라고 하는 터라-사로의 끈질긴 요구에 할 수 없이 고르고야 말았다.
“응, 똥맛 카레.”(똥맛 카레를 좋아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자 사로가 눈썹을 한껏 추켜올리며 깜짝 놀라더니 곧 질색하는 눈빛을 보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똥 맛인데?”
“어쩌라고. 고르라며.”
“그래도 똥 맛인데?”
“그래도 카레잖아. 그럼 너는?”
“나는 카레맛 똥.”
“엥? 똥인데?”
“그래도 카레맛이잖아.”
당연하다는 사로의 말에 한편으론 설득된다. 음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맛인가.
“고마워.”
샤워를 마친 하리가 사로에게 고맙다고 한다.
“사로가 머리에 붙은 벌레인지, 새똥인지를 치워주었어.”
“맨손으로?”
“뭐 어때. 씻었어.”
사로가 어깨를 으쓱한다. 똥을 보고도 덤덤한 건 하군을 똑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제 몸 더러워지는 것쯤 상관하지 않는 것.
“아깐 고마웠어.”
하리가 감동했는지 재차 고맙다고 한다.
“뭘. 헤헷.”
오랜만에 남매가 무척 성숙한 말투와 고급스러운 애티튜드를 장착하고 대화 같은 대화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똥 덕분에 아름다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