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언어
십수 년 전 필자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제가 사물이나 사람을 보는 것은 마치 깨진 거울 조각에 비치는 상을 보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키폰 전화를 걸때도 숫자를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는 안면 인식 장애를 겪고 있었다.
안면 인식 장애는 안면실인증이라고도 하며, 말 그대로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이나 장애를 말한다.
이 장애를 겪는 이들은 앞서 소개한 젊은이처럼 얼굴뿐만 아니라 장소나 사물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안타깝게도 이 장애는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안면 인식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얼굴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마치 모국어를 듣고 말하는 것처럼 쉽게 느껴진다. 그런데 안면 인식 능력은 누구나 가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인구의 약 2%가 안면 인식 장애를 겪는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그리고 안면 인식 장애는 아니지만, 얼굴을 구분하는 혹은 기억하는 능력이 사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인지 능력 발달의 차이 때문이다. 구분 능력이나 기억 능력은 모두 인지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어른의 안면 인식 능력이 아이보다 더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인지 능력 발달의 결과로 생겨난 차이이다. 치매 증상이 오기 전에 안면 인식 능력이 떨어지는데 그 이유 역시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즉 외부 세계의 대상인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과 내면의 기억 능력은 모두 인지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글을 읽다 보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인지와 인식은 어뗳게 다를까?
인식은 인지보다 더 크고 넓은 그리고 복잡한 의미로 사용된다.
비유를 들자면 인지를 레고 부품이라 한다면, 인식은 레고 부품으로 만들어진 집과 같은 더 큰 대상체라 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안면 인식 장애와 안면 인식 능력에 관해 좀 더 살펴보자.
안면 인식 장애를 겪는 이들은 얼굴의 각 부위는 인지하지만 이를 얼굴 전체로 인식하지 못한다.
즉 눈, 코, 귀, 입, 볼 등의 개별적 부위는 인지할 수 있지만 이를 얼굴 전체로 모아서 인식할 수는 없다.
그 결과 얼굴 전체를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곧 안면 인식 능력이 얼굴을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안면 인식 능력이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상대의 얼굴에 변화가 생기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당연히 다른 사람의 얼굴로 느낄 것이다.
안면 인식 능력은 얼굴 각 부위의 특징들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이를 묶어서 전체적으로 인지하고 기억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안면 인식 능력은 얼굴을 찡그리거나 노화로 인해 피부가 변해도 혹은 상처가 생겨도 동일 인물의 얼굴임을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처럼 안면 인식 능력은 단순한 인지가 아닌 복합적인 고도의 인식 능력이다.
그런데 안면 인식 능력과 비슷한 맥락의 중요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면 인식 능력이다.
(메타인지도 내면 인식 능력의 부분이다.)
내면 인식 능력은 내면의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내면 인식 능력은 안면 인식 능력과 마찬가지로 내면을 세밀하게 인지하고 이해하며 그리고 인식하는 능력이다. 즉 내면 인식 능력은 안면 인식 능력처럼 복합적인 고도의 인식 능력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내면 인식 능력이 마음의 상태를 단지 알아차리는 수준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내면 인식 능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내면 관찰이다.
내면 관찰을 통해 단계적 인지 발달 과정을 거쳐 복합적 인지 능력으로 발달할 때 내면 인식 능력은 생겨난다. 그렇기 위해서는 내면을 이루는 기억과 마음 그리고 언어를 각각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또한, 기억과 마음 그리고 언어의 복합적 작용인 생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마음의 반응과 작용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다양한 감정과 욕구, 가치, 양심을 구분하고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면 관찰 과정이 가치 인지 발달로 이어지면 그 결과는 내면 인식 능력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