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언어
기억이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기억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기억이 없다면 단지 현재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만 존재할 뿐이다.
기억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2001년 국내에 개봉된 메멘토(Memento)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기 기억상실증을 겪는 전직 보험수사관이다.
그는 아내의 살인범을 잡기 위해 수사하지만, 그는 단지 10분 만을 기억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내용을 쪽지나 자신의 몸에 기록한다.
물론 그의 장기 기억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에 말도 하고 차도 운전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영화의 결말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이 영화를 통해 기억이 없다면 얼마나 끔찍할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기억만큼 중요한 것이 언어이다.
물론 언어도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내용물이자 정신적 도구이다.
만약 인간에게 언어가 없다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인지가 고도로 발달하고, 그 결과 체계화된 기억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인 말을 사용하여 타인과 소통하고, 언어인 글을 통해 수천 년의 유산인 지식을 배운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 능력은 사실상 비언어 능력의 특수 형태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그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우리는 모국어인 한국어를 일상에서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고 쉽게 사용한다.
물론 전문 지식 분야의 용어는 예외이지만.
한편 외국어인 영어, 중국어 혹은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한국인은 매우 드물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알려면 기억 속 언어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내용물은 언어를 기준으로 나누면 크게 두 종류이다.
즉 언어적 기억 정보(이하 언어적 정보)와 비언어적 기억 정보(이하 비언어적 정보)이다.
말과 글은 대표적인 언어적 정보이며 우리 기억 속에 존재한다.
말은 소리로 그리고 글은 모양으로 뇌에 저장된다.
그리고 말과 글이 언어의 역할을 하려면 말과 글에 연결되는 비언어적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말과 글은 소리와 모양에 불과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듣거나 혹은 글을 읽을 때
최종적으로 기억 속 비언어적 정보를 인지한다.
만약 우리의 기억 속에 비언어적 정보가 없거나 부족하면 말과 글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모국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이 비언어적 정보를 최종적으로 인지한다는 사실을 거의 자각하지 못한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언어적 정보와 비언어적 정보가 연결되기 때문에 마치 언어적 정보 그 자체가 의미인 것처럼 느끼고 착각하게 된다.
이는 자신이 모르는 언어의 외국어 방송을 들어보면 쉽게 자각할 수 있다.
즉 말소리는 어느 정도 들리지만, 말의 의미는 전혀 알 수 없다.
여기서 말소리는 언어적 정보이지만 말의 의미는 비언어적 정보이다.
지금까지 내용을 이해한다면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사람이 극히 드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외국어 학습 과정에서 외국어인 언어적 정보가 기억 속 비언어적 정보와 직접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외국어 학습 과정에서 외국어인 언어적 정보를 모국어인 언어적 정보를 거쳐 비언어적 정보로 연결하는 훈련을 했다. 그렇다 보니 외국어인 말과 글을 듣고 봐도 모국어처럼 바로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외국어 정보와 기억 속 비언어적 정보를 바로 연결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한편 비언어적 정보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이는 아기의 언어 학습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아기는 언어를 배우기 전에 먼저 비언어적 정보를 기억 속에 저장한다.
아기는 보고 듣고 물고 빨고 하면서 인지된 감각 정보를 기억 속에 비언어적 정보의 형태로 가득 채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비언어적 정보는 기억 속에 무작정 저장되는 게 아니다.
아기는 나름대로 대상에 관한 가치나 의미를 인지하거나 자신의 느낌을 기억 속에 저장한다.
물론 이 가치나 의미 혹은 자신의 느낌은 비언어적 기억으로 저장된다.
사실 이점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왜냐하면, 우리 기억 속의 비언어적 정보를 구성하는 요소가 감각 정보 이외에 가치와 의미
그리고 느낌 정보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비언어적 정보는
감각 정보 이외의 가치와 의미 정보(이하 가치 정보), 느낌 정보로 구성된다.
지금까지 내용을 이해한다면 언어 능력이 왜 비언어 능력의 특수 형태라고 표현했는지를 짐작할 것이다.
언어 능력은 기억 속 언어적 정보와 비언어적 정보를 사용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언어적 정보는 소리와 모양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특수한 비언어 정보로 볼 수 있다.
이 특수한 비언어 정보가 언어 정보가 되려면 비언어적 정보와 연결되어야 한다.
따라서 언어 능력을 비언어 능력의 특수 형태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의식 발달 수준은 사용하는 언어에서 드러난다.
인지가 발달하는 만큼 언어 사용은 사려 깊고 세련되어진다.
인간의 의식 발달이 계속된다면 비언어적 정보를 직접 주고받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것이 영화나 동화에서 나오는 텔레파시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