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는 순간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에 실리어
주변의 사물이 지나가는 속도에 감탄하면서
그렇게 시간 속을 살아내었다.
어제는 9월의 달력을 뜯어내며
스스로 놀라고 말았을 정도로.
나이가 드니 하루 하루 시간이 쌓여 간다기 보다
하루라는 시간이 쏙쏙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
뜨거운 태양 아래 익어가는 시간들
머리까지 타지 않을까 염려되었던...
하지만 이제 매서운 추위를 준비 해야 할 시간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가 잎을 버리듯이
나도 그만큼 버려야 할 것이다.
겨울 지나고 동백꽃을 보러 선운사엘 들렀었다.
동백꽃은 추위를 이기고 한순간 화려하게 피어나고는
여타의 꽃들처럼 한 잎,
두 잎 천천히 시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놀란 아이 눈 꿈뻑하듯 그렇게
꽃송이 통째로 후두둑 떨어져 버린다.
눈속에 피같이 붉게 피어날 때처럼
퇴장할 때마저 강렬하게 빛나는 것이다.
내 마음속 미련을, 욕심을 버릴 때도
저 꽃송이처럼 한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욕심에 시들어 가지 않도록.
<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