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 2 - 신영복 선생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돌베개, 2004.12)
맨 처음 읽은 신영복 교수의 저서는
20대에 읽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사회인으로써 해야 할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갈등이 극에 이르렀을 무렵 읽게 된
책이었다.
현실을 감옥이라고 생각하던 나의 어리석음을, 그는 삶을 향한 열정과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깨우쳐주었던 것 같다.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여름이 낫다고들 한다.
교도소는 겨울이 더 살기 힘들지만 차라리 겨울을 택한다.
왜냐하면 여름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까운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가는 겨울과는 전혀 다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게 만들고,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따뜻한 시선과 차가운 냉소는 바늘 끝만한 차이로도 쉽게 뒤바뀌어 버린다.
그것이 인간의 나약함이기도 하고, 인간의 위대함이기도 하다.
신영복 교수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이 책은 동양 고전의 그윽한 향기에 빠지는 기회가 되었다.
고전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현대의 대중문화에선 느낄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지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어 가는가...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된다.
얄팍하고 통속적 논리들로는 이길 수 없는 묵직함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날마다 한숨과 탄식이 절로 나온다.
현대의 사회란 그런 것이 아닐까,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잊기 위해,
또는 다른 길을 찾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듯하다.
정신없이 남을 밀쳐가며, 감옥에서의 여름날처럼
옆 사람을 증오하며 불안함과 소외감으로 함께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문학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신영복 교수가 지적하는 점은 속이 시원할 정도다.
<오늘의 현대시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지요. (중략)
그 감수성이 주로 도시 정서에 국한되어 있는 협소한 것이라는 것도 문제이지요.
시인은 마땅히 당대 감수성의 절정에 도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 세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면서 두보의 이야기와 당대의 모든 삶이 고스란히 담긴 시경을 소개한다.
시경은 단순히 음풍명월의 시 세계가 아니요, 삶과 정서의 공감성에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시경의 구절구절을 해석하며 그 진정성을 통해 우리의 삶과 정서를
유리시켜 놓는 허위의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정직한 삶, 문학의 진정성은 그곳으로부터 기초해야 하는 것 같다.
이 저서는 공자, 노자 ,장자, 순자, 묵자, 사마자
또, 유가, 도가, 묵가, 법가로 이어지는 사상을
이해할 수 있어서 꽤 깊이 있어진 느낌도 들고
여전히 깊이는 모르고 겉만 본 것처럼
지식인으로써의 허영심만 혼자 채운 것이 아닌가.. 슬며시 경계심도 든다.
주역에 대하여
역술의 책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실상은 변화와 관계론이 주요한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가 개체 단위의 관계론 이라면 응은 상위의 관계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지요,
실패한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이지요 >
그리고 주역의 마지막 꽤가
미완성 괘라는 사실이 알려주는 놀라운 사실,
여기서 마음에 가장 와 닿은 것은 도로와 길의 마음이다.
오직 목표를 향해 최고 속도로 달려가는 것이 목표가 된 도로에서 내려와
함께 걷고, 자연으로 열려 있으며, 굽이진 모퉁이 마다 자기의 역사를 남길 수 있는
길은 길 자체로도 충분한, 그런 인생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막다른 골목인 것 같아서 절망 하지만, 알고 보면 그곳은 길모퉁이였다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꽃들이 활짝 피어 날 반기고 있을 것이라고..
한 가지 더 유익했던 것은 노자의 재발견이다.
그동안 노자에 대해서는
공자와 철학적 반대점의 입장으로써만 이해하였는데
실은 노자의 무위자연은 자연 속에서 은둔한다는 의미가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이나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관한 것이며,
하나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말은
모든 것을 무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상대주의적인 관점으로써
다른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고 그것을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사회에서도 수용하기 쉽지 않은 지극히 자유로운 사상이지 않은가.
노자의 이상국가론을 보며 더욱 놀랍다.
작은 국가, 반전 평화, 삶의 단순화...
불현듯 조화로운 삶을 쓴 스코트 니어링이나,
현재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서양 히피들의 삶이 떠오른다.
신영복 교수가 이야기 했듯이 노자의 사상이 너무 혁신적이어서
당시에 배척 받았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노자의 사상은 내가 추구하는 것들과 비슷하여 많은 공감이 간다.
그리고 , 마치 현대의 목사, 민중 운동가 같은 묵자의 철학도 빼놓을 수 없다.
전쟁의 폐단과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악을 나타낸
비공의 논리와 반전 평화론.
겸애-서로 사랑하라, 애인약애기신-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성격의 논리와 너무도 같은 이 말 때문에 난 깜짝 놀랐다.
아기 예수에게 찾아온 동방박사가
실은 묵가라는 설도 상당히 신빙성 있어 보인다.
묵가는 방법론 뿐 아니라 실천에도 앞장선 사람이어서
반전논리와 방책으로 송나라가 침략당하는 것을 막아내기도 했고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묵가라는 실천적 연대를 만들어냈다.
현대의 민중 운동가라고 할 수 있겠다.
왠지 예전에 유덕화가 나왔던 중국영화 <묵 공>이 생각난다.
묵가에서 파견한 단 한사람, 묵 공이라 불리는 남자가 전쟁을 막아낸다는 이야기.
아하, 허무맹랑한 환타지가 아닌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되나니
이후로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고전을 읽고 배우는 기쁨이라...
이제 내가 보는 것은, 그리고 느끼는 것은 결코 예전 같지만은 않을 것같다.
이 책은 그런 가르침을 전해준 인상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