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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Lee Oct 06. 2015

버클리 풍의 사랑 노래

일상의 소소한 애정 - 황동규


행복은 커다란 것에 있지 않다.

일상의 작고 소소한 것에 애정을 담아 내는 것에 있

황동규 시인의 이 시들은 그 느낌을 잘 살려준다.

따뜻하고, 보드럽고, 잘게 부서지는 햇살같은.

내가 소망하는 것은 부유함과 명예도 아닌

이런 작은 일상의 애정들이다.

노천명의 시에서 처럼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어느 산골에 있어도

머리위로 욕심껏 하늘을 들여놓고

내 좋은 사람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면

그것으로 너무도 행복한.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 황동규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것은

꽃꽃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묽은 사과 두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래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 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이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것,

이국(異國) 햋빛 속에서 겁없이

 

 

 

 

즐거운 편지

                             -  황동규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오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https://youtu.be/f0A2hCxWopE?list=PL29D885FBD98E810A 

Beethoven: Quartet in G Major, Op.18 No.2 - 2. Adagio cantabile                                                                                                                                                                                                                                                                                                                                                                                                                                                                                                                                                              

 

또, 황동규 시인의 글에선 음악이 들려온다.

음악을 사랑했던 시인이며

작고 소소한 것들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이 시의 부제는 "강원도 산골에서,마종기에게"이다.

  

  

  

소리의 혼

  

                                                         황동규

  

서양물 설먹은 자답게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를

차에 모시고 다니며 듣는다.

소리의 혼이 베토벤 귀의 가로등을 모두 끄고

자신의 내장하고만 대화를 나누게 할 때,

내가 그 얘기를 엿들고 있을 때,

소리의 혼이 언뜻 봐줘

급히 옆으로 파고드는 차를

아슬아슬 피하게 하는구나.

  

오늘은 음악과 소음 모두와 헤어져 강원도 산골에 왔다.

베토벤도 브람스도 카세트에 잠재우고 있다.

마당이 살아있다.

눈 위에 눈 솔솔 뿌리는 바람 소리,

담장에 눈 쏠리는 소리,

전나무 가지에 눈송이들이 쌓여

기다리다 기다리다 눈 꼭 감고 뛰어내리는 소리.

흰눈 흠뻑 쓰고 있더 나무가

끝내 자해하는 따악 소리.

방에 전기가 나갔다.

전선이 땅 위에 쓰러져 내는 신음.

  

마루문을 열면

하늘이 인간의 크기에 맞게 낮춰져 있다.

  

두 귀에 모두 마루에 내어놓고

지구가 하루쯤 궤도 벗어나 멋대로 놀다 오길 기다린다.

가만, 지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의 목소리!

                                                                         <1991년 시집 "몰운대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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