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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Lee Oct 24. 2015

첫 커피의 추억

그리움의 맛



커피에 대한 내 첫 번째 추억은 꽤 강렬한 후각으로 기억된다.

고급의 원두커피가 아닌 커피 한 스푼에 프림 셋 설탕 둘을 넣은 다방 커피의 그 향기다.

아마도 그건 내가 꼬꼬마 시절 아빠가 친구들을 만나곤 하던

대학로의 학림 다방에서 시작된 것 같다.


아빠는 다방 커피, 나는 계란 프라이

-그 당시엔 다방에서 쌍화탕과 계란 프라이도 팔었었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하고 향긋한... 꼬맹이가 이전엔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냄새,

그 강렬한 커피 향기는,

어릴 적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항상 아빠로 남아있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아빠와의 몇 안 되는 소중한 추억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커피 향에 이끌려서 지금까지 줄곧 마셔대고 있는 나는

어쩌면 커피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사람에겐 커피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덴마크 코펜하겐 보건의과대학교 연구진과 허 리브 젠톱트 병원의 연구팀에 따르면

이른바 특정 사람들에겐 ‘커피 유전자’가 존재하며,

당뇨병이나 비만의 위험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다른 생활습관 요소들에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은 ‘커피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이들은 커피 유전자가 없는 사람들보다

커피를 좋아하고 더 마신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릴 때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난 믹스 커피를 좋아한다.

원두커피와는 다른  달짝지근하면서 쌉싸름한 냄새와 맛을 좋아하고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편리함과 서민적인 멋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는 고종 때부터  시작되어 제법 오래되었지만

완전한 국내 인스턴트커피는 1970년 미국 제너럴 푸드사와 커피 제조 기술도입을 하고,

동서식품이 맥스웰하우스 레귤라 그라인드 커피를 발매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게 70년대 다방 커피의 기본이 되었던 그 인스턴트커피인 것이다.

동서식품은 1976년에 세계 최초로 커피 믹스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커피를 대중화하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요즘의 커피 믹스와는 다른 네모난,

안의 모든 내용물이 섞여 있는 이 커피 믹스가

내가 어릴 적 기억하는 추억의 커피 믹스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커피 소비량이지만

인스턴트커피 소비량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 안에서도 47%에 가까운 소비가 이 일회용 커피믹스다.

커피 믹스는 커피 전문점엘 가지 않고 그라인딩이나 드립을 하지 않고도

점심 먹고 사무실에서, 식당에서, 집에서 또는 자판기 길다방에서

가장 손쉽고 빠르게 마실 수 있는 커피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과 항상 호환이 가능한.


외국을 정처 없이 돌아다닐 때 향수병이 걸릴 만하면

아껴 두었다 꺼내먹던 두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고추장과 커피 믹스였다.

한국인으로 자라면서 길들여진 고향의 맛...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쌀쌀한 유럽의 거리에서 , 허름한 숙소의 부엌에서

배낭에 달린 스탠 컵으로 마시는 뜨거운 믹스 커피 한 잔이 그렇게 소중했었다.


지금은 수십 가지의 원두를 고르고 또  그중 마음에 드는 원두를 골라

까다로운 로스팅의 과정을 거친 커피의 원두를 핸드밀로 갈고

융 드립퍼와 칼리타 동 포트를 쓰는 사치를 누리지만

문득문득 커피 믹스의 그 편리함과 달콤 쌉싸름한 향기가 못 견디게 고플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이 커피믹스라는 게  이미 기호품의 영역을 넘어선

추억이 담긴 그리움의 맛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한장의 달력을 뜯어 내고..

뚜벅뚜벅 시간의 발소리가 들리는 밤.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정신의 허기를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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