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삶이 영화 같기를 바랐다. 주인공이 되어 2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속, 울고 웃고를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삶 말이다.
시소를 타는 듯한 감정으로 삶을 사는 게 즐거운 삶이 아닐까 하던 때도 있었다. 깊은 고뇌 없이 했던 생각이지만, 그게 정말 맞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때도 있지 않았나 싶다. 무의식이라고 해야 하려나.
자극을 찾고는 했다. 빛만 보이면 달려드는 날벌레처럼 들이닥치는 대로 모든 걸 받아들이려고 했다. 지금도 큰 변화는 없기 하지만, 인생의 모토가 새로움이었다. 당장 물을 왕창 들이마실지언정, 숨을 쉬고 싶어 하는 물속의 잠수부 같았다. 한껏 물을 들이마시면 그제서야 후회하는. 가끔 무진장 심심하다거나, 무진장 공허할 때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지금 나의 삶은 영화의 어디쯤 와있을까. 영화의 루즈한 부분에 도달해있는 건가 싶다가도 영화는 2시간인데 … 하며 말을 줄인다. 120분이라는 순식간보다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길다.
기나긴 삶을 온몸에 두른 채로 영화를 따라 해보고자 했으니, 콩 심은 데서 팥 나와라 뚝딱하고 있던 격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으려고 해봤다. 단순한 깨달음과 뉘우침은 때로는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었건만, 이 경우는 아닌가 싶더라. 그래서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먹는지는 어떤 밥을 먹느냐 만큼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먹는 것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 실제로 그걸로 몸을 구성하긴 할 텐데 - 말도 있으니.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매운 걸 먹고서는 하루만 먹었는데 괜찮지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다음 날에는 속이 뒤집어지겠지. 먹는 것이 미치는 영향이 어릴 때보다 나이가 들수록 더 크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생각과 마음도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얼어붙은 겨울바람에 이불 속으로 들어간 아침녘의 나처럼 생각과 마음도 움직이기를 점점 더 싫어하나 보다.
우리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세상은 영화라고 볼 수야 있겠지만. 단숨에 보여지기에는 우리 삶은 루즈하기도 하다. 러닝타임이 꽤나 긴 그런 영화? 이렇게나 긴 영화는 없긴 하니까.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겠다는 생각은 가장 먼저 인생과 영화가 다름을 느끼게 해주는 마음가짐이라고 느낀다.
빈 허허벌판. 그게 인생이다. 허허벌판을 열심히 달리며 둘러본다고 해서, 뭔가가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게 허허벌판의 의미니까. 그래서 사과 나무라도 심어야 하나보다. 빨간 사과가 유일한 의미가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