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맛은 경험에 입각한다. 이 사실을 인생의 반쯤을 지나온 지금 더욱더 생생하게 느낀다. 음식에 관해 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던 나는 곱창을 25살 그러니까 첫 회사의 회식 때 생애 처음 먹어봤다. 또한 내가 가지의 참맛을 처음으로 느낀 것도 서대문의 양꼬치 집(이것도 역시 회식이었다)의 가지튀김이었다.
‘세상에 이런 반전의 음식이 있다니!’
놀랄 정도로 바삭한 겉과 달리 한입 물었을 때 입안에서 사르르 퍼지는 육고기와 다른 육즙, 보드랍고 담백한 가지의 과육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맛과 식감이었다.
식욕이 도로 쏙 들어갈 것 같은 보라색의 오묘한 겉모습과 다르게 그런 반전의 맛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생각해 보니 가지는 어렸을 적 집에서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는 음식이기도 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엄마, 엄마는 가지 안 먹어? 우리 집엔 가지로 만든 음식이 없었던 것 같아.”라고 궁금하여 불현듯 물어보았을 때 돌아온 대답은 엄마 역시도 가지의 색깔이 싫다고 했다. 그렇게 음식의 취향도 대물림될 수 있구나라고 당연하지만, 그간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발견이었다.
결혼 후 어느 날씨 좋던 휴일, 남편이 서산에 기러기 백숙을 먹으러 가잔다. 그 말을 듣자마자 기러기 고기라는 것이 있구나, 그것을 먹기도 하는구나. 도대체 어느 지방의 음식인 거지.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엔 하늘을 유유히 배회하는 하얗고 길쭉한 기러기의 모습이 둥둥 떠다닌다. 그러니까, 새를 먹자고? 난 못 먹겠다. 닭도 새인데, 닭은 먹으면서 기러기는 못 먹을 이유는 뭐야?라는 논리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지만 난 닭은 먹어도 기러기는 절대 못 먹겠는걸. 음식의 취향으로도 다툼했던 우리는 풋풋하고 날것의 신혼이었다.
나는 어떤 음식은 정말 못 먹겠어, 난 그 냄새만큼은 너무 싫더라. 하는 음식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어릴 적 유원지에 가면 고소한 냄새를 따라 호기심에 이끌려 간 곳 그 리어카에 팔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갈색의 줄무늬를 가진 곤충 그 이름은 번데기.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먹지 못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그런 이야기를 사람들과 앉아 너도나도 꺼내기 시작하면 냇가에서 개구리를 잡아 다리를 구워 먹은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만의 가장 특이한 음식 경험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누가 최악의 음식을 참고 먹었나 과시하기도 한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의 경험은 그 음식을 ‘어떻게’ 처음 접했느냐, 인식했느냐, 무의식으로 받아들였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린 시절 한여름 시골의 냇가에서 동네 친구들과 시원하게 물놀이를 하다 잡은 개구리를 너무나도 배가 고파 구워 먹었더라면. 배고픈 욕구가 복잡한 생각을 억눌러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음식의 ‘처음 맛’은 인생 전반에 걸쳐 이어지고 대물림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다 반강제적으로 미각, 후각을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롭게 열어놓을 수 있는 때는 해외여행, 다른 나라의 음식을 여행지에서 현지의 공기와 함께 입 속에 넣을 때이다. 그럴 때 우리는 불필요하지만, 대단한 용기를 낸다.
요리를 업으로써 종사하고, 해외 체류 경험도 적지 않았던 나에게도 늘 어려웠던 것은 향신료였다. 향신료는 익숙함 뒤에 교묘하게 숨어 예상치 못한 펀치로 내 입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러던 내가 향신료의 매력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고 탐구하게 된 것은 도쿄에서 주재하고 있던 2년 차쯤 ‘스파이스 카레’를 알게 되었을 때였다.
카레에 진심인 일본, 내가 살았던 도쿄는 카레 씬의 한 갈래로 루(Roux : 유럽식 요리에서 밀가루와 버터를 가열하여 걸쭉하게 만드는 소스의 일종)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향신료를 배합하며 만드는 카레가 하나의 장르로 생겨나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인도 카레도 아닌 동남아 카레도 아닌 말 그대로 ‘향신료 카레’였다. 우리 어릴 적의 노란 오뚜기 카레거나 고동색의 일본식 카레는 아니었지만 익숙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향신료 그 자체를 드러낸 카레의 맛, 게다가 신기하게도 먹고 나니 속까지 편했다.
‘향신료에 대해, 그리고 맛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그 매직의 실체를 쫓아 공부하고 연구하며 향신료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
“인도보다, 튀르키예가 어때요?”라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무심결에 툭 던진 말에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줄이야. 향신료라면 인도라지만, 인도 로컬은 현지인 없이는 다니기 쉽지 않고 특히 여자라면 치안도 좋지 않다고. 튀르키예라면 안전하고, 무엇보다 향신료 시장이 대단하니 가보면 너무나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이자 달콤한 속삭임에 그날로 여행을 충동구매해 버렸다.
11월의 이스탄불은 선명한 가을 햇살을 받아 도시 전체가 반짝이고 있었다. 흑해, 마르마라 해, 지중해 세 바다를 끼고, 보스포루스 해협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시아와 유럽이 공존하는 도시 이스탄불. 지형적, 지리적인 특징만으로도 그간 주변 국가들이 이 도시를 얼마나 탐냈을지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이 조용히 내 귀에 속삭이고 있었다. 때때로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는 이슬람 모스크의 기도 알림인 아잔(Azan) 소리는 이 도시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는 듯 고요하면서도 잔잔하게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여행지의 낯선 긴장감이 스르르 풀어지며 이스탄불에서의 ‘처음 맛’을 찾으러 나선다.
튀르키예의 맛이라고 하면 이태원에서 봤던 세로의 긴 꼬챙이에 돌돌 말린 양고기를 돌려가며 그릴에 굽고 있는 케밥이 떠오른다. 주문이 들어오면 톱니 모양의 얇고 긴 칼로 바싹하게 잘 구워진 겉면을 쓱쓱 썰어 빵 혹은 밀전병에 끼워 주던. 그리고 길거리에서 각종 묘기를 선보이며 아이들을 놀리다가 울음이 터지기 직전엔 손에는 늘 쥐여줬던 터키 아이스크림.
여행 내내 케밥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은 한국인의 쌀밥(주식) 같은 것, 어떻게 조리하여 내어놓는지에 따라 케밥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케밥은 튀르키예어로 ‘구이’라는 뜻으로 불에 구우면 무조건 케밥이라고 한다. 얇은 피타빵에 둘둘 말아 먹는 도네르 케밥, 버터가 잔뜩 부어진 이스켄데르 케밥, 다진 양고기를 손으로 잘 쥐어 미트볼 같은 모양의 쾨프테, 꼬치에 끼워 그릴에 구워낸 시시케밥.
신선한 어린 양고기를 파프리카 파우더, 올스파이스, 큐민, 오레가노 등의 향신료로 양념하여 맛을 낸다. 큐민은 한국인에겐 쯔란이라고도 알려진 양꼬치 집에 가면 테이블에 항상 놓여있는 얇고 길쭉한 씨앗 모양의 향신료이다. 그 향신료를 곱게 갈아 낸 큐민 파우더는 카레의 가장 주요한 맛을 내는 향신료이자, 튀르키예 음식에도 빠질 수 없는 향신료이다.
고추의 쌉싸름한 맛과 향이 나는 파프리카 파우더로 맛을 내고, 오레가노 허브(Herb)는 양고기에 남아있는 특유의 잡내를 없애주어 식욕을 돋운다.
우리의 식당에 가면 테이블마다 고춧가루, 간장, 양념간장이 놓여있듯 튀르키예 식당의 테이블에는 수막, 오레가노가 항상 놓여있다. 자주색 빛깔의 수막 향신료는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아 실물은 처음 보았는데, 언뜻 보면 고춧가루와 헷갈리기 십상이다. 베리 향이 나기도 하고 새콤하고 상큼하기도 한 수막은 튀르키예 전통 향신료이다. 샐러드는 물론이고 생양파 위에도 뿌려 먹고, 고기에도 뿌려 먹는 만능 향신료였다. 각각의 양념을 접시에 조금씩 덜어 찍어 먹어도 보고, 고기에 코팅하듯 전부 묻혀보기도 해보고 무엇이 가장 잘 어울릴까 내 입에 맞을까 나만의 방법을 찾아본다.
튀르키예 음식의 향신료는 대체로 재료 본연의 개성을 억누르지 않고 부드럽게 사용하는 인상을 받았다. 가령 오이, 토마토, 양파 샐러드에 올리브 오일, 그리고 수막이 뿌려져 있는 식이랄까. 초르바라는 튀르키예식 수프에서 병아리콩과 토마토 베이스 육수에 오레가노 정도만 살짝 뿌려져 있는 정도랄까.
향신료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즉시 떠올리는 것 중의 하나가 고수이다. 고수는 향신채의 일종, 이파리인 고수는 정확히 향신료(스파이스)라고 하긴 힘들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채소의 맛에서는 벗어나는 향이다. 흔히 말하는 화장품 맛. 사실 나 또한 고수의 맛에 익숙한 편은 아니다. 생각보다 고수는 우리 주변에 있다. 호가든에도 고수(코리앤더: 고수 씨앗)가 들어간다.
고수를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혀놓고 너는 매력이 없다고 운운했던 나의 무지함을 자각했던 때가 있다. 멕시칸 타코는 아보카도, 토마토, 레몬 여기까지는 익숙한 재료이다. 거기에 잘게 다진 고수 한 줌 넣으면 반전의 맛과 향이 입안에서 퍼진다. 맛의 세계가 이렇게 확장될 수 있다고 고수 본연의 향은 절제된 채 맛의 하모니 속에 하나의 파트로 연주하고 있는 향신채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넣기 전, 넣고 난 후의 맛을 비교해 보라.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더 맛있어졌다고. 향신료 향 듬뿍이 커리, 매콤 새콤한 고추기름 소스에 얹어 먹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맛의 재료를 어디에 놓느냐, 어느 재료와 뒤섞느냐에 따라 비로소 그의 진면목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스탄불 시가지의 상점가, 관광지의 거리 곳곳에 향신료 가게가 블록마다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다. 서로 다른 개성을 뽐내는 향신료의 향들이 공기와 함께 잔잔히 사람들의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 향신료 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향신료를 만나러 간다.
구시가지 중심에 자리하며 1416년 개장한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 그랜드 바자르. 에미뇌뉘 항구 앞에 위치하여 향신료를 취급하는 가게가 굉장히 많이 모여있어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ar)라고도 불리는 1664년에 조성된 이집션 바자르. 술탄 아프메트 모스크 옆에 위치하여 아담하지만, 아기자기한 비잔틴 시대를 이어가는 아라스타 바자르(Arasta Bazaar).
6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향신료 시장들은 요즘 건물 못지않게 튼튼하고 견고해 보였다. 건물 입구에 MISIR CARSISI 1664라는 글자를 보지 못했더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담한 상점들이 칸칸으로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금, 보석, 엔틱한 골동품, 치즈 소시지 등의 식료품, 카펫 등 흡사 없는 게 없는 남대문 시장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상품이 구비되어 있었다.
시장 안 깊숙이 흘러나오는 매혹적인 향과 냄새는 사람들을 건물 안으로 빨려들게 했다. 4백 년 전의 오스만 시대로 초대하겠노라고 어서 오라는 듯 환영의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여행지의 시장을 좋아해서 여행할 때마다 이곳저곳의 시장을 방문한다. 이렇게 몇백 년의 역사와 낯선 향신료의 강렬한 향이 가득한 무역 시장의 거점에서 페르시아인, 아랍인, 비잔틴 로마인들이 걸었던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저 멀리 아시아 한국에서 온 향신료 상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샤프란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 향신료의 여왕인 샤프란은 1g에 350리라(현재 환율 기준 14,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도 어렵고, 수입되면 그 가격은 3~4배에 달하는 가격이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묘한 다홍빛깔, 물에 담그면 절대 예상할 수 없는 영롱하고 초롱초롱한 황금빛 노란색이 물감처럼 쏴아 퍼지는 샤프란. 한국에 수입되지 않아 책으로 보기만 했던 향신료를 맛보고, 냄새도 맡고 나를 ‘향신료를 보러 온 한국인’이라고도 소개하기도 했다. 가게의 직원들은 실크로드를 건너온 상인을 맞이하듯 튀르키예의 맛있는 허브차를 대접해 준다.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품질의 향신료를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며 한국에서는 어떠한 향신료가 유통되는지도 궁금해하기도 한다. 튀르키예산 각종 허브(장미, 세이지, 카모마일, 히비스커스 등)들과 거래되고 있는 향신료들의 어마어마한 종류들과 품질에 나도 모르게 기가 눌려 역시 여기는 향신료 로드의 종착지이구나 라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스만제국 시절 지금의 이스탄불에 세계 최초로 커피 하우스가 문을 열어 튀르키예는 커피뿐 아니라 차 문화가 발달했다. 차와 함께 즐기는 디저트도 자연스레 빠질 수 없게 되었는데 이색적인 디저트 중 하나는 카잔디비(kazandibi)다. 닭가슴살로 만든 푸딩이었는데 (여기까지만 들어도 속이 메슥거리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은 쉬이 잊혀 지지 않는 맛이었다. 운동 후 단백질 섭취로 카잔디비를 매일 먹을 수 있다면 더욱더 운동도 열심히 할 것이고 죄책감 없이 와구와구 먹어 버릴 거라고 라고 단백질 디저트 상품의 대중화를 상상하며 피식거리기도 했다. 실제로 서양식 푸딩 조리에서 달걀노른자를 사용하는 것처럼 고대 시대의 동물 단백질 조리법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음식에서 반전을 가져온 것도 있었다. 요거트 음료 ‘아이란’이었다. 튀르키예 음식에서 요거트를 빼놓으면 음식 문화를 얘기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요거트는 순수 튀르키예 단어의 영어식 발음이고, 튀르키예인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다. 아이란은 요거트에 물과 소금으로 맛을 낸 음료로, 보통 소, 양, 물소 우유 등을 섞어서 만든다고 한다. 튀르키예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술을 팔지 않는 식당이 많아 튀르키예 국민이 즐겨 마시는 음료이다. 가격도 35리라(당시 환율 기준 1,750원)로 40리라인 콜라보다 가격도 저렴했기에 식당에선 콜라보다 아이란, 물 대신 아이란을 마시고 있었다. 짭조름한 요거트라…. 생소하긴 하지만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 봐도 딱히 거슬릴 만한 것은 없었다. 우유같이 하얀데 멀겋기도 하고 거품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컵 위에 봉긋 올라와 있는 찬기 없는 미지근한 음료. 이게 아이란이구나. 호기롭게 한입 쭉 들이켰다.
‘으으으--- 짜다!!!’ 아는 맛인 것 같으면서도 머릿속이 뒤죽박죽 해지는 불편한 짠맛.
첫 한입에 더 이상 마실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왕 시킨 것이니 먹어보자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함께 주문한 케밥과 함께 천천히, 끝까지 마셨다. 마시고 나니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튀르키예의 어느 음식점에 가더라도 음료 코너 제일 윗줄엔 역시나 아이란이 있었다.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다시 한번 아이란을 주문해 보기로 했다. 같은 공간의 모든 사람은 아이란을 마시고 있었고 나는 그 공간의 이방인이고 싶지 않았다.
“코코레치 비르~ 타네, 아이란 비르~ 타네.”
(코코레치 1개, 아이란 1개요)라고 문법에는 맞지만 어색한 발음의 튀르키예어를 이질적인 어느 동양인이 구사하자, 가게 주인은 씨익- 웃으며 아이란을 냉장고에서 꺼내 테이블에 탁 놓는다. 나는 용기 내 시원한 아이란을 쭉 들이켜본다. 아, 짭조름한데 어제보단 낫네. 연달아 아이란을 쭉쭉 들이키니 짭조름한 맛은 없어지고 고소한 맛이 입에 맴돈다. 각종 향신료를 뿌려가며 구운 양곱창을 도마에 올려 찹찹 다지며 코코레치를 만들어 주고 있는 주방장을 향해 씩 웃는다. 맛있다는 눈빛을 듬뿍 담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그 장소를 추억할 만한 것은 음식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느꼈던 공기, 장소, 건물들, 사람들은 그곳이 유일하다. 현지에서 그 나라 사람들과 풍경, 공기와 냄새에 뒤엉켜 함께 먹은 맛은 대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내 집으로 돌아와 혹은 또 다른 타국에서 그때 그 음식을 먹었을 때 여행지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하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음식들은 대체로 찾아서 먹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우리 가족은 나폴리를 시작으로 로마, 피렌체, 파리를 거친 유럽 여행을 이 주일간 다녀왔다. 이스탄불을 경유하게 되어 이스탄불 공항 안의 라운지에서 나는 짜이, 남편은 터키쉬 커피를 마시며 8시간의 긴 여행의 피로 사이에서 잠깐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잠시나마 우리의 작은 여행지가 된 이스탄불에서 나는 나의 아이에게 “잠깐만 기다려 봐. 엄마가 뭐 좀 사 올게!”라며 들고 온 것은 아이란이었다. “이것 먹어봐. 튀르키예 국민 음료래, 아이란. 요거트 같은 거야~” 라며 건네주었다. 믿을만한, 신뢰하는 사람이 주는 음료는 처음 보는 그것이 무엇이든 받아들여 마시는 것이 순수한 아이의 본성일까. 나의 아이는 한입 쭉 들이키더니 눈을 번쩍 떴다. “엄마, 이거 짜!!!” 당황하는 모습으로 먹지 않는다며 다시 나에게 건네주는 아이에게 “엄마도 처음엔 그랬어. 근데 자꾸 생각나고, 두 번째 먹을 때부턴 좋아지더라. 참 신기해”라는 그 말에 아이는 다시 한번 입을 갖다 댄다. 그렇게 우리는 내 사람이 건네준 낯선 음식을 신뢰하고, 또 그렇게 맛의 바운더리를 넓힌다. 그리고 언젠가 떠올린다. 이스탄불에서 마셨던 아이란을. 이스탄불이 생각나면 아이란이 마시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한국에 가면 무가당 요거트에 소금 한 꼬집, 무첨가 탄산수를 쪼르르 따라서 살살 저어 쭉 들이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