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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브 Jun 13. 2024

가면을 쓴 여행자, 나의 페르소나를 찾아서

“엄마,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최근을 통틀어 지금이 가장 행복해보여!”


바로 몇달 전 나홀로 이스탄불에도 일주일 다녀왔지만, 사랑하는 가족인 아이, 남편과 떠 난 유럽여행. 지금 이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느꼈던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 었다.

해외와 인연이 깊으며 늘 분주하게 산다는 나의 사주. 해외생활은 남일같이 여겨졌던 어 린시절과는 달리 성인이 된 뒤로 두번의 타국생활을 했다. 그 사이 틈만 나면 다녔던 해 외여행을 포함하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낯이 두껍다고 해야 할지 외국인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는데 거리낌없이 적극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무난하게는 날씨 이야기(“오 늘 비온대!”, “이번주에 춥다더라~!”)지만 그보다 나의 주특기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먹은 맛있었던 음식, 주변의 새로 생겨 관심갖는 레스토랑, 어제 만들어 먹은 요 리 등을 이야기로 꺼내면 상대방도 ‘저 동양 여자는 이 나라에서 도대체 뭘 먹고 사나?’ 라는 호기심 어린 눈빛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궁금해한다. 그러곤 우리의 주제는 일상에 서 빠질 수 없는 먹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술 더 떠 이야기의 바통을 넘겨주 면 생각지도 못한 현지 꿀정보들이 술술 나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식이야기는 관계 의 긴장감을 한결 누그러뜨리는 언제나 즐거운 화제이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현지인 가면을 쓴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라는 모 마케팅은 내 마음을 투영한 것 인양 여행지에서의 옷차림, 먹는 것, 가서 하는 것은 여행자와 현지인 의 미묘한 경계선을 넘나든다. 가면을 쓰기위한 준비에 공부는 필수다.

그 중에서 아침식사야 말로 척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다. 어슬렁 일어나 호텔 조식이 아닌 현지인이 가는 식료품점, 까페에 들어가 아침인사를 하고, 아침 먹거리를 사서 나온 다. 유창한 언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해외에도 이민자들, 언어가 안되는 사람이 투 성이니까. 단지 관광으로 와서 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일상생활에 쓱 스며드는 것. 그 것이야 말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일지도 모른다.

파리에서의 아침은 숙소 앞의 브랑제리에서 ‘트라디시옹’을 샀다. 근처 슈퍼로 들어가 오렌지쥬스를 능숙하게 기계에서 짜서 담고, 우유, 잠봉, 프랑스제 버터, 사과 한개를 담는 다. “봉쥬르~” 하면 맞인사가 오는게 당연한 듯이 계산된 물건은 준비한 장바구니(에코 백)에 잘 넣어 자연스럽게 계산하고 나온다.

숙소에 돌아와 빵을 잘 잘라 얇게 자른 버터를 끼우고, 잠봉을 넣고, 에멘탈 치즈, 윗면 은 홀 머스터드를 살짝 발라 산미를 더해주고 한입 베어 물면 그 순간 나는 ‘파리지앵’이다.

뉴욕에서는 맨하튼을 걸으며 델리에 들어가 드립커피와 베이글을 포장된 종이봉투를 들 고 학교 또는 사무실에 앉아 아침을 보내는 ‘뉴요커’.


반면 도쿄에 살 당시에는 아침 ‘모닝그’ (モ〡ニング: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일본식으로 부르는 말)를 즐겼다. 이른 아침 담배냄새가 배어 그다지 청결해 보이지는 않는 킷사텐에 들어가 앙버터 토스트, 코히- 세트를 주문하고 창밖을 주시하는 일인 좌석에 앉아 핸드 폰 또는 문고본을 보며 시간을 음미하다가 나오는 것이다.

다년간의 해외생활에서 얻은 것은 여러가지 시도와 경험으로 찾은 내 안의 나다움이었 다. 한국에서는 관계와 시선에 주저하던 일도 가면을 쓴 채 소위 내가 말하는 ‘척하기’ 로 나를 무대에 세워놓고 시험해본다.

일본인이 되고 싶어서도 아니고, 프랑스인이 되고 싶어서도 아니다. 현실에서의 엄마, 아 내라는 역할, 직업 다 내려놓고 오롯이 낯선 공간과 문화속에서 마주하는 나의 페르소나 이다. 현실이라면 어쩌면 하지 않을, 내가 모르는 나를 꺼내어 새로움을 찾는다.


나에게 여행이란 나와 마주할 수 있는 무대이다. 무대를 그리며, 내면의 욕망을 찾기도 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찾기도 한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다지 눈에 띄진 않지 만 정성들인 하루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여행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 그리고 삶이 버거울 때도 여행을 떠 올릴 것이다. 새로운 연극무대를 연출하고 상상해 본다. 또 다른 나의 페르소나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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