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캐가 많다. 가끔 나의 본업이 뭔지, 부캐가 뭔지 헷갈릴 때도 있다. 요리사, 요기니(요가하는 사람을 말하는 말), 주부이자 엄마, 사업하는 프리랜서. 최근에 명확하게 추가된 하나가 더 있다. 러너.
달리기를 진지하게, 그냥 뛰는 것이 아닌 달리기라고 처음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당시 같은 회사의 다른 팀, 협업하던 IT 서비스 기획자이자 동갑내기 친구 J양과 메신저로 나눈 사적인 대화의 8할은 ‘러닝’ 이었다. 그 친구는 블로그 기획자로 자신의 러닝 일지와 러닝 경험을 꾸준히 기록하는 파워 블로거이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풀코스를 3번, 매달 하프코스를 꾸준히 뛰고 해외 풀 마라톤 원정도 2번이나 다녀온 대단한 여성이다.
그 친구의 러닝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웠고 그럼 나도 한번 뛰어나 볼까? 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준비 없이 10km를 함께 뛰었던 것이 나의 첫 마라톤이다.
나이키 위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하여 여의도 공원으로 들어오는 코스는 예나 지금이나 공식적으로 도로를 점거하여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한 최고의 코스이다.
처음 마라톤을 뛰었을 때의 나는 얕게 고인 웅덩이에 팔딱팔딱 뛰어 숨을 쉬려고 하는 금붕어 같았다. 얼굴은 새빨갛고, 얕은 숨은 헥헥거리며 깔딱거렸지만 뛰는 내내 흥분에 들떠 있었고 즐거웠다. 끊임없이 몸과 어깨를 들썩이며 건강함을 발산하던 나는 젊은 20대였다.
그 이후 한동안 달리기는 잊고 살았다. 때때로 친구J가 “윰~, 이번에 마라톤 같이 안 뛸래?” 라고 물어봐 주면 한 번씩 서울의 길거리로 나왔다. 마라톤이라는 이벤트 그 순간의 화려함이 끝나면 마라톤은 완주메달과 함께 장롱 속 옷걸이로 같이 걸렸다.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달리기는 코로나 시기를 기점으로 일상 속 하나의 행위로 자리를 잡아갔다. 거리두기로 인해 답답하고 밀폐되지 않은 개방된 공간에서 마스크 없이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달리기 뿐이었다. 달리는 것은 괴롭고 힘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유로움을 만끽할 길고 긴 순간이었다. 그렇게 달리기는 나의 일상의 루틴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고 마음이 답답할 때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더더욱 밖으로 나가서 달렸다.
내가 달리기는 즐거운 행위라고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신기하게도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였다. 그간 마라톤은 10키로를 뛰었던 나는 집 근처의 오고가는 도로에 걸린 “인천국제하프마라톤” 현수막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갑자기 뛰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인생 첫 하프마라톤 도전이 시작되었다.
러닝의 훈련기법 중 하나로 LSD라고 하는 것이 있다. Long Slow Distance의 약자로 자신이 오래 달릴 수 있는 가장 편안한 페이스로 힘들지 않도록 달리는 것이다. 이 훈련의 논리대로라면 다리의 근력과 체력이 받쳐주는 한 우리는 풀 마라톤을 완주 할 수 있다. 훈련에서 권하는 방법은 파트너와 같이 일정한 페이스에 맞춰 대화를 하며 달리기에 무리가 가지 않는 페이스라고 말한다. 주로 나는 유튜브나, 오디오북의 이야기를 들으며 뛴다. 이야기를 듣다가 혼자 피식 웃기도 한다. 그러면 옆에서 걷거나 뛰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기도 하지만.
달리는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달리기에 비유했다. 달리기가 힘들다,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잘 뛰고 싶어서, 혹은 숨을 가쁘게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은 걷기에 특화되어 있고 가능한한 무한정 반복할 수 있는 행위라고 한다면 그것보다 조금 빠른 페이스의 걷기가 달리기의 시작인 것이다. 우리가 하루에 10키로를 걸어 만보 이상을 채우는 것처럼 각자의 페이스에 맞춰 힘을 최대한 빼고 발을 템포에 맞춰 통통 튀겨 걷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달리기인 것이다.
달리기를 함으로써 완주가 중요하다는 것, 그 기록은 오로지 자신만의 성과 라는 것을 온전히 깨닫는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 얼마전에 마라톤 뛰었잖아!” 라고 말한다면 “대단해~! 완주했어?” 라고 끝까지 달렸다는 것, 포기 하지 않았다는 것에 박수를 쳐 준다.
21.0975키로. 풀 마라톤의 키로수의 절반인 하프마라톤을 완주 한다면 나의 달리기 최장 거리 또한 갱신된다. 나 같은 초보 러너들은 체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마라톤 뛰는 그 날까지 15키로 정도의 거리만 뛸 수 있다면 대회날은 완주할 수 있다고 주변의 경험자들이 어려워하지 말라며 조언을 해준다. 나머지 6키로는 어떻게든 뛰거나 걷거나 할 수 있으니 한번에 21키로를 준비하지 말고 러닝 마일리지(거리)를 서서히 늘려 15키로까지만 뛰어보라고.
집 주변 동네에서 15키로의 코스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횡단보도(신호등)가 없어야 하고, 보행자에 방해되지 않고 뛸 수 있는 도보 폭이 보장되어야 하고, 경사가 과하면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하니 코스의 지형도 중요하다. 15키로를 뛴다는 것은 최소 1시간 반이므로 중간에 수분보충도 해야 하고, 혹시 모를 부상도 대비해야 한다.
하프 마라톤의 연습을 준비하는 것도 대회 못지 않은 일이다. 평일에는 주 2-3회 가볍게 5키로, 주말을 이용하여 장거리인 10키로, 13키로를 달렸다. 회복도 중요하기에 피곤한 날에는 연습은 가볍게 건너 뛰기도 했다. 대회 2주 전에는 그간 뛰며 생각해 놨던 코스로15키로를 뛰었다. 그 코스는 집 주변 공원을 무려 3군데를 순회하는 코스 였다.
대회 당일이 되었다. 장시간 러닝 무리에 따를 무릎 부상에 대비해 테이핑을 꼼꼼히 하고, 허리춤에는 러닝벨트를 흔들리지 않게 조이고, 에너지 젤을 3개 구겨 넣었다. 출발 30분전, 7키로, 15키로마다 먹어야지 라고 긴장한 나 자신에게 주문 걸듯 되뇌었다.
하프 마라톤을 왜 뛰어야 했을까? 나는 그 당시 그토록 완주가 하고 싶었다. 나 자신만의 페이스로 그 페이스의 완급은 오로지 내가 조절하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완주하여 성공이라는 메달을 나 자신에게 걸어주는 것.
18키로 즈음 되었을 때, 그럼에도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고 페이스를 더 올릴 수 있는 여력이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활력이 생겼다. 그렇게 마지막 2키로는 페이스를 있는 힘껏 모두 끌어올려 피니시를 통과했고,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나는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러너가 되었다.
세상은 나의 페이스 따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도로 뛰어서도 안 될 때도 많다. 열심히 뛴다고 하더라도 성공이나 만족할 성과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많이 지쳐 있었다. 매일매일 과한 페이스로 뛰고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고,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외치는 주변으로부터.
인생에 있어서 발을 리듬에 맞춰 놓는 것 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법칙이 있다. 언제부터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묵묵히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절대 하찮고 소홀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캐가 많은 나는, 동시에 다른 페이스를 뛰고 있는 러너다. 다 잘하려고 애쓰다 보면 페이스를 잃고 무엇이 목적인지 잃어버린다. 완주하는 것. 그러니까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다는 것은 페이스를 LSD에서 서서히 올려 기분 좋게 달리다가 마지막 골인 지점이 보였을 때 남은 에너지를 마음껏 쏟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