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의 권한은 어디에서 오는가

소중한 당신의 충고를 들을 준비가 돼 있어요 드루와 드루와

by 고운

아부지는 내추럴본 울트라 잔소리쟁이다. 어릴 땐 젓가락질 못하면 젓가락으로 맞았고, 밥그릇에 밥알 한 톨도 남으면 안 됐고, 꼼꼼반듯 보스여서 글씨가 공책 칸을 삐져나가는 것도 용납 안 됐다. 자리 들고 나갈 때 정돈을 못해도, 어른께 인사를 드릴 때 수줍어해도, 반찬을 골라 먹어도, 대청소할 때 얌체같이 뺀질거려도 어김없이 벼락같은 잔소리가 돌아왔다. 선생님께 혼나거나 친구랑 다투고 못난 소리를 하면 '일단 내 편'을 들어주는 법이 없었다. 어디서나 말 곱게 하고 예의지키고 폐 끼치지 말고 상대 입장 생각해보라셨다. 제멋대로 유전자를 갖고도 꽤 평범한 교양생활인(?)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부지의 상당한 노력 덕분일 게다.

아부지 말씀을 들을 때 주로 내 표정

다 컸어도 예외란 없다. 몇 해 전, 당시 근무하던 학교 관리자의 일처리에 이런 저런 불만을 늘어놓던 날이었다. '넌 네가 아는 것만 잘났지 다른 쪽 입장은 생각 못하는 거다, 위로 올라가야 보이는 풍경이 있다, 너 하는 행동 하나하나 다 답답할 거다.' 아빠도 역시 교감이라 교감 편 드나 하는 반감과 서운함을 표하려던 내게 함께 건넨 말씀이, 그 이후의 나를 둘러싼 공기를 살짝 바꿔놓았다.


"어릴 때나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다 크면 아무도 너한테 지적 안 한다.
괜히 지적해서 미움 살 일 있냐, 그냥 멀어지면 그만이지.
네 단점을 개선하도록 도와줄 좋은 사람 잃는 건 너다.
누군가 네게 충고를 하면 그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들어라."


과연 그렇다. 나도 괜한 고나리질로 상대와 불편한 관계가 되기보다는, 단박에 혹은 서서히 상대와 멀어지는 방식을 택하는 게 편하다. 지적하면 상대의 감정이 상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오해 풀기와 상황개선을 위해 더 많은 말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건 번거로운 일이니까. 또 거리 두기는 꽤 편리하고 쉬우니까. 그런 불편과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잔소리를 하게 되는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족, 좋은 친구, 능력있는 후배, 곁에 두고 싶거나, 함께여서 행복하거나, 같이 걸어나가고 싶은 상대. 더 잘됐으면 좋겠다고 진정 바라는 상대.

둘째, 상대가 내 말을 곡해 않고 진심을 들어주리라는, 그리고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 친구가 내 말을 잘 들어준다는 건, 나도 믿을 만한 상대라는 방증이다. 아무 충고나 다 받아적고 새겨듣는 사람은 없다. 고나리질과 진심어린 조언을 구분하는 큰 기준은 ‘말하는 이’다. 적잖이 단단한 신뢰 없이는, 상대가 들어 즐겁지 않을 소리를 하긴 어렵다.




얼마 전에 내 태도에 대한 충고를 들었다. 당황스러웠다가, 약간은 부아도 치밀었다가 속도 상했다가. 그런데 그 감정 가만히 들여다보니, 속상한 이유는 그런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미 충분히 알고 경계했어야 할 문젠데 그동안 몰랐다는 점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미처 몰랐다기보단, 작은 신호들을 방치하고 무시해왔던 것에 가깝겠다.

이미 몇 사람은 내게 충고하는 대신 피하고 멀어졌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전에 했던 말과 태도를 곱씹어보며 이내 작아졌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내가 어쩔 수 없고, 앞으로 적극적으로 경계하고 바꿔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여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고 다짐한다고 내가 뿅 바뀌는 건 아니겠다. 그래도 아마 그 충고를 한 친구는 그 일로 내가 의기소침하거나 자신과 사이가 소원해지는 대신 내가 잘 받아들여 개선해주리라 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일 터라, 그 친구에게도 고마웠다.


언젠가부터 충고, 조언은 훈수, 참견, 고나리질과 가까운 단어가 되어 꼰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싫은 소리하는 사람=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문화처럼 소비된다. 하지만 충고는 신뢰다. 나와 너의 발전으로 함께 걷자는 도원결의다.


혼자 잘 크는 놈은 드물다. 쩌는 메타인지 능력으로 자신을 언제나 객관적으로 볼 자신이 없다면, 진심어린 충고를 가감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계속해서 지어나가자. 여러 번 꼬아서 해석해내야 하는 암호 같은 커뮤니케이션 대신 간결하고 효율적이면서 애정어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밭을 잘 가꾸어 나가자. 또, 소중한 이에게 고민의 여지없이 '믿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상대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리고 상대에게 보내는 충고가 유효하도록 능력 있고 통찰력 있는 사람.


저무는 해를 정리하는 오늘, 내년 목표에 추가할 일이 하나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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