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오는 데 걸리는 시간

성평등 교육은 위험해? 성평등교육은 필요해!

by 고운

[개인적으로 기쁜 날의 기록]


지난 9월이었다.

"교사연수(강연) 하고 싶어요. 젠더교육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고 문제의식 공유하고 싶어요."


새로 부임하신 장학사 출신 교장선생님 환영 겸 5학년 간담회를 가졌는데, 교장선생님이 뭐 바라는 거 있으면 말해보라셨다. 그런데 내 말을 듣고 표정이 굳으신다.


"젠더...? 거.. 트랜스젠더..뭐 그런 거?"


앗차 싶어 성평등이라고 고쳐 말했더니 서울의 모 초등학교에서 민원 폭탄 받고 휴직하신 선생님 사건을 바로 떠올리신다. 모든 교장선생님은 민원포비아. 우선은 보건선생님이 성교육 연수할 거고, 당신도 직접 학교 내 성폭력에 대해 연수하실 것이니, 그거 우선 진행하고 다시 얘기하라고 슬쩍 거절하셨다.


다음날 오전, 교장회의에 다녀오신 교감샘이 다시 나를 부르셨다.

"젠더, 그거 나도 알아 사회적 성이지? 근데 요즘 하도 세상이 난리니까 아무래도 위험하잖아. 그걸로 연구회도 하고 그런다며,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위험해, 교실에서 교과서에 없는 거 하지마 나중에 다 자기 책임이야. 그래도 꼭 해야겠거든 수업지도안 짜서 결재 올려서 허락 받고 하고. 알았지?"


10월중 있었던 보건샘, 교장샘의 연수는 교사간, 교사-학생간 성폭력 범죄 예방 연수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긴 평범한 교실 안에 어떤 성차별적 요소가 있고 그게 아이들을 얼마나 위축시키는지, 그 문제를 해소했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교실에서도 수업을 못하게 하시는데, 또 강연하게 해달라고 떼쓰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떼썼었는데 실패했다.)


"성차별에 대해 잘 지도해 주셔서 남자친구들에게만 나쁘게 대하는 버릇이 없어졌다."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나는 편견을 버리게 되었고 자신감을 갖게 됐다."

"선생님 만난 뒤로 성차별적 관념이 사라졌다. 선생님의 조언으로 여자아이들하고도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교원평가 결과, 이런 아이들 의견에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끼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 교감님이 또 부르셨다.

'수업권은 내 고유 권한이지!' 라며 강행했던 수업이 문제가 되나 쫄아서 내려갔는데 눈썹을 팔자로 만드시면서 심각하게 건네시는 말씀.

"내가 선생님들 교원평가 결과를 쭉 볼 수 있거든. 근데 선생님이 성차별해요 하는 의견이 너무 많아. 애들도 학부모님들도.

여자애만 데리고 수업하고 싶다거나 남자애들은 확 싸우고 말아서 편하다는 말 같은 걸 많이 하시나봐. 아주 곤란해. 근데 자기가 그런 거 공부한다며.

교사들 대상으로 12월에 바쁜 일 끝나면 연수 좀 해줄 수 있을까?"


교실로 두 층 올라가는 동안 손이 저릿저릿하게 기분이 좋았다. 이 기분이 뭔지, 지금 이 글 읽으면서 같이 느껴주면 좋겠다.

필요성에 대해 인식만 해 주면,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일어난다. 개인보다 학교시스템이 오히려 더 빠르게 바뀔 수도 있다. 한 선생님이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완전히 털어버리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나이스 랜덤번호 부여를 학교차원에서 시도하는 건 의외로 쉬울 지도 모른다. 그게 구성원들의 인식도 같이 끌어올릴 거고, 학교의 변화를 접한 아이들에겐 또 어떤 눈이 새롭게 뜨일까 상상하면 가슴이 막 벅차오르고 두근거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쯤에서 다시 걸어보는 우리 블로그 희희희.

http://blog.naver.com/gdgam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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