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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Mar 29. 2018

#아이들이듣는성차별적인말, <다르게 말해주세요!> 수업

초등학생들의 '가까운 어른의 성차별 발언 줄이기' 대작전

 2018년 1월 안태근 전 검찰총장의 성추행 폭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metoo운동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2017년 10월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범죄를 폭로하면서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전세계 80여 개 나라를 뒤흔들고 있지요.


 미투 운동은 약한 개인들이 모여 거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낸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성폭력에 침묵하는 사회에 대한 자성의 의지를 담아 시민들이 #withyou로 연대하며 그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고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그 연대를 만들어가는 용기를 지닌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업을 구상했습니다.

 

 수업에 적용하기에 앞서, 성폭력이라는 주제를 성차별로 바꾸었어요. 정확히는 ‘선생님, 부모님, 주변 어른들에게 듣는 성차별적인 말’로요. 성차별 문제를 다루면서 미투를 가져다 쓰는 건 비약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성차별과 성폭력은 깊게 연관돼 있습니다.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성폭력 발생 원인에 대해 연구한 결과, '성차별주의를 내포한 성과 관련된 오랜 속설들이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 테면 ‘여자의 No는 Yes다’, ‘남자의 성욕은 주체할 수 없는 본능이다’ 같은 속설 말예요. 또, 한국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조사 보고서 역시 '성폭력 피해 신고율이 저조한 가장 큰 원인이 사회의 성차별적 통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성폭력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성차별적 문화를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성차별적인 말을 결코 가벼운 농담처럼 여기거나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아이들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합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성차별적 언행을 인식하고 아이들이 ‘나는 그 표현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지금과 조금 다른 모습일 거라 기대합니다.

                    

*관련 교과 및 단원

-창체(학교폭력예방교육-언어폭력, 성폭력)

-국어(5-2-6. 말의 영향)

-사회(5-1-3. 새로운 매체와 문화발전), 본 수업은 창체 2시간을 활용하였습니다.


1. 도입: 사회의 #미투 운동 알기

- 미투의 세계적 흐름 소개

- 우리나라의 미투 소개

- 성폭력과 성차별 간의 관계 생각해보기


“성폭력은 갑자기 발생하지 않아요. 잘못된 성 고정관념, 성차별적인 의식이 쌓이다 보면 발생할 수 있어요. 또한, 주변에서 잘못됐다고 제지하지 않으면 ‘괜찮은가보다’하고 여기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은행을 터는 도둑은 없지요. 좀도둑질했는데 주변에서 지적하지 않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다보면 점점 간이 커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작은 성차별적 사고를 바꿔나가야 해요. "


2. 활동1: 내가 들은 성차별적인 말 떠올리기

-가족, 선생님, 친구로부터 들었고 상처가 된 말 떠올려서 포스트잇에 적어보기

-가까운 어른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라 여겨 머뭇거리는 아이가 있다면  -> '성차별적인 말을 한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게 아니다, 실수할 수도 있고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듣고 속상해 한 말

3. 활동2: 대항할 표현 대신 찾아주기

-댓글 쪽지 달기: 친구가 상처받은 말, '나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무척 통쾌해 합니다. 엉뚱한 것도 많이 나옵니다.

                     

“남자가 운동을 안 하면 쓰냐” -> “운동을 못하면 좀 어때요.”

“여자애가 왜이렇게 방을 안 치우니?” -> “아빠가 치우면 저도 따라할게요.”

“살도 많이 빠지고, 이제 시집가도 되겠네.” -> “내 나이 12살, 조선시대 아닙니다.”

“남자는 주먹이지.” -> “남자는 가위일 수도 있다.”(근엄진지)


4. 활동3: #다르게_말해주세요 포스터 제작하기

-'이렇게 말해줬다면 상처받지 않았을 것 같다' 고 생각하는 말로 바꾸어보기

“우리 반 친구끼리는 이런 말 안 하기로 약속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투운동이랑 비슷하게 말이에요. ‘우리 학생들도 성차별에 반대한다’는 주제로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부탁해 봅시다. 비난보다 멋지게 부탁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다르게 말해달라고 예시를 들어주면 될 것 같아요.”


 아이들 제안에 따라 포스터 형식으로 모둠에서 성차별적인 말을 골라 다른 방식으로 바꿔보았어요. ‘여자는 얌전해야지’라는 말 대신에 ‘넌 얌전하고 침착하구나’, ‘남자가 씩씩해야지’ 대신에 ‘씩씩하니 보기 좋구나’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여자는 얌전해야지’를 ‘여자는 씩씩하고 활기차야지’로 바꾸어야 하나 고민하는 아이도 있었지요.


“여자가 얌전하고, 남자가 힘이 센 것이 나쁜 거라고 오해하지 말아요. 여러분은 모두 다르게 태어났고 각자가 가진 성격이나 특징은 고유의 매력이에요. 단지 어떤 성별에 어울리는 성격이나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으면, 여러분이 가진 성격이나 능력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미용은 섬세한 일이라 여자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미용 고등학교에서 남학생을 입학시키지 않는 일도 있었어요. 지금도 경찰대학교에선 용감하고 힘센 남자의 직업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여성을 12%로 한정해서 선발하고 있고요(2020년부터 폐지).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 때 성별을 기준으로 평가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00답다는 평가에 얽매여 여러분의 성격을 바꿀 필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이 저마다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열심히 토의하고 가장 듣고 싶은 표현을 골라 적었습니다. ‘가위바위보, 선택은 자유’라는 깔끔하고 참신한 말도 있었고 ‘우리 같이 담력을 기르자’처럼 귀여운 말도 있었습니다.

                   (클릭해서 보실 수 있어요)

 아이들은 정말 아끼는 주변 어른에게 말해보기로 했고, 저는 포스터를 교실 창문에 붙여 지나가는 친구들, 선생님들, 관리자 분들, 학부모상담하러 오신 학부모님들이 볼 수 있게 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의 실천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말로 마무리 했습니다.

 



 아이들이 성차별적인 발언을 들었을 때 '내 성격이나 취향, 능력은 나의 성별과 안 어울리나' 걱정하며 움츠러드는 대신 '나다움'의 가치를 잘 갈고 닦아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이들에게 성차별에 대항할 '맷집'이 길러졌으리라 믿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맷집을 기르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지만요  :)


또한, 권력의 부당한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약자들의 뚜렷한 목소리가 사회에 더 널리 퍼지길 기대합니다.  #with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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