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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Feb 04. 2019

남혐, 여혐?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니?

여자라서/남자라서 불편한 점을 듣고 이해할 틈 찾기 수업


남혐이다, 여혐이다 하는 말이 유행할 때 아쉬웠다. 서로의 입장을 진솔하게 들어보고 이해하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감정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받지 못하니, 점점 더 격하게 자신의 입장을 어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기의 고충을 이야기하기 전에 타인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고, 우리반은 주1회 주제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숙제가 있다. 주제가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여자/남자가 되어 있다면?’이었던 날, 아이들의 고정관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들이 나왔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자라 있었다. 갑자기 운동을 잘하게 됐다. 목소리가 가늘어졌다.”같은 말이 거의 대부분의 글에서 반복됐다. 또, “화장실에 가려니 불편했다, 머리 감기 불편했다” 정도로 불편함에 대한 이해가 빈약했다. 서로의 성별이 가진 어려움에 대해 잘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터다.


겪어볼 일 없는 상대 성별의 어려움을 왜 알아야 하냐고? 당연히, 공감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딱 1인분 짜리 삶만 경험하고 이해하고 살면 인간이해의 깊이는 너무 얄팍해질 테니까. 은연중에 남성과 여성은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여기며 자랐기 때문에, 고학년쯤 되면 편가르기하는 데 꽤 익숙해져 있다. 조금 투닥거려도 “선생님, 남자애들이 저희 때렸어요.”, “선생님 여자애들이 저희 못 만들게 해요.”처럼 뭉뚱그려 표현하곤 한다. 결코 아이들에게 득될 리 없는 구분 방식이다. “성별로 구분하지 말고 현수가 그랬어요, 윤시가 그랬어요, 라고 바꾸어 말해보자.”고 하기도 여러 번, 습관이 된 아이들 표현은 어느새 사이에 투명한 벽을 세운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마침 글쓰기도 했겠다, 국어 ‘다른 이의 관점에서 새롭게 쓰기’ 단원을 활용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먼저 전지 네 장에 여자/남자라서 좋은 점, 여자/남자라서 불편하고 어려운 점을 각각 예상해보게 했다.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단계는 서로 입장이나 생각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는 거예요.”


남학생들은 여학생 칸에, 여학생들은 남학생 칸에 가서 적어나갔다. 서로의 좋은 점으로 꼽은 건 이런 것들이다.

또, 아이들이 추측한 서로의 불편한 점들은 이런 것들이다.


같은 성별 친구들끼리 모여 적을거리를 떠올리는 동안 그간 해본 적 없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진-짜 아프대.(남학생)”, “헐, 그럼 남자는 소변 본 다음에 안 닦아?(여학생)”하며 활달하게 이야기 나눈다. 어떤 것들은 오해였지만, 우선은 자유롭게 얘기하도록 뒀다. 그래야 서로가 오해한 지점을 찾고, 이해할 틈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이제 본래 자신의 성별 칸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이 적어놓은 걸 볼 차례다. 너나없이 깔깔댄다. 기막힌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자신에겐 너무 당연한 일상이 상대에겐 무척 생소하고 의아한 일일 수 있음을 확인한다. 그렇게 서로의 처지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고, 상대의 눈으로 나를 다시 보기도 하는 시간이다.


서로 이해해보자고 시작했지만, 매끄럽기만 하진 않았다. 자기들을 전혀 몰라주는 것 같은 문장을 만나면 “이거 누가 쓴 거야? 분명 00일 거야.”라며 서로 미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 미워하기 전에 얼른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 사진입니다

“친구들이 잘 파악하고 있는 점들이 있었나요? 발표해 주세요.”

섭섭해서 씩씩대다가 친구의 발표를 들으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고충을 알아주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서운하거나, 친구들이 오해한 거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나요?”

“네! 솔직히 이건 너무해요.”

“좋아요.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는 방법 2단계는 입장 차이가 난 부분에 대해 서로 설명해주고, 경청하는 겁니다. 지금부터는, 인정하는 부분에 동그라미로 동의의 표시를 해 주고, 실제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 칸에 설명해 주세요. 말 안 해주면 모르는 게 생각보다 많거든요. 여러분이 싫어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그런 거예요. 알려주세요.”


아이들은 아까보다 한층 활발하다. “남자가 월급을 더 많이 받는다고? 어째서?”를 시작으로 간이토론을 하기도 하고, “난 솔직히 치마는 별로 입으래도 입고 싶지 않은데?”라며 선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토록 각자의 얘기가 넘쳐나는 수업이 많지는 않다. 공부하는 내용이 삶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것을 수업이 아니라 수다 떨고 노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딱 내가 바라던 분위기다.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 사진입니다

‘실제로’ 불편한 점을 적은 다음, 돌아다니면서 친구의 의견을 호기심 있게 살펴보며 궁금하거나 반박할 말들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공감도 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했으며, 자신 안의 고정관념을 확인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명절 때 엄마들만 일하는 거 보면 정말 답답해. 하지만 돕고 싶어도 못하게 하는걸.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건 알지만 내가 어려서 내 말은 잘 안 들어주셔.”

“섹시하다는 말 불편해.
여리여리해야 될 거 같고 뚱뚱하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날 힘들게 해.”

“어떤 자극으로 발기되면 너무 불편해.
야한 생각을 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대화 나누는 동안 표정이 밝아진다. 이 과정 없었으면 오해가 더 쌓였을 텐데, 대면하고 얘기 나누니 즉각 확인하며 더 돈독해진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였다.


 아이들의 솔직한 대화를 보면서 오히려 어른들에게 이런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처럼 ‘믿을 수 있는 타인과 터놓고 직접 대화 나누며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경험’이 부족한 채로 갈등하고 있진 않은가. 갈등 자체를 나쁘게 보진 않는다. 오히려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건강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젠더이슈를 피곤하게 생각하지만, 그간우리에겐 이런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주제로 대화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해본 적 없으니 서툴고 뾰족할 수밖에 없다. 다만 갈등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을 위한 갈등인지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이런 수업들을 통해, 아이들 세대엔 우리 세대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갈등’의 과정이 좀더 쉬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더 글을 써보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한 번의 수업으로 오해와 고정관념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게 됐다.


“여자가 화장 안 하면/남자가 화장하면 무슨 일이라도 나니?”
“남자는 군대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꼭 군대가 있어야 될까?”



글을 보고 있으면, 더 솔직한 대화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이 아이들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자꾸만 기대하게 된다.





※이 글은 1월 29일, 2월 12일, 2월 19일 3회에 걸쳐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칼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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