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생리컵 구매 장려 영화 <피의 연대기>를 보고
그동안 5,6학년 대상으로 몇 번의 생리교육을 할 때마다 생리컵을 소개해왔다. 공통되게도, 아이들은 한 시간짜리 수업 중에 바로 그 생리컵을 제일 궁금해했다. (특히 이미 생리를 시작한 아이들은!)
쉬는시간까지 몰려들어 "어떻게 넣어요, 안 아파요? 많이들 써요?" 질문하는 아이들에게 유튜브로 사용 후기를 보여주면서도 고민했다. 월경의 역사가 험난하고도 고달팠고, 그 오해와 무지로부터 나도, 아이들도, 부모님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번 걱정했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생리컵 얘기하고 사달라고 하기라도 하면 민원 들어오겠다. 여자애 몸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건 전국민적인 공포아니던가.’
서울시립청소녀건강센터 <나는봄>에서 만든 월경미니북과 책<어바웃 문데이>를 살포시 학급문고에 꽂아놓는 게 은근한 나의 열망이었다. "눈을 떠 얘들아!"
좋다~ 좋다 하는 건 나도 알지만 나에게도 생리컵이 없다. 내 몸에 이물질을 넣는 게 두려워서도, 내 손가락을 넣어 질 높이를 재기 어려워서도 아니다. 그 어떤 물건도 '직구'해야 한다고 하면 즉각 포기해버리던 나의 귀차니즘 때문. 친구들이 "공구할 사람~?"할 때도 몇 번 놓치고 이제 주변에 쓸 사람은 이미 쓰고 안 쓸 사람은 나한테 제안할 리가 없다. 내 손으로 직접 구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귀찮게스리. 생리대 가격 인상 및 발암 생리대 논란 이후 옴팡지게 사 놓은 나트라케어 패드가 아직 잔뜩 남아 있다는 둥 변명을 하며 지내왔다.
영화 <피의 연대기>도 한창 사람들이 보자, 재밌다 할 때 미루고 미뤄왔다. 월경 숨길 일 아닌 거 나야 뻔히 알고, 이 영화로 사람들이 더 많은 얘길 나누고 사회적 논제로도 가져올 수 있게 된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님과 영화 GV를 함께 진행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미리 영화를 보아야 했다. 그래 이런 기회가 생길 줄 알고 안 봤지! 껄껄
뉴질랜드 여성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충격을 안겨준다. 뭣도 모르고 초경을 할 때는 패드를 썼지만 두번째 월경부터는 생리컵을 썼다는 게다. 두번째? 바로? 15살에?
내가 던지는 물음을 비웃듯 그녀들이 반격했다.
"한국 여자들은 패드를 써요? 매달? 매번? 도대체 어떻게? 무엇보다도, 왜?"
매달 쓸리고, 아프고, 새고, 안 챙긴 날 당황하던 내 경험과 저들의 경험을 저울질해보았고 결심했다. 생리컵을 사자!
후기가 엄청 많이 있었는데 고민 않고 레나컵으로 결정했다. 제일 유명해서. 이거 뭐 서너 개여야 고민을 하지 외국의 생리컵은 종류가 수백 가지다. 수백 가지 중 그 어떤 것도 한국에선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몹시 안타까웠다. 국내엔 페미사이클 생리컵 한 종류가 출시되어 있는데 처음 쓰기에는 다소 무섭게 생겼다. (곧 이브에서도 출시할 예정!)
아마존 이베이 배대지... 방법을 읽어봐도 너무 여러 단계라 머리가 아팠다. 이러다가 또 포기할 것 같아서 그냥 레나컵 본래 홈페이지로 가보았다.
시험 삼아 상품을 고르고 결제버튼 눌렀다.
내 정보를 입력하는 창이 뜨고, 또 넘어가면 카드 정보 입력칸이 뜬다. 이게 다다. 해외 배송비까지 6만원에 두 개 구매했다. 생각보다 너무너무 쉬웠다. 역시 해보지 않고 겁내는 건 나쁘다! 이렇게 쉬운 줄 알았다면! 그러니까 이건 나 같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사세요! 용기를 내서 우선 사두세요!)
주기가 규칙적인 여성이면 적게 잡아 1년 생리대 값으로 10만원을 쓴다. 평균 40년 동안 생리를 하니 400만원. 또, 버리는 팬티랑 바지가 몇 벌이고 이불이 몇 장인가. 이에 반해 생리컵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까지도 쓴다. 환경 아끼고, 덜 아프고, 월경기간도 짧아지고, 냄새 안 나고. 이토록 합리적인 선택이 없다.
무엇보다도 영화에서 했던 말이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줄 테다. 그간 생리컵과 면생리대를 썼던 친구들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내 피 한 번 받아내고 화학약품과 뒤엉켜 냄새나는 물건이 된 걸 어우 더러워 하며 버리는 경험과, 생리대 쓰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빨갛고 깨끗한 피를 물에 흘려보내고 씻어서 다시 쓰는 경험은 천지차이다."
코피랑 매한가지인데, 코피를 볼 때랑 다르게 대하게 되는 월경혈을 다시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 내 몸을 다시 보고 어여삐 여기게 되는 경험, 같이 하실 텐가.
*때때로 월경과 생리를 번갈아 썼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단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