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국경]에서 루소를 읽다
2019.02.14.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을 함께 읽었어요.
루소는 이성 이전의 인간의 기본적인 작용 두 가지를 '자기보존 욕구'와 '동정심'으로 설명했어요. 나의 안위가 귀하고, 그렇기에 타인의 죽음과 고통에 자연적인 혐오감을 느껴 안타까이 여기는 마음, 두 가지는 본능이라는 거죠. 미개한 시대에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했던 그 원리들은 관념적인 단어로 남아, 두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수많은 상황에서 사람들마다 다른 해석을 하게 합니다.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 파업 얘기예요. 도서관에서 인생을 걸고 공부하는 나의 안위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이 부딪칠 때, 법적, 사회적 상황이나 선택지의 유무 등 복잡한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나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두어 주장할 수 있는 심플함은 사실 그 자체로 부나 명예(또는 그밖의 루소가 얘기한 장점들)의 증거가 아닐까요. 이런 생각에 무디어지면, 루소가 염려한 사회가 우리에게 오는 순간을 인식하지 못할 거예요. 이미 와 있는데 우리가 무뎌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억압을 중지시킬 수 있는 어떤 합법적인 방법들이 있는지 억압받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볼 것이다.
약자의 저항이 반란을 일으키는 불평쯤으로 치부당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정치가 공익을 지키는 명예를 인민들 가운데 용병에게만 제한하여 부여하는 것을 볼 것이다.
-인간불평등기원론
'자기 스스로를 개선하려는 욕구가 인간의 특별한 자질'이라는 루소의 말에 깊이 공감해요. 서울대 총학생회는 도서관을 난방파업에서 제외해달라던 요구를 철회하고 파업에 연대하기로 입장을 바꾼 성명서를 냈어요. 그 이후 예상보다 빨리 협상이 타결되었고요. 태도를 바꾸었다고 욕하는 이도 있었고, 의뭉스럽다는 시선을 보낸 이들도 있었으나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한 밤샘회의를 거쳐, 더 나은 결과라고 생각되는 파업 지지를 표한 총학은 인간만의 특별한 자질을 성심껏 뽐낸 것 아니겠나요.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성과에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끌어올리자'고 요구하며 파업을 지켜본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하거든요. 파업은 인간이 스스로 자유롭게 존재하기 위한 방편이고, 권위를 양도한 뒤 나도 모르는 사이 맹목적 복종의 단계까지 흘러가지 않도록 거스르는 수단이며, 불평등의 최후의 원인인 부의 문제에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도구이니까요. 자연법을 거스르지 말라는 요구와도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루소는 부와 평판과 명예가 서로 경쟁하고 우열을 가리는 동안 불평등이 심해진다고 염려했지만, 나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방법도 우리가 배워나갈 거라고 믿어요. 평판과 명예를 좇는 마음은 소유가 생겨난 이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지만, 그 평판과 명예의 기준은 우리가 정할 수 있잖아요. 어떤 것이 명예로운지는 활발한 대화와 토론과 정치, 때론 투쟁으로 조정해나갈 일 아니겠어요? 품위 있는 말과 행동과 삶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할 필요가 있고, 그것은 몇몇의 철학자들과 정치가의 일이 아니라, 페이스북과 신문과 인스타를 하는 우리 대중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명하기 위한 우리 대중들의 대화와 토론,
어휴 그러니 결국 답은 트레바리네요. 같이 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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