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에서 <확장된 표현형>을 읽고
'유전이냐 환경이냐'는 교실에서 학생을 대할 때 종종 마주치게 되는 고뇌의 순간이다.
'도대체 이놈은 왜 이럴까... 내추럴 본 타고난 걸까, 삼형제 막내라서 그런 걸까,
학교에서 내내 까분다는 소릴 듣고 자라서 그런 걸까..'
여자아이가 핑크를 좋아하는 것이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그 반대의 연구도 당연히 있다. 사람은 자기 입장에 맞지 않는 정보를 걸러내는 데 선수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고민을 계속한다.
"우리 딸에게 무작정 핑크 옷을 사 주진 않을 거야. 그건 편견이야! 하지만 백화점에 가면 자꾸 핑크색 차를 찾고 핑크색 양말을 고르네, 이건 알게 모르게 그동안 딸에게 핑크가 많이 제공되는 환경에 저도 모르게 적응한 결과일까 아니면 핑크를 좋아하는 유전자가 내재하기 때문일까?"
많은 교사들의 고민은 이렇다.
"대체로 남자애들은 나가 놀기 좋아하고 공,차,총을 좋아하며 활동적이며 그룹 내 서열이 분명한데 여자애들은 조용히 공기놀이하거나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떨고 서열을 따지기보단 무리짓기 좋아하네. 이게 문화적 영향일까, 아니면 타고난 남녀의 차이일까? 타고난 차이라면 그 차이에 걸맞게 교육해야지, 모두 문화의 영역으로 보고 교육하면 타고나게 그런 것인데 손해보거나 상처받거나 소외당하는 아이가 생겨나지 않을까?"
나는 도킨스의 이론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과학계에선 도킨스의 이론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 논쟁적인 사람이지만, 그가 주장하는 바에서 배우는 건 두 가지였다.
p44 여성이 남성보다 통계적으로 좀 더 뜨개질을 좋아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이는 모든 여성이 혹은 여성 대다수가 뜨개질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관점은 여성이 뜨개질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회가 그렇게 양육해서라는 관점과 완전히 양립한다.
아이들에게서 어떤 경향성이 있음을 인지하는 게 도움이 되는 상황들은 분명히 있지만, 이 경향성에 입각해 어떤 활동이나 규칙을 적용할 때 반드시 소외되는 학생이 생기며 집단 안에 학생을 맞추어 욱여넣지 않으려는 노력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작 30명밖에 안 되는 인원이지만 이들을 늘 개별화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 생각은 소외되는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다'고 종용하게 만들기 쉽다. 유전적 기질의 집단적 경향성은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개개인을 그 경향성 안에서 재단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함을 상기한다.
p46 중요한 점은 유전적 영향이 환경적 영향보다 더 되돌리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어떤 일반적인 이유도 없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유전적 기질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바꿀 도리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별개로 고려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됐다. 타고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쉽게 기대하고 쉽게 좌절한다. 어쩌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가장 어쩔 수 없어지게 하는지 모른다.
'쪼갤 수 없는 근본적 단위가 가진, 세계와 역사를 주무르는 힘'에 대해 상상해보는 즐거움이 있는 독서였다.
2017.02.23. 트레바리 독토에서 혜진이의 발제로 <확장된 표현형>을 어렵사리 읽고 쓴 글.
번역이 개똥망인 책이라, 읽지 않아도 무방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주제로는 토론해볼 만하다. 내 생각이 잘 깨진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여서 그럴 수 있겠지만.
그래서 독토 친구들과 토론했던 이 시간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생각해보면 게이미피케이션, 도시공학, 생물학, 사랑에세이... 내 취향 아닌 책 제일 많이 읽었던 때가 독토 할 때다. 정말, 무경계가 트레바리의 꽃이로구나
책보다 인상적인 토론, 어디서 하겠나?
바로 여기! >>> https://trevari.co.kr/ap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