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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an 27. 2020

열린사회는 번잡스러울 수밖에 없다

트레바리 국경:철학에서 읽다 < 열린사회와 그 적들 Ⅰ>

얼마 전, 동료의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황망한 표정의 선생님을 안아드리니 “영영 그 자리에 계실 줄만 알았다”고 하시더라. 특별히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거의 모든 것들이 ‘영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어제의 지식은 오늘 뒤집어질 수 있고, 오늘의 리더는 내일이면 저물 수도 있다. 변치 않는 관계란 없고, 흔들림 없는 제도도 없다.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을 원칙이 필요하다는 플라톤의 말을 새겨들었는데, 그 원칙이 합리적인지 의심할 줄 알라는 포퍼의 조언이 다시 한 번 나를 일깨운다. 



‘누가 결정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조직하고 결정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상에서 실천하기 상당히 어렵다. 결정하는 방식을 함께 정해나가는 것보다 결정할 사람을 정하는 게 더 쉽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특별히 의식적으로 하는 노력’이 바로 이것이겠다.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함께 설계하는 일. 그리고 이 번거로운 노력은 바로 그 과정의 소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비탄에 빠뜨리는 큰 불행을 초래할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동안 소외되는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고, 뛰어난 몇몇 선동가의 말이 먹히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 포퍼의 태도를 발견했다.

‘리스크 감수에 따르는 나쁜 결과에 윤리적 실패의 의미를 덧씌우면 리스크를 감수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욕을 제한하고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상실한다. (중략) 실패에 대해 낙인을 찍는 조직은 실제로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는 많은 실패를 겪어왔지만 실패가 없으면 어디에 구멍이 난지 모른다. 그간 구멍 낸 이를 징계하고, 구멍을 기워내는 방식으로 사회를 개선해 왔다면, 이제는 기왕이면 실패를 덜할 수 있도록 그 번거로운 의사결정 과정을 시끄럽게 만들어가고 있는 단계 아닌가 싶다. 




번거로움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관계나 조직이나 제도도 ‘영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깎고 기름칠하고 바꿔 끼울 점이 아주 많지만,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른다면, 그때가 정말 경계해야 하는 상태일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표지에 Jana Glatt 의 그림을 썼어요.

◆트레바리에서 함께 읽고 2019년 4월 18일에 썼어요. 2020년 3-6월 시즌 모집 중이에요.

매달 나를 조금씩 더 성장시키는 독서모임, 함께 해요.

>>> https://trevari.co.kr/ap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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