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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an 28. 2020

한껏 냉정해지기, 더 열정터지기 위해

트레바리 국경에서 함께 읽다 <팩트풀니스>

최근 한 아동문학 평론가의 강의를 들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스티안 로빈슨 작가는 가족을 그릴 때 비슷한 방식으로 그리지 않으려고 해요. 이 길거리 장면 속의 비백인 남성과 백인 여성 커플 보세요. 실제로 미국에 가장 적은 형태의 결합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행인을 이렇게 그리는 거예요. 저는 이게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봐요.”


에즈라 잭 키츠 상 수상작 <야호! 비다>

나는 이런 사례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생판 모르는 그림책 작가가 내가 평생 볼 일 없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도 이 책이 어디까지 닿아 읽힐지 모르고 아무도 못 알아챌 수도 있고 누군가는 현실에 안 맞게 피씨(political correctness) 찾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품고 사는 일은 쉽진 않아도, 또 당장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더라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구나.


팩트에 기반한 사고가 중요함은 책에서 무수한 사례를 들어 강조하고 있고 충분히 이해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그런 사고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일이었다.

저자는 ‘세상을 더 유용하게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라고 결론에 밝히고 있다. 덧붙여 나는 내가 ‘자연스럽게’ 생활할 때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사람들도 그에 주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결론을 얻었다. 섣부르게 일반화하고, 혹은 나쁜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비난하고, 자극적인 기사에 두려워하고, 세상이 단일하며 불변하다고 생각하는 동안 잊혀지는 것들이 있다. 1단계 나라에서 건강히 살아남는 게 퀘스트인 어린이들, 허울뿐인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해 50불 대신 1000불을 내고 위험하게 배를 타는 난민들, 불법 낙태로 위험에 빠지는 여성들, 전세계인의 편견을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무슬림들, 온난화에 누구 책임이 크냐 따지는 동안 말라 죽는 동물들 그리고 지금도 내게 슥 떠오르지 않아 나열되지 못하는 존재들.


요즘 한국 뉴스를 틀면 비난 본능과 일반화 본능에 잠식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예능인을 ‘거르고(일단 믿고 거른다,넌 이제 끝이다가 자동 댓글 같다ㅋㅋ이러다 아무도 안 남을 것 같다)’, 어떤 범죄에는 전국민이 공분해 청원을 올리고 가해자의 신상을 턴다. 어떤 기사에나 정권을 욕하는 댓글들이 달리고, 반짝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도 세상은 그래봤자 변하지 않는다는 비아냥이 이어진다.

쉬,,쉽게 절망하지 말라굿! 뀨><

하지만 개별 사건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를 생각하는 연습을 해 본다. 한 발짝 물러나 세상을 보는 데에 조금 더 능숙해지고 있고, 이게 나의 정신건강도 챙기고 세상에 도움되는 행동을 하는 데에 득이 된다는 걸 이젠 안다. 일타이피 룰루~~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어떤 것들은 분명히 더 나빠지고 나한테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닿지 않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균형을 찾는 일이 가치있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을 넉넉히 해볼 수 있게 도와주어서, 나에겐 꽤 즐거운 독서였다.





◆표지에 Shohreh Davoodi의 일러스트를 썼어요. 

◆트레바리에서 함께 읽고 2019년 6월 13일에 썼어요. 2020년 3-6월 시즌 모집 중이에요.

매달 나를 조금씩 더 성장시키는 독서모임,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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