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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pr 29. 2020

<섹스의 진화> 제러드 다이아몬드

재밌었고, 다신 만나지 말자! /트레바리 모던:섹스에서 함께 읽다



동물들의 섹스를 이토록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아마 평생에 이 책 단 한 번뿐일 것 같아서, 퍽 즐거운 독서였다. 인간과 동물의 같고 다른 면모를 살펴보는 것도 재밌었고, 염색체 발생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나 간성을 자세하게 다룬 서술도 흥미로웠다. ‘아빠도 모유 수유를 통해 여성들만 누릴 수 있었던 아기와의 정서적 유대를 똑같이 경험할 거’라는 발칙한 서술들은 낯선 유쾌함을 안겼다.



아쉽지 않았던 건 아니다. 과학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아 논의중이거나 개인적인 의견을 비약한 서술들이 종종 보였다. 모유수유가 (분유보다) 낫다고 서술p127한 점, 유전적 결함이 ‘산모’의 나이 때문이라고 한정p231한 점, 전세계에 걸쳐 모든 남자들이 여성의 가슴, 엉덩이에 관심을 갖는다고 일반화p266한 점, 정도의 차이라고 서술하고 시작했음에도 호르몬, 성기모양에 정상/비정상을 지나치게 구분해두는 부분 등이 그것. 음경 크기에 대한 수다는 개인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 진화는 진보가 아니잖은가. 의도나 목적이 있었을 리 없고 그 방향이나 속도, 자연선택의 이유를 추후에 추론하여 연구할 뿐이다. 그런데 책에는 진화의 결과에 현대 사회의 문화적 현상을 끼워맞추는 서술이 자주 등장했다. 진화의 경쟁 속에서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성적 장식물을 갖는다p268거나, 수사슴의 뿔, 꼬리, 볏과 같이 자연적인 진화의 산물에 인간의 포르쉐 스포츠카를 빗대는p257 표현들은 진화생물학을 오용했다고 여겨진다. 아체족의 '과시형 남자'를, 자녀 양육비를 내지 않고 아내와 자식을 내팽개치는 현대 일부 남성에 무리하게 빗댄 부분p201도 마찬가지다. 유전학적으로 타고난 거라고 해주지 말자.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몰염치한 시민이라고 얘기하면 그만. 이런 서술을 비판적으로 사유하지 않으면 좀더 나가서 남성이 씨를 많이 뿌리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에 바람을 많이 피운다고 합리화하게 되지 않을까. 사회 문화적으로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현상을 자연 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나름) 과학책을 읽으며 마음에 길게 남은 순간은, 사실이 건조하게 적혔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훨씬 더 복잡다단한 장면들이었다. 이를테면 지금도 수많은 나라에서 겪고 있는, 교육과 생존과 자유의 관계를 짐작케 하는 문장.

‘그리고 아이들, 특히 아들을 가르쳤다.
그러한 교육은 아이의 생존 기회를 증가시켰다.’




그러니, 내가 이 클럽에 가입하며 기대한 바는 이런 거다. 성과 섹스에 대한 작은 정보와 그 뒤에 품을 큰 상상이랄까. 우리의 섹스의 결과(?)로 영위되고 있는 이 사회가 요즘 섹스와 결혼을 장려하지 못해 안달인데, 그럴 수 있는 기반 얼마나 마련해주고 하는 소린가. 성교육부터 청소년 콘돔 구매나 성을 둘러싼 농담까지, 우리의 섹스는 그동안 얼마나 왜곡돼 있었고, 얼마나 더 건강해질 수 있나. 성은 얼마나 재밌을 수 있는 주제인가. 누구는 진보와 보수로, 성장과 안정으로, k팝과 백종원으로 한국을 이해하는 동안, 우리는 성을 기반으로 나와 우리 사회를 얼마나 읽어낼 수 있을까 확인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덧. 브런치에 글 발행하면서 키워드 3개 중에 섹스를 넣으려니까 그런 키워드 쓸 수 없다고 한다. 개소리 왈왈할까봐 검색창과 키워드에 섹스를 쓸 수도 없는 나라에서 우리가 나눌 이야기들이 무척 기대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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