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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an 21. 2020

내 말 듣고 있늬?

태재와 에세이드라이브 2기에서 쓰다 / 키워드: 낙서


 우리는 변산에서 군산으로 향하는 삐까뻔쩍 새만금 길을 달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S가 악셀을 밟고 나는 보조석에 한껏 뒤로 기대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중이었다. 블루투스로 연결한 차 스피커에서는 데이브레이크의 'Mellow'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적당히 뭉갠 허밍을 함께 흥얼거리며 우리는 지린성 명물 고추짜장을 조지러 가는 길이었다.

내 자리에서 보이던 풍경

 S는 나랑 지질한 시절부터 우주만큼 큰 꿈까지 나누고 조롱하고 응원하는 사이다. 그는 한 손으로 핸들 아래쪽을 잡고 정면을 응시하면서 자분자분 제 얘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 중에 #시스터후드 라고 있는데, 그 분 목소리가 진짜 좋아. 근데 거기서 …”


 응응, 으응... 하면서 나는 핸드폰에 60%의 집중력을 쏟고, 나머지 40%의 주의력만을 왼쪽 귀에 기울이고 있었다. 태초부터 게임에 흥미라곤 1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연례행사처럼 깔아서 약 일주일 동안 즐기는 ‘2048’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낙서랑 비슷한 이 게임은 너무 간단해서 멀티태스킹이 가능할 거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이게 가끔 탈락할 위기에 놓이면 제법 머리를 써서 미는 방향을 골라야 한다. 아마 그 타이밍이었나 보다.      


 “!   듣고 있늬?(진정 그는  발음으로 말한다)  누구랑 말하늬.”


 아뿔싸! 하는 마음에 그렇지x2 같은, 아무 대꾸라도 얼른 했다. 왜 아뿔싸 했냐면 S는 평소에 내 말을 놀랄 만큼 경청해주는 친구이기 때문이었다. 경청한다는 걸 어떻게 느끼냐 하면, 그냥 경청 당해보면 알 수 있다. 내 눈을 바라보고, 나에게로 상체를 기울이고, 양 손엔 커피잔을 쥔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혹은 양 미간에 주름을 만들거나 내 말을 되뇐다. 내가 한 말에 동의를 표하거나 의미를 되묻는다. 얘기를 받아적고 밑줄도 긋는다. 정말 태어나 처음 듣고 평생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처럼 그렇게 소중하게. 그런 행위들이 만약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할 게다.


 “나에게 지금 중요한 건 온통 너야. 너 하나야.”     


 요즘은 사람들이 화장실에도, 전화통화 중에도, 카페 방명록에도 낙서를 안 한단다. 핸드폰이 있으니까. 별 목적 없이 이 창 저 창 옮겨다니며 스크롤을 내리고, 다시 안 볼 확률이 높은 기사를 공연히 저장하고, 캡처한 댕댕이 사진을 단톡방에 공유하는 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도 하는 일이다. 온전히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될 때 하는 끄적거림 같은 행위. 그러니 본질적으로 ‘폰질’과 낙서는 같은 일인 셈이다. 마치 확인해야 할 일이 있는 것마냥 폰을 만져대는 건 훼이크다. 마주앉은 이를 앞에 두고 작은 기계를 끄적끄적대면서 ‘너와의 시간에 온통 정성을 다하진 않고 있어’라는 신호다.      


 누군가에게 온통이 되어보는 경험을 해봤다면, 온통을 내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미안함도 커진다. 그땐 머릿속 댐에 급히 수문을 열고 귀에서만 맴돌았던 상대의 말을 급히 내 기억저장소에 흘려넣어 본다. 당연히 다 담기지 않는다. 그제야 손에 있던 것을 털어낸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상대에게 귀 기울이는 일은 손에 무언가를 쥐지 않은 상태에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그게 펜이든, 폰이든.     



 

 “어휴 증맬, 그렇게 재밌늬. 평생 2048이나 해라! 웩(펭수 흉내다).”


  너스레로 한바탕 웃고 환기해 버리는 S의 아량 덕분에 나는 다행히 정성을 다할 기회를 한 번 더 얻는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다시 소소하고 유치한 우리 이야기를 이어간다. 백예린 노래는 지금 이 분위기에 안 맞아 더 신나는 거, 지코로 바꾸자. 엇 카톡 알람 떴네, 켠 김에 인스타 스토오리- 그리고...     


 “...(웅얼웅얼, 페이드인) 얘, 낙서 주제로 글 쓴대매, 내 아이디어 들었니. 내 말 들은 거늬?”

 “아, 아 그렇지 그렇지.”

 “그렇긴 뭐가 그래 또. 어휴 증맬.”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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