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재와 에세이드라이브 2기에서 쓰다 / 키워드: 티켓
아주 오래전에 만난 사람에 관한 얘기야.
그는 생활패턴이 나랑 딴판이었어. 2주마다 근무 시간이 달라지는 업을 갖게 됐거든. 해 뜨기 전에 일어나거나, 해 지고부터 깨서 출근하는 그런 일. 게다가 두 시간은 달려야 도착하는 지역에 사는 그에게 가려면 시외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 만남은 그의 스케줄에 따라 정해지게 됐어. 불편하다기보단 아쉬웠어 늘. 한동네에 살면서 어디야? 그거 언제 끝나? 하고 슥 만나서 커피 한잔 빨고 헤어지는 그런 연애, 좋잖아. 언제 만날 수 있는지가 정해져 있다 보니, 우리가 서로 보고 싶어하는 날이 정해져 있는 것만 같고. 달력 따라 마음이 샘솟았다 꺼졌다 해야 할 것 같았어.
대신 특권이 있었지. 그의 공간에 아무 때고 얼마든지 방문해도 된다는 출입권. 햇살이 기울 즈음 비밀번호를 삐뽀뽀삐* 눌러 열고 들어가 음악 틀어놓고 한껏 뒹굴다 잠들며 기다릴 수 있는 13평 공간을 무료로, 무제한으로 빌릴 수 있는 연인 한정 티켓. 그게 있으니 괜찮았어.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상관 없었어. 허가받은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그를 닮았었나봐.
연인 간에 너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내가 할 얘기는 지금부터야. 그게 당연하지 않아지는 그 지점이 묘하더라니까. 우리는 악수하고 좋게 헤어졌어. 서로를 응원하면서. 그런데 헤어지고 나니까, 나는 비밀번호를 알아도 거기에 들어갈 수 없어지는 거더라고. 투명하고 단단한 결계가 생겼어. 애써 그가 긋지도, 내가 긋지도 않았는데.
그거 역시, 이별을 했으니 너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안 그렇더라. 적어도 나는. 관계를 종료했다고 마음이 동시에 땡 하고 파장하는 게 어디 잘 되니? 마음에 관성이 있어서, 그를 아끼고 존경했던 마음이 쉬이 다하지 않아서, 나는 그 뒤로도 그를 봤어. 찾아가고, 목소리를 듣고, 다시 작별인사를 나누고. 그도 비슷했어. 우리는 한참동안 이별을 했어.
연인 사이를 완료했는데도, 만나면 연인일 적이랑 비슷했어. 근황을 묻고, 밥을 나누어 먹고, 건강을 염려하고, 가족의 안부를 묻고, 익숙한 농담을 주고받고, 다정하게 포옹했어. 어떤 날엔 함께 누워 예능을 보며 깔깔 웃고는 가볍게 볼뽀뽀를 건넸다가, 이 정도면 우린 아직 만나고 있는 거 아닌가 착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어.
놉. 우리 관계가 끝났음을 선명하게 일러주는 유일한 순간이 있었거든. ‘너에게로 가도 되느냐’고 묻는 과정. 나는 그 공간에 언제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가, 이제는 네 일정에, 네게 새로 생겼을지 모르는 인연에, 혹은 네 마음에 내가 방해되지 않느냐는 많은 물음을 가지런히 그 한 문장에 담아 메시지를 보내곤 했어. 우습게도 만나고 돌아오는 시간이 아니라, 만나러 가는 동안에 우리가 헤어졌음을 번번이 확인했지. 처음엔 그를 보는 일이 너무 급해서 잘 몰랐었는데, 시간이 자못 지나고 보니 그게 슬프더라. 그의 옆구리가, 자유이용권에서 때마다 개별구매해야 하는 예매권이 된 당연한 사실이, 마주할 때마다 콕콕 아렸어.
근데, 역시 시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건 없더라. 더 이상 예매권 구하는 게 얼얼하지 않은 순간도 왔어. 그때 자연스레 떠올랐지. ‘아, 여기까지가 다 이별 패키지 세트였구나. 이만하면 됐다.’
그제야 알겠더라. 허락을 구하면서 반쯤 안심하고 반쯤 아파하던 그 시간들, 실은 혼자서 감당했어도 똑같이 아팠을 거야. 괴롭다고 SNS며 연락처 다 차단했다가 염탐도 했다가, 술 먹고 밤에 자니? 한 번 보내고 다음날 이불킥 하고 친구 불러 술 사달라고 징징거리면서. 대신, 그를 더 이상 보지 않으면서. 아마 더 강렬하고 더 짧게 견뎠겠지? 이별 고통 총량의 법칙 뭐 그런 거라 치자.
그러니까, 그는 나름의 특별 할인권을 제공하고 있었던 거야. 그의 다정함에 기대어서 나는 할부로 아플 수 있었던 거지. 이만하면 됐다, 그 생각이 들었던 날로부터도 두어 달을 더 보다가 안녕을 고했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조금 울었어.
아, 시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있나보다. 그 사람만큼 끝까지 다정할 자신이 없어서, 고작 입장권 사고 싶어하는 이에게도 함부로 티켓을 끊어주지 못하게 됐어. 사람에게 마음을 허하고 안으로 들이는 게 얼마나 담대무쌍한 태도인지 해가 갈수록 명료해지네.
◆ 표지에 Pascal Campion의 일러스트를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