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 Mar 09. 2020

그 말만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태재와 에세이 드라이브 3기에서 쓰다 / 키워드: 할부

고운 /
친절은 공짜처럼, 미소는 헤프게 쓰는 걸 좋아합니다
덩실덩실 춤추듯 걷되 정면을 응시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어어! 그래요, 그러자. 나중에!”


 최근 3년 사이 엄마에게 아마도 가장 많이 한 말이었을 거예요. 바빴어요. 푹 빠진 일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좋아하는 영화들은 막이 내릴 때까지도 예매를 못했고,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도 마다했죠. 평일 주말 구분도 딱히 없었고, 퇴근 후 삶도 일로 채워져 있었어요. 읽어야 하는 책들을 읽느라 읽고 싶은 책들을 못 읽었고요. 틈틈이 데이트를 하거나 이따금 바다를 보러 가는 정도가 유일한 여가였어요.


 그런 중에 엄마의 보채듯 하는 요구, 그러니까 ‘밥 먹으러 와라, 왔으니 자고 가라, 계절 바뀌었으니 옷 챙겨가라, 가족 여행 가자, 할머니께 안부전화 드려라’ 같은 말들을 다 들어줄 수가 있었겠나요. 변명이지만, 아무튼 그랬어요. 우선순위 상단에 가족이 없었던 시간을 ‘나는 생각보다 잔정 없는 성격이었구나?’ 하며 새로운 나를 깨닫는 과정처럼 여겼어요. 조각조각 시간을 쪼개어 잠시 얼굴만 비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비싼 딸 납셨죠? 어쩌다 퇴근길에 함께 저녁식사를 하거나 일정이 비어있는 주말 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36개월 할부로 효도하는 체 좀 했지요.



                                                                                 ◆



 작년 7월 열흘께, 2시쯤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울렸어요. 아부지는 30년 동안 연가 한 번을 안 쓴 교사예요. 그만큼 복무에 철저한 사람이, 내가 뻔히 수업 중일 걸 알면서 전화를 한 건 내 교직생활 10년 중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안 받으면 안 될 것 같았죠.


“엄마가 많이 안 좋아. 의사는 아직 모르겠다는데, 내가 알잖아. 내 생각엔 그래.”


 거기까지 천천히 힘주어 말하고는 허물어지듯 울먹이며 ‘알아두라고.’ 하는 전화너머 아부지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져서 끊어진 전화를 아직 귀에 대고 복도에서 끅끅거렸어요. 태어나서 두 번째 접하는 아부지의 눈물이었어요. 참고로 첫 번째는 폐암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예요. 할아버지가 어떻게 숨을 내쉬지 못하는지, 거듭된 항암치료가 얼마나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지, 얼마나 꺼멓게 마른 채로 돌아가시는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아부지가, 엄마의 폐암 진단 앞에 초연할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겠죠.

꽃 같은 우리 엄마, 별 같은 우리 엄마


 엄마는 영영 내 곁에 있을 줄만 알았죠, 이렇듯 훅 떠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 턱이 있겠나요, 에헴. 이렇게 끝까지 뻔뻔해지는 수밖에 없었어요. 무슨 자격으로 후회를 하겠어요. 그렇게 딸 얼굴 한 번 비추는 걸 효도라고 젠체한 주제에. 급식실에서 20여 년 가스 연기 마시며 일한 사람이 집에 와서도 가스불에 요리하게 내버려 둔 딸이 무슨 염치로요. 어림도 없죠.


 그럼에도 문득문득 후회가 비집고 올라오는 때가 있었어요. 그 모든 순간에 저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더군요. “어 그래 엄마, 나중에!” 할부가 나누어 내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미루기라는  그제야 알겠는 거예요. '오늘 내 욕망의 대가를 다음달과 다다음달의 내가 치러줄 거야' 하는 거잖아요. 지금 감당하기 어렵다고 우선 눈앞에서 치워내는 거잖아요. 내가 엄마를 카드 긁듯 눈앞에서 치워내고 있었더라고요.


                                                                                 ◆


 어렵지만, 잔정 없고 미루기 좋아하던 제가 요즘 애쓰고 있는 일은 애정을 일시불로 그때그때 지불하는 거예요.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고, 카톡에 재깍재깍 답을 하고, 만나자고 하면 우선순위를 한 칸씩 밀어내고 엄마가 제일 위에 우뚝 올라서요. 그토록 바라시는 딸 소개팅에는 무조건 “오케이 묻고 애프터로 가!”하고요, 일 좀 쉬엄쉬엄하라는 말 빼고는 모두 끄덕끄덕하고 있어요. 아무리 시간이 안 나더라도 엄마가 하는 어떤 부탁에도 ‘나중에’라는 말만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엄마 입에서 “나중이 어딨어 이것아~.”하는 말이 나올까봐 너무 두렵거든요.


 엄마 얘기 뿐이겠어요, 사실 만사가 그런 것 같아요. 아끼는 사람을 대하는 모든 나날이 새털같을 순 없잖아요. 짜증이 팍 나거나 속상함이 치솟는 순간에도 잠시 ‘우리에게 나중이 없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면, 내일 줄 애정을 가불해서 더 꾹꾹 눌러담아 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늘 늦는 애라서, 사람을 잃고 나서야 ‘우리에게 나중이 없다면’ 이라고 상상했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뒤늦게 떠오르더라고요. 당신은 나보다 나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가장 두려운 존재가 누구에게나 있을 거잖아요. 오늘은 먼저 간지러운 말 보내보면 어때요.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오늘 당신에게 내 애정을 일시불로 지불하겠어. 각오해 후후.”





*표지에 Cecilia Castelli의 그림을 썼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