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디케의 집]에 놀러가기 위해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를 읽고
아, 너무나 즐거운 독서였다. 딜레마를 반복하며 어떤 법이 생겨나기까지의 과정을 한 단계씩 엿보는 건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특히 두번째 챕터, 시민들의 시위를 인정하고 한계를 그어나가는 과정을 차례차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감사했다.
업과 관련이 있어, 트랜스젠더/동반자법/여성할당제/양심의 자유/ 학교에서의 성교육 등의 이슈를 좀더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여전히, 여성할당제에 대해 깔끔하게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실력을 우선으로 하고, 공식적인 유보조건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당사자인 개인 남성에게는 부당한 인사조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부당한 인사조치가 여성들에게 훨씬 더 높은 비율로 행해져왔고, '사회가 아직 실질적인 평등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p107' 라는 엄호사격이 붙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 여성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데에 여러 현실적 어려움이 산재해 있고,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시행할 정도로 자체적인 개선을 기다리기 어려운 점도 이해한다. 또한 어떤 남성은 할당제로 오히려 고용 및 승진에 득을 보기도 하며, 전반적으로 사회적 평등 증진에 유의미하게 기여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다만 실제로 책의 사례처럼 '역차별' 요소가 있고,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면,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장려하자 요구하기가 어렵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을 누구보다 바라는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법은 원래 그런 것일까, 어떤 개인의 이익은 침해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의 정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걷는 것일까. 'p24법은 가장 바깥 경계만 정한다'고 했던 것과 달리, 무자른 듯 깔끔하지 않은(결코 깔끔할 수가 없이 복잡한) 사례 속 인물들에 이입해보며 가끔은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위로가 된 점은 점차 그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변화(=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책이 친절했다는 것이었다. 법이 앞으로 어떠할 수 있는지,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놓인 인간을 구조하는 장치들은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더 얘기 나누어 보고 싶다.
덧. 사회에 유효한, 현실적인 정의로움의 개념이나, 법이 어떠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부분도 좋았지만, 안에 담긴 간결하나 묵직한 문장들이 아름다워서 좋았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사회는 원치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힘겨운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