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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l 14. 2020

우리가 모르는 건 마약인가, 모른다는 사실인가?

트레바리 국경:무경계에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함께 읽고


오늘 있었던 일이다. 6학년들이 2학기 동아리 활동 내내 만든 작품들을 가지고 마켓을 열었다. 소비자는 1-5학년 학생들. 직접 만든 물건들의 물량이 800여 명에게 충분치 않으니 우리 6학년끼리는 서로 구매하지 않기로 규칙을 정했다. 물론 교사들이. 아이들은 너무 아쉬워했다. 직접 만든 공예품, 목공품, 소설, 사진, 뮤지컬과 댄스공연을 제일 궁금해 할 것은 6학년 친구들 서로였을 테니까. 어쩔 수 없었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마켓이 절반쯤 끝났을 때 요상한 말들이 들려왔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했다. "○반에서는 사도 된다고 풀어주셨다는데요?"라고. 암거래도 생겼다. 쉬는시간에 화장실에서 팔찌와 1000원을 주고받았다. 또 2,3학년 후배한테 심부름을 시켜 물건을 손에 넣기도 했다. 이시끼들... 똑똑한데?


대책회의 하자고 일곱 선생님이 모였다. 나는 '캬~아이들아~ 너희는 다 방법이 있구나!' 싶어 싱글벙글이었다. 그런데 4반 쌤은 화가 나셨다. "규칙을 위반한 물품 전량 회수하고 돈 돌려주게 하죠."

3반 쌤은 반박했다. "그 규칙이 좋은 규칙이었나 따져봐야죠. 아이들이 이정도로 많이 어긴다면 애초부터 서로의 물건을 사지 못하게 한 게 잘못된 규칙이었던 거잖아요. 최소한 규칙을 정하는 '방식'은요."

정당성이야 어쨌건 이미 정해진 규칙을 어긴 점을 강력히 지도해야 한다는 입장과 그 규칙을 학생들과 의논 없이, 학생들 고려 없이 교사들 입맛에 맞게 정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섰다.



4반쌤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3반 쌤은 못내 아쉬워했다.

"우리가 마지막 6교시에, 남는 것이라도 서로 구매할 수 있다는 룰을 뒀다면, 아이들이 굳이 이렇게 편법을 쓰지 않았을 거예요. 있더라도 지금처럼 성행하진 않았겠죠. 우리가 룰을 어기게 만든 거예요. 문이 조금 열려있는 것과 아예 잠긴 것은 달라요. 욕망을 통제하는 방식 중에 제일 별로인 방식을 우리가 가르치는 거 같아서 별로예요."



마약에 대해서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해달라는 난치병 환자 가족의 요구를 통해, 어렴풋이 모든 마약이 같지 않다고 여기는 정도였을 뿐. 오늘 사례와 결코 동일선상에 가볍게 올려두고 생각할 일은 아니겠지만, 마약을 비롯한 금기와 국가의 룰에 대해 생각해본다.


위험해서 불법이 되는 일과 불법이어서 위험에 처하는 일 중 무엇이 앞서는 문제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 많다. 내가 합법/불법 영역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해본 주제는 성매매다. 그에 비추어 이 책을 읽어나가니 더 혼란스러웠다.


룰은 행위의 범주를 가르고 그 결과 사람을 가른다. 법 바깥에 무엇을, 누구를 둘 것인지를 정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 룰은 누구에게 득인가, 득실이 아니라 정의로움이 기준이 되어야 하나 묻다 보면 '정의가 무엇인가' 로 다시 돌아온다. 요즘에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합법 바깥의 영역으로 밀려나는 이슈'들이 무엇인가, 그건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가에 대해 나눠보고 싶다.



*2019년 11월 14일에 쓴 독후감이에요.

*표지에 Bran Wayne의 그림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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