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 Nov 12. 2017

아직 남일이 되지 못했다

현명하지 못한 그 서투름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 선배는 3학년이었다. 과 선배이면서 동시에 동아리 선배였다. 


입학한 지 두 달쯤 되었을까. 동아리 환영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4학년 선배들까지 같이 만나는 그런 자리였다. 2층 낡은 술집 <두레박>에는 쪽계단이 있었고, 그 가게를 이용하려면 누구나 그 쪽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선배가 불러 그 계단에 앉았을 때, 좀더 가까이 와보라고 했을 때, 어깨에 팔을 두를 때, 그리고 그 다음까지도, 나는 어디서부터 끊고 거절을 할 수 있는 건지 잘 몰랐다. 일(?)을 마친 선배는 여유롭게 웃으며 계단을 내려가 문을 젖히고 나섰다. 벙쪄 있다 뒤늦게 문을 박차고 나갔을 땐 이미 그 선배가 사라진 후였다. 그렇게 멍한 뒤에야, 아까 그렇게 누가봐도 한 사람은 능글맞고 한 사람은 쩔쩔매는 대화를 보면서 씩 웃으며 지나쳐간 4학년 선배 얼굴도 생각이 났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누구한테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알려야 하는 것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알린다 한들 아무도 본 일 없는 것에 대해 누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겠지.


나를 좋아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여자친구가 있었고, 나뿐만 아니었고, 그 해만도 아니었으니까. 바로 그다음주도 동아리 연습 때 어김없이 나타난 그 선배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멀리에 서서 눈을 안 마주치는 것이었다. 어쩌다 좁은 교정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할 밖에 없었지만. 무서웠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큰 벌레 같은 느낌. 면전에서 그래도 티가 나는 무시라는 걸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2학년이 되고 선배는 4학년이 되어 임고를 준비할 때부터였다. 우습게도 1학년에게 3학년은 거대한 권력이었나보다.

그게 12년 전이었지만, 그 당시에 선배가 입었던 옷차림이나 4학년 선배가 양손을 주머니에 넣었던 것, 소름끼치는 순간의 냄새, 문 열고 나섰을 때의 그 어두운 풍경까지도 생생하다.


별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엄마아빠한테도, 그 이후 애인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런 사례는 한 번뿐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이 별 일 아니었으니 다른 일들도 별 일이 아니어야 했다. 딱 한 명의 애인에게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데, 그때서야 그게 별 일이 아니었던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이 덕분에 별 일이 아니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나라는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별 일이 아니게 만들 수 있는 힘과 그걸 도와준 사람이 다행히도 내게 있는 거지, 아예 안 일어난 일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아직 검찰 송치된 후 처분이 나지 않은 한샘 사건을 내가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입사동기, 교육담당자, 인사팀장으로 이어지는 그 일련의 과정을 문화가 아니라 독립적인 사건이라고 바라보지 못한다. 화간이라는 증거가 되고 있는 그 친절한 카톡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도 너무 잘 알겠고, 정신적 충격을 받은 피해자라면 그렇게 자세하게 쓸 수가 없다는 글을 어떻게 썼을지도 너무 잘 이해가 된다. 인사팀장이 그애 눈을 보니 널 정말 좋아하더라 하는 말을 들었을 그 신입직원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물론 안다. 내가 지금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걸. 판결이 나기 전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하고, 한샘이 특별히 이상한 기업이 아니고, 그간 기업들이 성폭력 문제에 대처할 필요가 없었던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며, 기업 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세스를 만들도록 촉구하여,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다. 다 안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이다.


다만 아직은, 이미 일을 겪어낸 개별 당사자에게 마음이 머물러 있다. 나도 여기서 빨리 놓여나고 냉정해지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얘기하고 싶은데 촌스럽게 그게 잘 안 되어서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지난 12년간 내가 진작 나서서 내 주변에 조금 더 요구했다면, 조금 더 기민하게 후배를 살폈더라면, 내 일들에 외면하거나 숨어버리지 않았으면 지금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수치심 같은 거다. 차가운 판단과 변화를 가져올 행동은, 사실 이런 하나하나의 사건들에서 연민이 아니라 통감하고 수치심을 갖는 촌스러운 뜨거움이 낳을 거라고 나를 위로할 뿐이다.


이 일로 기업문화가 바뀌는 기적같은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내더라도, 당사자가 겪은 사건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가 직접 그 일을 먼지처럼 작게 만들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사실 그 존재를 제공하는 것은 제도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나 그렇지 못한 현실임을 잘 안다.

당장은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부터 찾으련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른 채식인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