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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n 06. 2018

게으른 채식인간

여기 공장식 축산을 줄이고 싶은 소망을 가진 인간이 한 명 있습니다만,

 계기는 작년 8월에 있었던 달걀파동 사건이었다. 이미 지난 겨울에 조류독감으로 한 번 휩쓸고 지나갔는데, 또다시 남양주 양계농장에 살충제 달걀이 검출되어 뉴스를 달구었다. 가족모임 중에 이 얘길 나누게 됐고 '문제의 원인도 인간, 그 결과로 결국 고통받는 것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문제가 갑자기 나랑 연결되었다. 내 문제로 여겨졌다. 역시 ‘내 문제’가 되어야 거들떠 보는 게 인간. 그래서 "음, 한 번 해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채식을 선언했다.


 속 편한 내 마음이야 가벼웠지만 이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먹는 고기의 99%는 공장식 축산의 결과다. 수평아리는 태어나서 만 하루면 갈려나가고, 난계는 A4용지 한 장도 안 되는 크기의 우리, 돼지는 자기 몸만 한 스톨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살다 간다. 젖소도 마찬가지다. 전 생애가 고통이다. 이들을 다루는 직종은 이직률이 100%가 넘을 정도로, 동물 못지않게 인간의 스트레스도 크다. 그 스트레스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가축 학대로 이어진다. 당연히 인간 건강에 해로울 뿐만아니라 온실가스, 수질오염, 토양 침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세계 곡물생산량의 70%는 고기생산용 가축들이 먹어치운다 하니 기아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70년대와 비교해서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소비량은 8배 증가했다. 해마다 먹는 돼지고기의 양이 인당 43kg에 육박한다.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있게 생산해 팔려면 공장식 축산이 제일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고기, 먹어야 한다면 '좀 덜 먹고, 먹기 전까지는 이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다 가게 할 방법'을 찾아나가는 게 우리인간을 위해서라도 더 좋지 않을까.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채식을 하면서도 영양 균형을 잃지 않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공장식 축산 반대와 맞물리는 다른 문제들에도 관심 갖고 실천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하지만 난 타고난 게으르니스트. 그래서 나답게(=게으르게) 한 첫 번째 선택은 '페스코 베지테리안'이었다. 단백질은 필요하고, 고기 아닌 데서 단백질 채우려면 생선 먹는 게 제일 쉬울 거 같아서였다. 은근슬쩍 '나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거쟈나! 생선은 공장에서 길러지진 않는다구.'하는 생각으로.


요즘은 폴로 밑에 플렉시테리안(때론 고기를 먹기도 하는)도 있더라.


시작부터 게으르고 나니 변명거리는 넘쳐났다.

"아 도저히 라떼는 포기 못하겠어."

"엄마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고 딸 생각하는 마음에 고기를 챙겨주시는데 어떻게 안 먹어."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친구랑 같이 음식점 가서 곱창요리를 시켜놓고 거기에 있는 양배추랑 당면만 먹는다면 나는 공장식 축산 반대에 의미있는 행동을 한 건가?"

"친구들에게도 자기 욕구와 기준이 있는데 내가 고기 안 먹는다고 다른 음식점 가자고 하는 게 영 미안한데."

"그러면 식사를 하고 만나러 가면 되나, 그러면 나는 공장식 축산 반대에 의미있는 행동을 한 건가?(사이클 무한반복)"

"안 먹는 방식 말고, 농장복지 인증 계란을 많이 사 줘서 몇 없는 동물복지 농장 운영이 지속되게 하는 방식이 나은가? 하지만 계란 한 판 사면 절반 먹는 동안 상해버릴 텐데. 동네에 나눠먹을 사람 구하는 일도 해야 하나?"

 원래 채식에 무지하기도 했으니 실수도 많았고, 어떤 날은 이런저런 변명 삼아 실패의 날을 작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종의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자주 들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야 계속 하지' 싶어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하고 범위를 늘려가자고 맘먹었다.


 허나 그렇게 세상 느긋하게 한대도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단백질 함량 높다는 잡곡, 과일, 채소 위주의 집밥 식사

내참, 콩으로 단백질 보충하겠다고 두부된장찌개 시켰는데 먹다 보면 그 비싼 차돌이 들어있고,  고기 피해 김치만두 시키면 그 만두소에도 고기가 갈려 있더라. 가지튀김이라고 안심하고 먹다보면 소스엔 돼지고기가 갈려있는가 하면, 웬만한 국물요리는 닭육수 아닌 게 없었다. 집에서 늘 요리를 해 먹지 않는 이상, 고깃집에 안 갈 수는 있어도 육류 소비 자체를 피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비건 대신 '비덩주의'라는 귀여운 신조어도 생겨났다. '非덩어리고기'의 줄임말이다. 잦은 외식문화 속에서 온갖 고기국물, 양념을 다 피하기는 어려우니 덩어리 고기 소비만이라도 줄여보자는 현실적인 타협안.

 

 고기 피하려니 무한정 늘어나는 탄수화물 섭취도 문제였다. 사람들이 채식하니 살 빠지냐고 하는데 오히려 쪘다. 결국 위에 탈이 나서 밀가루도 줄여가며 천천히 회복중. (이게 다 게으른 탓이다.)  내 생활패턴 상, 매일 한 끼 이상을 집에서 먹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대안으로 과일과 채소를 많이 챙겨먹었고, 휴일엔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혼자 집에서 보냈다.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제는 작년에 비하면 훨씬 '잘 피하고 잘 고르는' 소비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소극적이고도 이기적인 의미의 채식을 10개월째 근근이 이어오고 있다. 그러는 동안 건강이나 또다른 이유로 채식을 5-6년에서 14년씩 해온 친구들도 가까이에 있었다는걸 알게 되기도 했다. '고기 안 먹어요?' 하는 질문을 하고선 기억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공장식 축산 문제에 관심 가져주고, 꿀팁을 알려주는 다정한 이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고마웠다. 그냥 식사 메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관점을 존중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공존에 대해, 작은 목소리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비로소 보이는 또다른 세상도 있다. 채식과 페미니즘이 닮았다는 사실도 종종 깨닫는다. 구멍투성이지만,  그래도 가치있고 해봄직한 일이다. (할 만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삼겹살 굽거나 삼겹살이랑 데이트하거나 삼겹살 위에 눕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건 비밀)


 습관적으로 고기를 먹었다. 고기를 '너무 좋아한' 적은 사실 없는데 '너무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동안 먹었던 만큼이나 많이 먹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내 관점에선 나 혼자 고기 열 번 안 먹는 것보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끼리 두 번 안 먹는 게 더 이득이다. 대략 따져보니 나는 10개월 남짓 동안 전세계에서 암퇘지 딱 한 마리를 덜 잡아도 되게 했다. 아! 한 마리는 너무 적잖아 좀만 더 줄여볼까? 딱 요 정도의 마음으로 가늘고 길게, 조금 더 가 본다, 게으른 채식!





 채식 말고도 공장식 축산 반대에 동참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동물학대사육의 대표격인 산란계 배터리케이스, 돼지 감금틀 사용을 금지하는 입법청원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1분이면 된다. 돈도 안 든다. 참여는 여기서 >>> http://stopfactoryfarm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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