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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Nov 21. 2022

미컴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

잘하는 걸 해야 할까? 좋아하는 걸 해야 할까?

나는 대학교에서 주전공은 사범대의 국어교육과였지만 복수전공을 했다. 사회과학대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과거의 신문방송학과다. 2016년부터 과 이름을 변경했다는데, 과거에는 미디어가 신문과 방송에 한정되었다면 현재는 유튜브, sns 등 미디어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많아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15학번까지는 '신문방송학과(줄여서 신방과)'라고 하고 16학번 이후부터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줄여서 미컴과)'라고 하는데, 15학번 이전의 사람들은 '신방과'로 입학했기도 하고 그 이름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이 있어서 그대로 쓰는 걸 선호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다른 과인 줄 알지만 사실 같은 과 사람들이다. 학교 전산상에도 과 이름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나 또한 복수전공 신청 허가를 받고 미컴과 첫 전공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 '신방과'와 '미컴과'가 혼재되어 있어서 교실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과 이름은 그렇다 치고, 왜 복수전공을 했냐고? 간단하게 말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조금 복잡하게 말하면, 복전을 하는데 추가로 돈이 들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교육 다큐멘터리 PD와 작가에 관심이 있었고, 국어교육 내에 있는 매체(언어) 교육과 맞닿은 지점이 있는 학문이었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싶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을 것 같아서'.


각설하고, 위와 같은 이유로 국어교육과였던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미컴과의 <조직커뮤니케이션> 전공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다. 회사나 학교 등 3명 이상의 조직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교수님이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셔서 그런지 확실히 수업 진행이 매끄럽고 몰입감이 좋았다. 아니, '좋았다'라고 말하기엔 조금 많이 부족하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단했다'. 대부분의 다른 수업들은 시계를 두세 번씩 쳐다보게 되는데 이 수업은 처음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시계를 본 적이 없었다. 마치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단체로 마법이라도 거는 것처럼 말이다. 교수님이 잔잔한 미소를 띠면서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이어서 합시다."라고 하면 그제야 마법에서 풀려난 미어캣처럼 시계로 고개를 돌렸다. 재밌는 건, 나뿐만 아니라 그 수업에 함께 있었던 3분의 2 정도의 학생들이 교수님의 저 마지막 멘트에 맞춰 다같이 고개를 돌렸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좋은 수업에 대한 기준은 다르겠지만, 이때 이 교수님을 보면서 '학생이 시계를 보지 않는다면 좋은 수업'이라는 나만의 기준이 생기기도 했다. 


한 학기 동안 67명의 학생들이 때론 다함께, 때론 소그룹으로 얘기하고 호흡했던 재밌고 유익했던 수업이었는데, 이 수업도 마지막은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공연이 끝끝내 막을 내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쉽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수업은 마지막 모습이 여타 다른 수업들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 대학교 수업은 6월 중순에 마지막 수업을 한 후 기말고사를 치고 나면 종강이 되는데, 이 수업의 교수님은 특이하게 기말고사를 치고 그다음 수업시간에 마지막 수업을 한다고 했다. 수업이라기보단 소소한 담화에 가깝고, 출석에 반영은 되지 않으니 강제성은 없고 오고 싶은 사람만 자율적으로 오면 된다고 했다.


나는 가보고 싶긴 한데 혹시나 갔는데 혼자면 무안할 것 같아서 고민이 됐다. 그런데 마침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 학교에서 팀플 약속이 잡혔고, 오전에 학교에 모여서 팀플 회의를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져서 마치고 나니 <조직커뮤니케이션> 마지막 수업 시간 언저리가 되었다. 그 당시 나를 포함해 5명이었던 팀원 중 누군가가 마지막 수업에 가볼까? 라고 호기롭게 제안을 했고,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는 호그와트로부터 비밀 초대장을 받은 마법학교 학생들처럼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교실로 향했다.


마지막 수업에 참석한 학생은 총 8명. 우리 팀플원 5명과 수업 때마다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서 듣던 모범생 여학우 1명과 남학우 1명, 그리고 항상 캡 모자를 쓰고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여학우 1명. 이 분은 수업에 큰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나름 애정이 있었던 건가 싶었고, 마지막 수업에서도 캡 모자는 여학우의 머리 위에 차분히 얹혀있었다. 수업 때 분위기가 워낙 좋았던 지라 마지막 수업에 많이들 올 줄 알았는데 출석 점수의 힘이 이렇게나 컸나, 살짝 씁쓸했다. 교수님도 본인이 하는 다른 전공수업에는 12명이 왔다면서 여기가 그 수업보다는 적게 왔네, 라면서 아쉬워했다. 그래도 한 팀의 멤버가 다같이 왔다며 활짝 웃으면서 좋아하셨다. 12팀 중에 한 팀이 약속까지 하면서 마지막 수업에 올 정도로 친해졌다면 자기는 이번 학기 수업을 성공한 거라면서. 아아, 교수님... 팀플이 늦게 마쳐서 엉겁결에 오게 된 건데... 분명히 안 오고 싶었던 팀원도 있었을 텐데... 약속'까지' 한 건 아닌데... 정정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뭐 당신이 기쁘시다면 저희도 기쁩니다. 하하! 




교수님은 시간을 내서 마지막 수업에 와준 여러분들께 고맙다며 말문을 열었다. 사실 이번 한 학기 동안 했던 수업내용은 다 까먹어도 좋을 만큼, 오늘 이 수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core)"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잘하는 걸 해야 할까? 좋아하는 걸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전제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게 구별되고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직업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마침 마지막 수업에 온 학생들은 나를 제외하고 다들 졸업을 앞둔 고학번이었고 취업준비에 한창 바쁠 때였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이라 그런지 학생들의 눈빛은 진지했고 고심하는 티가 역력했다. 4명 정도가 답했는데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2명은 자신이 잘하는 걸 직업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했고, 2명은 좋아하는 걸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우선 전자는 아무리 좋아하는 걸 하더라도 잘하지 못하면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함께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만족감이 떨어지고 결국 지속 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직업은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좋아하기만 하고 잘하지 못하면 생존에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하고, 직업으로는 잘하는 걸 택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후자는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좋아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하는 게 행복하지 않을 것이며,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경제적 생존을 위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원하지도 않는 일을 위해 할애하며 주어진 일을 꾸역꾸역 해내는 기계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실력이 늘어서 잘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걸 덧붙였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박으로(충분히 예상 가능하겠지만), 반대로 잘하는 걸 하다 보면 좋아하게 될 가능성도 있으며, 주변에서의 인정 또한 더해지기 때문에 이쪽의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교수님은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참 어려운 문제라고 언급하고는 본인의 인생 여정을 차근히 풀어냈다. 어렸을 때 서울에서 태어났고 고등학생 때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큰 배의 선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었고, 대학생이 됐을 때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었는데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진 않았어서 이내 접었다고 했다. 그러다 친구 아버지 차에 있던 카폰(1990년대에 나왔던 자동차에 설치된 전화기)을 보고 통신 및 미디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그쪽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석사과정을 밟게 되었고, 더 생각지도 못하게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다고 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언론학보다는 커뮤니케이션학에 더 관심이 생겨서 그쪽으로 전공을 정했고 한국에 돌아오니 그럭저럭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그래서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좋아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걸 선택했고 지금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라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를 수 있겠지만, 자신은 나름 괜찮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어린 시절에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교수라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 그래도 꽤 괜찮은 상태라고 느낀다고 했다.


물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된다면 제일 좋겠지만, 삶은 그 자체로 모순덩어리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또한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반복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도 쉽지는 않긴 한데, 그래도 둘 중에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교수님은 본인의 인생 여정에 비춰봤을 때, 또 본인의 다른 친구들의 여정도 참고해봤을 때, 이와 더불어 본인이 전공한 커뮤니케이션학에 비쳐봤을 때, '잘하는 것'을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덧붙여 말하긴 했는데, 앞에서 언급한 학생들이 말한 바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손을 들고 싶어 팔이 근질근질했지만 교수님의 말이 끊어지는 적당한 시기를 기다렸고, 기회가 왔을 때 손을 번쩍 들었다.


교수님은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걸 선택하면서 살아오셨다고 했는데, 그럼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만큼 지금 그 선택들에 대해 만족하시나요? 



교수님은 이 질문이 나올 걸 기다리고 있었다며, 예상한 대로 일이 일어났다는 데서 오는 후련함과 조금의 허탈함이 섞인 애매모호한 미소를 빙그레 짓더니, 상큼하게 "노코멘트"라고 했다. 예상했다면서 노코멘트라는 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예의인 걸까, 그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걸까. 상상의 여지를 남기며 마지막 수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이후로,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 땐 어김없이 미컴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이 별책부록처럼 따라 나온다. 두고두고 숙제가 될 기억이지만, 그 덕분에 나의 삶은 더 깊어지고 진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게 이 수업에 내가 매길 수 있는 값이지 않을까. 미컴 교수님과의 마지막 수업은 내가 받은 수업 중 제일 기억에 남을 마지막 수업이고, 그 순위는 아마도 지구가 태양을 네 번 감싸 안는 동안,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오래도록 바뀌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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