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때, 국어교육과 전공수업으로 <표현교육론>을 수강했다. 이 수업은 우리 과 정교수님들 중에 유일하게 여자교수님이셨던 분의 수업으로, 중학교 교사 출신이셔서 그런지 평균적인 교수님들보다 좀 더 친절하고 수업이 학습자 친화적이며, 될 수 있으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하는 따뜻한 분위기의 수업이었다. 또한 다른 교수님들은 대부분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교육과 교수가 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 교수님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직접 교직에도 있어본 분이라서 그런지 학교현장과 관련된 좀 더 현실적인 내용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 두터운 팬층(?)을 이루고 있는 교수님이었다. 참고로 <표현교육론>은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는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의 언어 기술에 대해 다루는 수업이었다.
하루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교수님이 본인의 대학생 시절 이야기를 잠깐 꺼내셨다. 존경하는 교수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수업에서 해준 이야기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본인이 대학교 4학년 때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이 수업도 졸업을 눈앞에 둔 예비교사 4학년 학생들이 많아서 더욱더 해주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세상에 대한 해석이라든지, 이슈가 되는 사건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라든지 자신의 주관을 학생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나 조금만 주관이 섞인 말만 해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현실에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교사들은 입을 다무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는 교수님의 교수님은 이런 화두를 던졌다고 했다.
교사의 주관은 나쁜 것입니까?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교사의 주관이 없으면 왜 교사에게 배우는가? 왜 교사가 자신의 가치관과 직관적 판단을 발휘하는 것을 그렇게 못 미더워하고 나쁜 것으로 매도하는가? 그런데 교사에게 왜 아이들을 맡기고 뭘 배우길 기대하는 것인가? 교사의 성향에 따라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지만, 교사의 주관 그 자체를 나쁘게 봐서는 안 된다.
새로운 관점이었다. 적어도 23살의 나에겐. 아직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나이였고, 내 기억 속의 선생님들은 공인된 교과지식을 가르치는 데엔 주저함이 없었지만, 그 외에 주관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일어난 부당한 일에서부터 시작해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사건사고들 같은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하면 주저함이 많아졌다. 그것도 아주아주, 아주아주아주 많아졌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한 학생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하니, 의 의미가 담긴 당혹스러운 표정만 지어 보일 뿐,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교사는 없었다. 간혹 본인의 생각과 주관을 내보이는 교사가 있더라도 이내 교감선생님에게 불려가 경고를 받고 시무룩하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학생들도 교사가 주관을 내보이지 않는 데에 익숙해졌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기게 되었다.
교수님의 이야기가 생각의 씨앗이 되어 며칠 동안 이런저런 고민의 가지로 뻗어나간 후 도달한 나의 결론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였다. 두려워해야 할 건 학생들의 창의성과 정서를 짓밟는 막말, 욕설과 같은 잘못된 태도를 보이거나 본인의 주관을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나쁜’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사실 교사의 주관을 사람들이 염려하는 진짜 이유는 교사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아이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를 가지게 될까 봐, 또는 교사의 잘못된 태도를 학습하게 될까 봐, 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결국 교사의 주관 문제는 교사의 인성문제로 수렴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학생 시절 겪은 최악의 교사가 한 명씩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있다. 학생이 가진 잠재성을 깔아뭉개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입 밖으로 내뱉는 교사도 있었고, 수업 중에 욕설을 감탄사처럼 하는 교사에게 다수의 학생들이 그런 말은 불편하니 하지 말아 달라고 여러 번 요청을 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끝끝내 자각하지 못하는 교사도 있었다. 놀라운 건, 이렇게 인성이 좋지 않은 교사가 교과지식을 다루는 수업은 평균 이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게 더 위험한 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렇듯 우리가 염려하고 지켜보아야 할 것은 교사의 주관 그 자체가 아니라, 인성이 좋지 않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이지 않을까. 반면에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게 하고 선한 영향을 주는 교사의 주관은 학생들이 그 영향력 안에 온전히 있으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성이 좋은 교사는 애초에 자신의 주관을 학생에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여러 견해를 인정하고 포용할 자세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욕설이나 막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런 말들이 한 학생의 인생과 영혼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른 인성을 가진 학생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바른 태도를 보여줄 어른들이 필요하다.
p.s. 물론 '나쁜'교사와 '좋은'교사를 무 자르듯이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는 힘들 것이다. 상황에 따라, 또 받아들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그 기준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라데이션으로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0에서 10까지 중에서, 5 이상의 좋은 영향력을 주는 쪽에 가깝다면 '좋은'교사에 가까울 것이고, 5 이하의 나쁜 영향력을 주는 쪽에 가깝다면 '나쁜'교사에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