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빈 Dec 05. 2022

특수교육의 향방

내가 접한 특수교육의 인상

대학교 4학년 때, 2주 동안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교생실습을 나가기 전에 선배들로부터 여러 조언을 들었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은, 수업 참관을 최대한 많이 해보라는 것이었다. 본인 과뿐만 아니라 타과 수업을 듣는 것도, 훗날 수업 계획을 하거나 타과와 융합수업을 하게 될 때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에 적극 추천한다고 했다. 일일이 각 과목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수업 참관을 해도 되는지 부탁드려야 하는 게 번거롭긴 하지만, 대부분은 다 참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본인이 얼마나 부지런히 다니느냐에 따라 교생실습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고 했다. 선배들의 이 말이 마음속에 남았고 교생실습을 가면 수업 참관을 꼭 많이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마음으로 중학교에 출근한 교생실습 첫날은, 교감선생님께서 학교를 소개해주는 일정으로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 같이 실습한 교생은 4명이었는데 모두가 이 중학교가 모교였기 때문에 지리적 위치를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구석구석 열성적으로 알려주시는 교감선생님 덕분에(?) 약 7년 만에 다시 온 모교를 복습하는 기분으로 학교 여기저기를 누볐다. 큰 이변은 없었다. 한두 개 특별실만 빼고는 모두 내가 학교를 다니던 그때 그대로였다. 그렇게 교감선생님이 가이드하는 학교투어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별관 1층에 있는 특수학급을 지나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새로 신설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침 대학교에서 교직수업 중 <특수교육론>을 수강하고 있었던 터라 특수교육에 관심이 생기고 있던 시기였고, 수업은 들었지만 이론적인 부분이 많아서 실제 특수교육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학교 현장에서 참관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교생실습 나가기 전부터 어렴풋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다.


그래서 학교투어가 끝나고 잠깐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 아까 보았던 별관 1층의 특수학급을 찾아갔다. 중학교부터는 교사들이 교실에 있지 않고 넓은 교무실에 다같이 머물지만, 특수학급은 초등학교처럼 교사가 학급 내에 상주하는 형태였다. 다행히 선생님이 계셨고 수업참관이 가능한지 여쭤봤는데 가능하다고 하셨다. 다만 참관 가능한 날짜는 서로의 일정을 고려했을 때 교생기간 마지막 날이 유일했고 자연스레 그 날로 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2주 동안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수업참관과 연구수업, 각종 연수를 끝내고 나니 교생실습 마지막 날이 되었다. 교생 친구들과 다같이 마지막 참관 수업으로 갈 3교시에 있을 특수학급 수업을 기다리며, 실습기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온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똑똑. 1교시가 끝나고 교생들이 있는 과학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특수학급 선생님이 서계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미안하다면서 오늘 수업참관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내가 수업참관 여부를 여쭐 때 교실 안에 특수학급 학생 한 명이 있었고, 집에 가서 어머니께 교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말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어머니로부터 문의 전화가 와서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교생의 수업참관을 거부하셨다고 했다. 본인 아이를 누군가 보는 게 꺼려진다고.


아쉬웠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다. 비장애 학생의 수업을 참관할 때는 학부모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는데, 장애학생의 수업 참관은 학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불허였다.


장애아동의 어머니는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봐, 숨기고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았던 비정한 시선들, 냉담한 태도를 보면서 많은 상처를 받아 더 움츠러들고 불신이 생겼을 수 있다. 아마 교생에게 아이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교생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고, 동네에 소문을 낼 수도 있다는 그런 불안감, 잠깐 만나고 떠날 사람이기에 아이가 실망감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거란 염려 등이 보호자가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지 않았을까. 그 어머니의 마음을 추측해볼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는 걸 내가 안다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특수학급의 수업을 참관하는 게 해당 학급 학생에게 어떠한 자극이나 도전적 행동을 강화할 여지가 있는지는 비전문가인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러한 부분을 우려해서 아이의 어머니께서 반대하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의 상황과 특성을 잘 인지하고 있을 특수학급의 교사가 수업 참관을 허락했다면 그렇게 우려할만한 심각한 상황은 예기되지 않는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장애가 있는 학생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그저 이번 일을 통해 내가 느낀 바는, 여전히 장애와 비장애는 서로의 우주가 너무 멀다는 것이고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라던가 이해하라고 강요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원론적인 답일 수 있지만 때론 원론적인 답이 답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가장 원론적인 것이 그 전체여서이지 않을까.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애초에 잘잘못을 따지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다만 장애와 비장애,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 가까워질 우주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쪽에서 아무리 문을 똑똑, 아니 쾅쾅 두드려도 다른 한쪽이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면 어떠한 변화도 기대해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는 것, 그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마당도서관, 초등학생과 어른의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